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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실시간 아바타 게임'.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실시간 아바타 게임'.
ⓒ 배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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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합니다. <오마이뉴스> 대표님. 정치팀장님. 저는 지난 17일 오후 3시부터 '월급루팡'이 됐습니다. '오늘의 유머'(아래 오유)에서 일은 안 하고 월급만 타가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평소 성실함이 필살기였던 저로서도 몹시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인하대 강연, 여야 원내지도부의 '3+3회동'이 있었지만 저는 모든 일정을 '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이 모든 게 오유에 나타난 한 남자 때문입니다. '배드맨'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그는 이틀 전인 지난 16일 오전 6시 깜깜한 장면에 '1. 씻는다, 2. 다시 잔다'라는 글을 새겨 넣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게시물 제목은 '실시간 아바타 게임'이었습니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신선한 제목에 오유 회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배드맨을 일으켜 세웠고 그를 근처 버스터미널까지 보냈습니다. 걸어서요.

그가 도착한 곳은 부천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버스 매표 사진을 찍고 거기에 '무안, 문산, 속초, 순천, 안산, 안양, 에버랜드' 등의 행선지를 보여주며 다시 오유 회원들의 선택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한 회원이 "무안을 가서 무안하게 무안단물을 먹고온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도 몰랐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부천에서 무안, 목포를 거쳐 제주까지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실시간 아바타 게임'.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실시간 아바타 게임'.
ⓒ 배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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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배드맨은 무안행 버스 티켓을 샀습니다. 5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물과 김밥 한 줄을 사서 버스에 오른 그는 사진 한 장을 올립니다. 당근색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올린 제목의 의미를 파악하게 됩니다. '실시간 아바타 게임'. 즉 배드맨이 회원들의 댓글을 보고, 또는 자신이 선택지를 올린 것에 반응을 살펴 행동에 옮기는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는 겁니다.

순식간에 댓글이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계산을 해보니 분당 평균 30~40개의 댓글이 올라왔습니다(18일 오후 4시 현재 기준 약 2만개 이상). 아바타의 글은 베스트 게시판으로, 또 다시 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판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해당 게시물에 탑승(댓글을 남기는 것)한 회원들은 그야말로 '대박'을 맞았다며 환호했습니다. 첫 게시물에 댓글이 1700개가 넘자 아바타는 새로운 글을 올렸고 그것 역시 베스트 게시물로 직행했습니다.

비록 하루 전에 올라온 글이지만 그것을 읽음과 동시에 저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무안을 향하던 아바타는 휴게소에서 핫바를 먹었습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휴게소에 가면 항상 먹습니다. 군침이 돕니다. 무안에 도착한 아바타는 세발낙지와 낙지비비밥을 먹었습니다. 저도 지난해 봄에 무안에 갔었습니다. 아바타에게 낙지호롱이(나무젓가락에 낙지를 둘둘 말아 구운 요리)를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슬슬 아바타의 여행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그때, 아바타가 1박을 결정합니다.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목포를 가라, 신안을 가라, 중국으로 가라, 주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아바타는 목포행 미션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저는 '유달산이나 방조제에 가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포에 도착해 고된 일정에 지친 아바타는 카페로 향해 휴식을 취합니다. 뭔가 아쉽습니다. 그러나 글에 흥미가 떨어질 찰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추적자. 추적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노비를 쫓는 추노꾼처럼 회원들이 아바타를 잡으러 떠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 다시 그들의 만남을 숨죽여 기다립니다. 마치 내가 아바타를 찾으러 나선 것처럼 흥미진진합니다. 회원들은 커피 기프트콘을 사서 댓글로 올리며 아바타를 응원합니다. 추적자들과 아바타의 만남이 이뤄지고 삼겹살에 맥주를 마시는 그들 옆에 저도 함께 있는 기분을 느낍니다.

슬금슬금 더 많은 댓글이 올라옵니다. 목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라는 명령이 줄을 잇습니다. 저도 아바타가 제주도를 가길 희망합니다. '제주!제주!' 속으로 외치며 스크롤을 내립니다. 아바타가 '1. 목포에서 1박을 한다 2. 밤12시 제주가는 배를 탄다'라는 선택지를 올리자 환호합니다. '아싸! 제주도로구나~', 다급한 마음에 사람들은 '22222222'를 미친 듯이 댓글로 올립니다.

댓글창은 이제 완전히 사람들의 놀이터가 됐습니다. 댓글을 달기 위해 신규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고, 난대 없이 "여자친구 사귀게 해주세요", "복권 당첨되게 해주세요", "다음 시즌에 한화도 가을야구 하게 해주세요" 등 현실가능성이 떨어지는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실시간 댓글은 사실상 채팅창이 됐습니다. 쉼 없이 '새로고침'을 누르고 누군가는 저녁식사를 대신할 간식을 준비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아바타는 제주도를 향합니다. 그 뒷이야기는 이제 직접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실시간 아바타 게임'을 소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용을 설명했지만, 이후 벌어지는 스펙터클하고 판타지한 이야기를 다 써버리면 욕먹습니다. 제가 암만 써봤자 원본이 제일 재밌습니다. 그 뒤가 10배는 더 재밌습니다. 회원들이 '유명배우'라고 이름 붙여준 배우도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요. 절대 낚시가 아닙니다.

'월급루팡' 용서해주세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실시간 아바타 게임'.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실시간 아바타 게임'.
ⓒ 배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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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8일 오전 10시 현재 광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정치부 기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오늘 문재인 대표의 조선대 특강을 취재하러 가는 길이지요. 어제 오후 근무시간 월급을 날로 먹은 게 영 불편해 '밥값은 해야겠다'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솔직히 편집국장께 혼날까 두려워요. 그래서 2박3일에 걸쳐 진행된 이 '실시간 아바타 게임'에 대해 나름 '진지 빨고'(진지하게) 감상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오유라는 커뮤니티는 예전부터 소위 '레전드 사건'이 많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알 만한 사람은 아는 '패션고자' 사건부터 제가 취재하기도 했던 '댓글조작 사건'까지... 저는 최근 유명 커뮤니티였던 'SLR클럽'의 대규모 오유 망명 사태도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여러 사건이 일어난 곳인 만큼 자유롭지만 회원들 사이에 지켜야 할 매너나 암묵적인 룰이 엄격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오프모임을 금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하지만 '실시간 아바타 게임'을 향한 호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사실상의 오프 모임의 형태로 흘러갔지만 그에 반감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실시간 아바타 게임'이 사람들의 가장 큰 갈증을 해소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계획도 없이 일상을 툭 던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같은 커뮤니티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편안하고 즐거운 그 마음을 자극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모든 것이 사람들의 '자율'에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아바타라고 불렀지만 누구도 그의 여행을 강제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아바타를 조종'하는 게 아니라 그가 내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행위에서 아바타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바타 한 사람의 여행이 아니라 댓글을 다는 '모든 사람'의 여행이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아바타를 만나기 위해 떠나기도 하고, 누구는 자신만의 여행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당근색 바지를 입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시간 아바타 놀이'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인터넷 게시물에 댓글 하나를 다는 행위를 넘어선 무언가가 만들어진 겁니다.

즉, 좀 더 독자들과 재밌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거였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그게 뭔지 알아가는 게 기자로서 저에게 남은 과제 같습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오늘의 유머, #오유, #오유 아바타, #정형돈,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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