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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마리가 있으면 집안이 시끌시끌합니다. 처마 밑에 제비가 찾아와서 둥지를 틀거나, 참새나 박새가 처마랑 지붕 사이 빈틈에 들어가서 새끼를 까면, 새벽부터 밤까지 새소리를 듣습니다. 마당에 우람한 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숲에서 아침을 여는 멧새가 마을로 내려올 적에 이 나무에 내려앉아서 다리쉼을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 새들은 모두 벌레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무마다 샅샅이 뒤지면서 벌레잡이를 합니다.

오늘날에는 논밭뿐 아니라 나무에도 농약을 무척 많이 쓰는데, 예부터 시골사람은 새를 곁에 두면서 벌레잡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하루를 더 아름답게 누릴 줄 알았습니다.

'부리는 뼈로 이루어졌고, 그 위에 케라틴이라는 특수한 단백질이 덮여 있다. 굵은 밑동은 나무를 두드릴 때 받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 두꺼운 머리뼈에 깊숙이 박혀 있다. 콧구멍은 작은 틈처럼 찢어져 있고, 둘레에 털이 나 있어서 톱밥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 준다. 흰부리딱따구리에게 이렇게 크고 단단한 쇠지레 같은 상아색 부리가 필요했던 것은 나무껍질을 벗겨내기 위해서였다.' (22∼23쪽)

'알렉산더 윌슨이 흰부리딱따구리를 그리기 위해서 총을 쏘아 잡았던 1809년부터 조지 바이어가 그 새를 박물관에 진열하기 위해서 총을 쏘아 잡았던 1899년까지 90년 동안, 흰부리딱따구리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30쪽)

필립 후즈 님이 쓴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돌베개, 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 '흰부리딱따구리'하고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쩌다가 흰부리딱따구리가 모조리 자취를 감추어야 했는가를 살피는데, 미국에서는 흰부리딱따구리만 모조리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그네비둘기 같은 새도 몽땅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모두 죽고 말아 사라져야 한 새가 퍽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할까요? 한국에서는 '흰부리딱따구리' 못지않게 자취를 감춘 큼지막한 딱따구리로 '크낙새'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크낙새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광릉수목원 언저리에서 한 쌍이 산다고 하는데, 한 쌍만 있어서는 크낙새가 더 퍼지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새가 여럿 살려면 숲이 넓어야 하지요. 조그마한 숲에서 이런저런 새가 한두 쌍쯤 산다고 하더라도 새끼를 퍼뜨리기 어렵습니다.

 흰부리딱따구리 모습.
 흰부리딱따구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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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목재에 대한 열광은 1849년의 금광열에 뒤지지 않는 기세로 타올랐다 … 돌아온 목격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혀가 꼬여 더듬거리면서 보고했다. 그곳에는 수백만 에이커의 삼림이 펼쳐져 있고, 숲 천장은 하늘을 완전히 가리며, 나무 둥치는 어른 남자 둘이 팔을 맞잡은 것보다 굵다고 했다. 자유인이 된 노예들과 가난한 백인들은 하루에 50센트만 주면 기꺼이 숲에서 일하겠다고 줄을 선다고 했다.' (49쪽)

'아서 웨인은 왜 흰부리딱따구리를 마흔네 마리나 죽였을까? 윌리엄 보르수트넌 왜 흰부리딱따구리 표본을 예순한 점이나 샀을까? 그 새가 멸종할 위기라는 사실을 몰랐나? 몰랐다면,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당연히 그들은 흰부리딱따구리가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65쪽)

흰부리딱따구리나 크낙새 같은 새가 숲에서 사라지는 까닭은, 이들 새가 살 만한 숲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숲이 사라지는 까닭은, 사람들이 나무를 너무 모질게 많이 베어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숲을 밀어내어 아파트나 공장이나 발전소나 고속도로나 골프장을 지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새를 지키자면서 집도 짓지 말고 공장이나 발전소도 없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헤아려 볼 노릇입니다. 왜 숲을 밀어서 아파트를 지어야 할까요? 왜 숲을 밀어서 공장이나 발전소가 들어서야 할까요? 숲이 아닌 다른 땅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요. 숲이 없이는 사람도 살 수 없을 텐데요.

사람은 누구나 숨을 쉽니다. 숨을 쉬자면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물건을 써야 하거나 전기를 써야 하더라도, '깨끗한 바람'이 없으면 사람은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려면 맨 먼저 깨끗한 바람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맑은 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뒤에 정갈한 밥이 있어야 하지요.

개발을 하든 건설을 하든 무엇을 하든, 짙푸른 숲하고 깨끗한 냇물하고 넓은 들과 갯벌하고 아름다운 바다부터 곱게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숲에는 새가 날고 짐승이 달릴 수 있어야 하고, 냇물과 바다에는 물고기가 노닐 수 있어야 하지요. 이런 터전일 때에 비로소 사람도 사람다운 삶을 누립니다.

 1930년대로 접어든 뒤부터 비로소 '사냥총'이 아닌 '사진기'와 '새소리 모으는 기구'를 들고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나섰다고 한다.
 1930년대로 접어든 뒤부터 비로소 '사냥총'이 아닌 '사진기'와 '새소리 모으는 기구'를 들고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나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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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박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새에게 겨눴다. 산탄총이 아니라 카메라였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흰부리딱따구리 사진을 찍었다.' (82쪽)

'싱어 보호구역의 흰부리딱따구리 서식지가 팔린 것은 사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건이었다. 태너는 감정을 쉽게 비치지 않는 편이었지만, 오듀본 협회의 존 베이커에게 보낸 연례 보고서에서는 좌절감을 드러냈다.' (146쪽)

새가 사라지는 숲에서는 노래가 사라집니다. 숲에서 새가 사라지면, 숲을 감도는 고운 숨결이 사라집니다. 무엇보다도 새가 사라진 숲에는 벌레가 들끓을밖에 없습니다.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린다 한들 숲에서 사는 벌레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사람으로서는 '벌레먹은 나무'를 베는 일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새가 홀가분하게 살 수 있는 숲이 있어야, 도시에 있는 사람도 마음과 몸을 달랠 만합니다. 매캐한 바람이 가득한 도시를 벗어나서 몸을 쉬고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면 숲으로 갈 테니까요. 시골에 숲이 없으면 도시사람도 쉴 데가 없지요. 시골에 숲이 없으면 도시에서 부는 매캐한 바람을 씻어 주지도 못하지요.

숲에서 비롯하는 바람이 도시마다 어루만져 주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누구나 숨을 쉬면서 삶을 지을 수 있습니다. 코앞에서 숲을 바라보거나 마주하지 않더라도, 브라질에 있는 숲이, 인도네시아에 있는 숲이, 부탄에 있는 숲이, 서울 한복판에 고인 매캐한 먼지를 찬찬히 다독여 줍니다.

 아름드리 숲을 베는 기계와 '벌목회사 노동자'
 아름드리 숲을 베는 기계와 '벌목회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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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굶어죽고 있었다. 털룰라에 있는 시카고 제재 및 목재 회사의 거대한 띠톱은 최고 속도로 통나무를 집어삼키면서 흰부리딱따구리가 둥지를 짓고 잠을 자고 먹이를 구하는 데 쓸 최후의 나무들을 없애고 있었다.' (163쪽)

'태너는 숲이 결국 사라질 운명일 것 같아서 두려웠다. 머지않아 큰 나무가 듬성듬성해지고 숲이 조각조각 나뉘어서 흰부리딱따구리 한 쌍도 못 먹일 만큼 좁아질 것이었다. 진주만에 떨어진 폭탄은 텐사스 늪지 국립공원 설립 법안도 날려 버렸다. 다들 전쟁 말고는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177쪽)

흰부리딱따구리를 찾아나선 사람들과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려 애쓴 사람들은 바로 이녁 스스로를 사랑하려는 몸짓이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 가슴에 고운 바람이 불 수 있기를 바라는 몸짓이었다고 느낍니다. 기껏해야 새 한 마리가 아닙니다.

새 한 마리가 지구별에서 모두 사라질 적에는 지구별 삶고리(생태순환고리)가 끊어지거나 흔들립니다. 어느 한 가지 목숨붙이가 모두 사라지는 지구별이라면, 아름다움이 차츰 깨지거나 빛이 바랜다는 뜻입니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곳에는 아름다움이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에서도 다루는데, '나쁜벌레(해충)'를 잡아서 죽이겠노라 하면서 뿌린 DDT는 메뚜기를 거치고 '메뚜기를 잡아먹는 다른 생물'을 거치고 거쳐서 송골매한테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송골매는 이 때문에 껍데기가 흐물흐물한 알을 낳고, 이 탓에 송골매는 사라질 뻔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논밭에 뿌리는 농약은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사람'한테 도로 돌아옵니다. 나락에 뿌리는 농약은 쌀밥을 먹는 사람한테 돌아오고, 밀밭에 뿌리는 농약은 빵을 먹는 사람한테 돌아오며, 이런 농약은 빗물에 씻겨 바다로 들어가면서 바닷물고리를 먹는 사람한테 돌아옵니다.

 오듀본이라는 분이 그린 흰부리딱따구리 그림.
 오듀본이라는 분이 그린 흰부리딱따구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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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흰부리딱따구리가 어디에서 어느 만큼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지도. 흰부리딱따구리가 사는 곳은 아주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만큼 숲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흰부리딱따구리가 어디에서 어느 만큼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지도. 흰부리딱따구리가 사는 곳은 아주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만큼 숲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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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해충 방제 용도로 작물에 뿌렸던 DDT는 작물을 먹는 메뚜기 같은 생물의 몸에 오래 남았고, 나중에 그 메뚜기를 먹는 생물을 중독시켰으며, 계속 그런 식으로 먹이사슬 꼭대기까지 도달했다. 그렇게 하여 송골매에게 도달한 DDT는 알껍데기를 약화시켰고, 그 때문에 부모가 알을 품다가 제 알을 깨뜨리곤 했다.' (232쪽)

아침저녁으로 새가 노래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새소리를 흉내내어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날갯짓하는 새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랬고, 쉴 새 없이 새끼한테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 새를 보면서 사랑을 헤아렸습니다.

새가 짓는 집을 가리켜 '둥지'나 '보금자리'라 하는데, '둥지·보금자리' 같은 말마디는 따스한 기운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집을 가리키곤 합니다. 그러니까, 한겨레는 예부터 새를 늘 곁에 두면서 아름다움을 배우고 사랑을 돌아보면서 살림을 가꾸었다는 뜻입니다.

참새가 나락을 좀 쪼더라도 참새는 가을 한철에나 나락을 좀 쫄 뿐, 한 해 내내 벌레를 엄청나게 잡아먹으니 귀엽게 바라보며 '참새'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콩 석 알을 심을 적에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벌레가 먹으며 한 알은 사람이 먹는다는 옛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새도 벌레도 이 땅에서 저마다 맡은 구실이 있다는 뜻입니다. 벌레가 있기에 거름이 삭고, 벌레가 있어서 수많은 주검이나 나뭇잎이나 풀잎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1937년, J.J.쿤은 흰부리딱따구리 '다 큰 새끼'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진으로 찍었다.
 1937년, J.J.쿤은 흰부리딱따구리 '다 큰 새끼'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진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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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흰부리딱따구리를 마지막으로 본 (1997년) 뒤에도 열 번 넘게 탐사를 이끌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전 세계에서 숲이 쓰러지고 있으니, 조류학계에서 쿠바의 흰부리딱따구리를 찾는 일은 청춘의 샘이나 앨도라도를 찾는 것에 비할 만한 중대한 모험이 되었다. (210쪽)

미국에서 끝끝내 흰부리딱따구리를 건사하거나 지키지 못하고 만 이야기를 다루는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지 못한 미국은 그리 아름답지 못한 길을 걸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흰부리딱따구리를 지키려고 애쓴 사람들은 '아름답지 못한 정책과 경제발전'이 춤추는 미국에서 숲과 마을과 사람을 지키는 새로운 길을 씩씩하게 열기도 했습니다. 오듀본 협회가 태어나고, 국립공원을 세우자는 물결이 일었으며, 지구 삶터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1940년대에 미국에서 터진 전쟁(진주만 폭격 뒤에 일어난 전쟁)은 그예 흰부리딱따구리가 살 숲을 모두 밀어내는 끔찍한 일로 이어지고 말았다고 하는 얘기를 돌아봅니다. 전쟁은 새도 사람도 모두 죽음이라는 구렁텅이로 밀어넣습니다. 전쟁무기를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바보가 되고,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서로 죽이고 죽는 짓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멍텅구리가 됩니다. 평화가 아닌 전쟁으로 나아갈 적에는 너와 내(아군과 적군)가 모두 죽지요. 전쟁이 아닌 평화로 나아갈 적에 비로소 너와 내가 함께 삽니다.

우리 삶에 아름다운 숨결이 흐르려면 마을에 새가 날아들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마다 숲이 넓게 드리울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도 곳곳에 크고작은 '숲 공원'이 있어야 합니다. 작은 손길 하나로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날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작은 마음 하나로 꿈이라는 씨앗을 심으며, 작은 새 한 마리가 짝을 찾아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웃음꽃이 활짝 핍니다.

덧붙이는 글 |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필립 후즈 글 / 김명남 옮김 / 돌베개 펴냄 / 2015.11.2. / 15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사라진 숲의 왕을 찾아서 - 흰부리딱따구리와 생태 파수꾼 이야기

필립 후즈 지음, 김명남 옮김, 돌베개(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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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