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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경찰, 부상자 발생에도 무차별 물대포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경찰 차벽앞에서 69세 농민 백남기씨가 강한 수압으로 발사한 경찰 물대포를 맞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민들이 구조하려하자 경찰은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도 한동안 물대포를 조준발사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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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은 백남기(69)씨에게 끔찍한 밤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밤을 증언하지 못한다. 그날 경찰이 직사(물줄기가 일직선 형태)로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씨는 16일 오후 현재까지도 의식이 없다. 전날 4시간에 걸쳐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생명이 위독하다. 게다가 코뼈도 함몰됐고 안구에도 이상이 생겼다(관련 기사 : "백남기씨 상태 위중,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오마이TV>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백씨는 물대포에 맞자마자 쓰러진다. 그런데 경찰은 이미 쓰러진 그를 향해 거듭 물대포를 쏜다. 다른 집회 참가자들이 백씨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지만, 물대포는 멈추지 않는다. 이들이 간신히 사정거리를 벗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20초, 이 시간 동안에도 백씨는 강력한 수압의 물대포 직사에 노출돼 있었다.

사경을 헤매는 농민... 헌재 소수의견 우려는 현실로



백씨를 죽음의 경지로 내몬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자 경찰은 "과잉진압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지난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나이 든 농민을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쏜 것이 아니라 경찰 장비를 훼손하려는 시위대에게 살수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분이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자신들은 "경찰청 <살수차 운용지침>대로 물대포를 직사했으며, 지침에는 직사의 경우 물대포 세기를 최대 3000rpm까지 할 수 있지만 2500rpm까지만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014년 6월 26일 김이수·서기석·이정미 헌법재판관은 물대포 직사가 어떤 상황에서든 위험하다며 경찰의 물대포 직사는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근거리 직사 살수는 발사자의 의도이든 조작실수에 의한 것이든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은 박희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와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가 2011년 11월 10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직사한 일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이었다.

당시 집회에서 경찰은 충분한 경고방송 없이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한 지 10여 분 만에 물대포를 쐈다. 경찰은 지침대로 경고살수 후 분산 살수(15초)와 곡사 살수(10초)를 모두 1회씩 한 다음 물대포를 직사로 쐈지만 직사 살수 시간이 가장 길었다(3회 총 8분). 당시 시위대 앞쪽에 있어 물대포와 고작 3~4m 떨어져 있던 박희진 대표는 물대포에 맞아 고막이 찢어졌고, 이강실 대표는 뇌진탕을 입었다.

헌법재판소는 이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박한철·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조용호 재판관은 이미 집회가 끝난 상황이라 물대포 직사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청구인들의 권리를 구제하지 못한다고 봤다. 그래도 굳이 이 문제를 살펴본다면 '합헌'이라는 게 이들의 결론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수의견은 "근거리 물포 직사 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이수·서기석·이정미 재판관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피청구인(경찰)은 경찰과 시위대의 직접적 충돌을 최소화하는 수단으로 물포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물포의 반복 사용이 예상된다"며 물대포를 직사로 쏘는 것이 합법인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세 재판관은 물대포 직사가 위헌인 까닭을 조목조목 명시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대포 직사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직사 살수는 사람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생명·신체에 가장 위험을 끼칠 수 있는 직사 살수를 가장 긴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행한 것은 도로교통방해행위 방지와 질서유지 목적이었다고 해도 과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또 직사 살수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가슴 아랫부분을 겨냥한다'는 경찰 내부지침만으로는 적절한 통제가 어렵다고 봤다. 세 재판관은 "물포는 수압이나 사용방법 등에 따라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경찰장비"라며 "구체적인 사용 근거와 기준 등 중요한 사항은 법률 자체에 직접 규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경찰이 적법한 해산명령 없이 물대포를 쏜 점 역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물대포 직사 반복 가능성 없다? 헌재가 너무 안이했다"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4일 오후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집회참가자들을 향해 발사한 캡사이신 섞은 물대포가 거품을 내며 도로 한가득 흘러내리고 있다.
▲ 강물처럼 흐르는 캡사이신 물대포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4일 오후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집회참가자들을 향해 발사한 캡사이신 섞은 물대포가 거품을 내며 도로 한가득 흘러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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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4일 오후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설치한 차벽에 집회참가자들이 사다리를 설치하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파란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 캡사이신 섞인 파란 물대포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지난 14일 오후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설치한 차벽에 집회참가자들이 사다리를 설치하자, 경찰이 캡사이신과 파란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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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소수의견이긴 했지만, 세 재판관의 우려와 예측은 정확했다. 백남기씨는 "사람의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직사 살수에 맞고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입었다.

물대포 관련 헌법소원을 대리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16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헌재가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며 박한철·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조용호 재판관을 비판했다. 그는 "'반복 가능성이 없다'며 현장을 전혀 모르는 다수의견에 황당했다"고 말하면서 "그때 헌재가 제대로만 판단해줬다면 백씨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민변은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물대포 직사의 위헌성을 따져보기 위해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편 헌재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 때 경찰이 다량의 최루액을 사용한 일 역시 위헌이라며 유족들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도 심리하고 있다(관련 기사 : 민변 "경찰, 세월호 집회 때 공권력 남용" 소송 제기).

○ 편집ㅣ김준수 기자



태그:#물대포, #경찰, #과잉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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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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