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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10만여 명의 인원은 '민중총궐기 대회'라는 이름 아래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토와 성토를 쏟아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인파가 시위에 참여한 모습은 많은 이에게 강인한 인상을 보여줬다.

투쟁본부의 예고대로 인원들은 청와대로 진격했고 경찰은 청와대로 진격하는 인원들을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많은 사람이 경찰의 물대포에 크게 다쳤고 칠순의 농민 백남기씨는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졌다.

경찰에 맞선 시위, 차벽 앞에 무기력했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부상자 발생에도 계속되는 물대포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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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강경 진압은 잘못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집회를 참여하고 이끌어가는 주체들은 과연 집회를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나는 '민중총궐기 대회' 현장에 있었다. 당시 벌어진 집회를 보며 집회 문화에 대한 한계와 '앞으로 집회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파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우선 경찰과 대치하는 인원만 싸우는 시위가 아니라 모든 인원이 같이 뭉치는 집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14일 광화문에서의 경찰과 집회 인원의 전면전은 정말 제한적인 싸움이었다.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집회를 제대로 저지할 줄 아는 한국 경찰은 이미 시위대의 전략을 읽고 있었다. 우선 경찰들은 효율적인 차벽 배치를 통해 청와대로 진격하는 소수의 인원만 막으면 되는 지형을 갖추고 시위 진압에 들어갔다.

차벽이 광화문을 둘러싼 지형 속에서 본격적인 격돌이 일어나면 집회 인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차벽에 올라가는 일과 차벽을 끌어내는 일뿐이다. 설사 집회 참가자가 차벽에 올라가더라도 그 인원은 경찰들이 제어하면 되는 문제고 차벽을 끌어내더라도 다른 차벽이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싸움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방에 있는 인원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 참혹한 현장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집중력이 떨어진 후방 집회 인력은 투쟁본부의 대오 유지 명령에도 결국에는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소수의 전방 시위대가 후방 집회 인원과 교체되는 양상은 10만여 명이 가진 위력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다.

2008년 촛불시위를 떠올려 보자

지난 11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포스터'. '노동개악 분쇄'라는 표현보다 대중들에게 파고드는 문구는 정말 없었을까.
 지난 11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 포스터'. '노동개악 분쇄'라는 표현보다 대중들에게 파고드는 문구는 정말 없었을까.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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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집회 주체는 대중적인 언어가 스며드는 집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14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회의 이름은 '민중총궐기 대회'다.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을 처음에 들었을 때 든 느낌은 '집회 주체의 한계성'이었다. '민중', '궐기'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집회 주체에는 전혀 없어 보였다. '회사 다니고 학교에 다니는 사람 중 몇 명이나 민중, 궐기라는 말을 쓸까'라는 생각을 거의 안 해본 것 같다.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쓰는 쉬운 언어로 구성된 집회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든다면 '민중총궐기 대회'의 선전물과 시청광장에 쓰여있던 '노동개악 분쇄'라는 표현보다는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같이 이해가 빠르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과 단어를 쓰자는 뜻이다.

집회 문화에 대한 확장성은 대중들의 접근에서 시작한다. 시대마다 유행하고 대중들이 즐겨 쓰는 문장과 단어들로 이뤄진 집회가 앞으로의 집회 확장성에서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2008년 6월 10일,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서울 세종로네거리, 태평로, 청계광장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리고 있다.
 2008년 6월 10일,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서울 세종로네거리, 태평로, 청계광장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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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예전 촛불집회가 보여주었던 위력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촛불집회가 갖고 있던 '비폭력적인 시위'의 인상은 많은 이들을 거리로 불러 모으게 했다. 촛불집회는 참여 인원들이 갖고 있던 자발적인 참여와 어울림으로써 '축제'의 형식을 띠었고, 집회에 많은 이들이 참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난 2008년 6월 100만 명을 거리로 쏟아지게 했던 촛불시위처럼 우리는 새로운 집회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메시지가 강력하다고 해서 전달 방법을 투쟁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부드러움이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거리에 나오게 할 방법일 수도 있다.

우리가 진짜로 싸워야 할 대상은 거리를 막고 있던 경찰이 아니라 국정을 혼란하게 만든 정부다. 정부에게 우리가 가진 메시지를 전달하고 대중의 의지를 보여주려면 우리가 더욱 발전하고 진화된 집회 문화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싸웠던 방식으로는 안 된다. 이제는 다른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민중총궐기 대회는 앞으로 어떠한 집회 전략이 먹힐지 고민이 들게 하는 집회였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민중총궐기 대회,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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