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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프랑스 파리의 식당.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프랑스 파리의 식당.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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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의 금요일 늦은 저녁. 불길한 날이었지만, 불안해 하는 이는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의 시작. 누군가는 연인과의 데이트를 위해 레스토랑을 찾았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한 주의 피로를 풀 술 한 잔을 즐기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족들과 함께 축구 경기장을 찾았다. 몰랐다. 그 평범함이 순식간에 공포로 뒤바뀔 줄은. 몰랐다. 그 일상이 순식간에 일상적이지 않은 순간으로 뒤바뀔 줄은.

테러였다. 처참했다. 최소 132명이 사망했고, 최소 349명 이상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중 96명이 중태에 빠졌다. 프랑스 파리 일대 총 여섯 곳에서,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 국가(Islam State of Iraq and Syria, ISIS)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참사의 생존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알라는 위대하다(للهأكبر)"라고 외쳤다고 증언했다.

애도할 일이었다. 분노할 일이었다. 사람들은 숨진 파리 시민들을 애도하고, 연대의 뜻을 표했다. 모두가 "파리를 위해 기도하자"라고 이야기했다. SNS의 프로필 사진 위에는 프랑스 국기가 덧칠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무슬림들에게 분노를 표했다. 다시, '무슬림'들에게 분노를 표했다.

이슬람교를 향한 분노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리 르펜은 "무슬림 단체를 모두 해체하고 불법이주민들을 추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MPF(Mouvement pour la France, 프랑스를 위한 운동) 당수 필립 빌리에는 "포용주의로 인한 이슬람화가 프랑스에 가져온 비극"이라면서 혐오·반이슬람 정서에 불을 지폈다.

이런 혐오 발언이 비단 프랑스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죽일 이슬람 놈들'이라고 크게 적힌, 이탈리아 보수 매체 리베로(Libero)의 1면 헤드라인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슬로바키아,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의 정치인들 역시 난민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심지어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온다. "이슬람 절대 반대 다문화 절대 반대" "절대 무슬림을 받지 말자!" 따위의 댓글은 인터넷 기사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도 무슬림들에 의해 곧 테러 위협에 처할 거라는 불안마저 보인다.

무슬림은 ISIS인가

"자유로운 세상 그 어디서도 우리 모두 함께 야만과 테러리즘에 대항하리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자유로운 세상 그 어디서도 우리 모두 함께 야만과 테러리즘에 대항하리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테러리즘은 그만. 자유로운 세상 만세 - 프랑스 만세"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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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그 반응 사이. 많은 이들이 ISIS와 무슬림을 기계적으로 등치할 뿐이었다. 그동안 삭제된 혹은 망각된 질문 하나가 있다.

"무슬림은 ISIS인가, 아니면 그들을 지지하는가."

이런 물음 없이 무슬림들을 향한 분노만을 내비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편견을 심화시키고, 증오를 조장할 뿐.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이슬람 시설 등을 향한 총격, 수류탄 투척 등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그들 사원은 ISIS와 어떤 관련도 없는 곳이었다. 종교가 같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슬람교는 '교권(敎權)이 누구에게 주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립으로 다수의 수니파와 소수의 시아파로 나뉘었다. 수니파는 또 네 개의 학파로 나뉘는데, 이중 한발리 학파, 또 한발리 학파 중에서도 와하브파가 ISIS의 종파적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근본주의적이며, 과격한 와하브파는 이슬람법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적으로 간주한다. 이슬람주의와 서구민주주의가 뒤섞인 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대다수 이슬람국가 역시 이들의 배격 대상인 것이다.

이들은 그렇기에, 이슬람 국가들 역시 테러의 표적으로 삼는다. 파리에서 끔찍한 죽음이 시작되기 하루 전에는 레바논이 그 대상이었다. 주민 대다수가 시아파였던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남부 지역에선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50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고, 240명이 다치는 테러가 발생했다.

ISIS가 벌인 일련의 테러들은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무슬림들이 유럽 서구국가의 무고한 시민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테러 집단에 의해 종교·국적을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이다. 무슬림 역시 공격의 목표일 뿐. 대다수 이슬람 교도들이 그들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이다. 무슬림이 ISIS와 동의어로 사용될 수 없는 이유이다.

ISIS는 무슬림인가

동시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도 가능하다. IS는 무슬림인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 이슬람 국가(Islam State)임을 주장하고 있기에. 이 대답에는 그러나 수많은 논란이 따라붙는다. 한국에서 ISIS에 가담해 논란이 되었던 김아무개씨가 그렇듯, 가담한 많은 이들이 이슬람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거나, 이슬람교에서 금지하는 생활을 계속해온 이들이었다.

ISIS에 의해 10개월간 피랍됐던 프랑스 저널리스트 디디에 프랑수아는 영국 매체 <뉴스테이트맨>을 통해 당시 상황을 "그곳에는 텍스트에 대한 대화는 없었다, 종교적 토론 대신 정치적 토론만 가득했다"라고 회상했다. 또한, 그는 인질들이 코란을 배우기는커녕, 코란을 본 적조차 없다고 증언했다. 코란은 '중세적 처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만 동원되곤 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코란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그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슬람교를 이용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슬람학자인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 버나드 헤이켈은 ISIS의 행동들에 대해 "비이슬람적인 것을 넘어 반이슬람적인 것"으로 규정했다(2015년 3월 10일 <뉴스테이트맨>). 수니파, 시아파, 기독교를 비롯한 세계종교지도자들 역시 한데 모여 ISIS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과연 이 극단주의자들에게 이슬람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인가. 코란은 "무고한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진짜 원했던 것

이슬람국가(IS) 테러로 89명이 숨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주변에 15일 정오께(현지시간)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 쌓여 있다.
▲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앞 추모 현장 이슬람국가(IS) 테러로 89명이 숨진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주변에 15일 정오께(현지시간)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 쌓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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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슬림들을 향해 쏟아지는 전세계적 분노. 그 방향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각국의 보수 정치인들은 '난민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민정책에 대해 재고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들이 ISIS의 절친한 친구라면 말이다.

이 잔혹한 테러리스트들이 이 테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포였을 수도 있다. 혼란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이다. 지난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테러의 공포가 어떻게 이슬람교에 대한 분노로 뒤바뀌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나도 샤를리"(Je Suis Charlie)라고 이야기하던 추모집회는 곧 반이슬람 집회로 변질됐다. 테러는 프랑스 사회 내 무슬림의 지위를 약화시켰고, 사회적 차별을 더 강화시켰다.

무슬림들은 프랑스 사회 내에서 취업, 소득 등에 큰 차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 이는 11월 파리 테러를 기점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당장 무슬림들은 그런 프랑스 당국보다 이런 상황을 만든 ISIS에 더 큰 분노를 보내겠지만, 상황이 계속된다 해도 마찬가지일지는 알 수 없다. 문제의 원인은 먼 곳에 있고, 문제는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내에서 차별받고 자랄 어린 무슬림들. 그들이 프랑스에 대한 분노로 ISIS에 가담하게 된다 하더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또한, 이번 테러는 ISIS 자신들이 지배하는 지역 내의 거주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거주민 유출이 계속될 경우, 세금을 확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9월,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떠나는 것을 막겠다면서 "유럽이 낙원이라는 것은 환상이며, 신기루"라고 주장한 바 있다. "선조들이 정복자로 차지했던 땅을 왜 노예로 가려 하냐"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보수 정치인들은 난민 수용 불가의 뜻을 드러냈고, 또 많은 국가는 난민 수용을 철회할 것을 압박받고 있다. ISIS의 훌륭한 계획에 맞춰서 말이다.

다시, 똘레랑스

"아니, 그렇다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요?" 파리는, 프랑스는, 유럽은, 세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마크 러팔로는 이렇게 답했다. 답은 여기에 있다.

"이 끔찍한 행동이 당신의 관용과 인간성을 빼앗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의도한 결과입니다."

언론들은 11월 파리 테러 이후에 이런 진단을 내놓기 시작했다. 똘레랑스(관용)의 종말이자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적절한 관용과 포용이다. 똘레랑스의 실패가 작금의 사태를 불러온 것이 아니다. 똘레랑스를 버렸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경제 위기로 양극화가 심해질 때, 프랑스는 관용과 포용 대신 보수화의 가치를 택했다. 덕분에 거리는 가난한 무슬림들의 슬럼이 돼버렸다.

테러를 빌미로 무슬림들을 차별할 이유는 없다. 비무슬림 프랑스인들이 할 일은,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지우고, 경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차별하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ISIS의 세력을 키우는 일이며, 그들을 지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프랑스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ISIS가 원하는 대로 이슬람에 대한 차별과 멸시·불관용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무슬림에 대한 똘레랑스를 다시 한 번 보여 줄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IS, #ISIS, #파리, #테러,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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