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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밤. 서울 중구의 조선일보사와 서울파이낸스센터 사이 도로에서 차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은 경찰과 끈질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니, 물대포와 캡사이신으로 학대 당하고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종각 쪽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집회 참가자 무리를 슬쩍 빠져나왔다.

11월 14일 물대포는 뭔가 달랐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구급차가 이동하는 중에도 물대포를 쏘고 있다.
▲ '민중총궐기 대회', 물대포 쏘는 경찰! 구급차도 상관없어!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이 구급차가 이동하는 중에도 물대포를 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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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쪽에도 여지 없이 차벽이 보였고 물대포가 무서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거센 물줄기가 나무를 스칠 때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바람에 몇몇 나무들이 잠깐 사이에 벌거숭이가 됐다. 물줄기는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쉿쉿 소리를 내며 집요하게 사람들을 뒤쫓았고 나는 물줄기를 보며 이전과는 뭔가가 다르다고 느꼈다.

물대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그날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지금껏 광화문에서 큰 집회만 열리면 경찰은 신주단지 모시듯 물대포들을 차벽 뒤에 쟁여 놓고 시도 때도 없이 물을 쏘아댔다. 물론 전에도 사람을 똑바로 겨누어 물줄기를 쏜 적은 많았다. 그때마다 적잖은 사람들이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의 물줄기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퍼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격 게임 하듯 한명 한명 끝까지 따라다니며 쏘진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내가 느낀 것은 살기였다. 반드시 목표물에 명중시켜 실적을 올리고야 말겠다는 집념 같은 것이 느껴질 정도로 물줄기는 아무 거리낌 없이 죽창처럼 날아가 사람들의 몸에 꽂혔다. 나는 어지럽게 피어나는 물보라 속에 꼼짝 않고 서서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금세 알 수 있었다. 저 물줄기는 자신이 어느 곳을 쏘아 맞히려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 쏘는 물줄기였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왱왱거리며 울렸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쓰러졌다. 혹시 이대로 가다가 총검을 든 군인들이 어디선가 뛰쳐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섭게 퍼부어지는 물줄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흉흉했지만, 앞으로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구급차 한 대가 내 앞에 와서 멈췄다. 누군가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 쪽으로 왔고 곧 구급요원들이 뛰어나와 구급차 뒷문을 열었다. 물대포 쪽을 향해 구급차의 안쪽이 환히 드러났다. 요원들이 환자가 누운 들것을 천천히 구급차 안으로 들여놓고 있던 중에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물대포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구급차를 덮친 것이다.

▲ 구급차와 환자를 향해 물대포를 쏘는 경찰
ⓒ 용혜인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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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덮친 물대포... 그것은 명백한 살의였다

나중에 뉴스를 보고 들것에 실린 사람이 팔이 부러진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는 그 사람이 얼마나 다쳤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구급차 안으로 반쯤 들어간 들것을 요원들이 마저 밀어 넣으려는 순간 물줄기가 요원들과 들것을 향해 똑바로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구급차 뒤쪽을 에워쌌지만 물줄기는 멎지 않았다.

사람들이 입은 얇은 우비가 거친 물줄기에 쓸리며 촤촤촤촤 하는 소리가 났다.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물대포를 향한 고함과 욕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구급요원들과 들것에 실린 환자가 물대포의 목표물이 되었다고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수석에서 요원 하나가 후다닥 튀어나오더니 손에 마이크 같은 것을 쥐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 쏘지 마세요! 쏘지 마세요!" 그러나 물대포를 조종하는 경찰은 구급차 안으로 들것이 들어가 버리면 목표물을 놓친다고 생각했는지 구급차의 열린 뒷문을 정확히 조준해서 물줄기를 쏘았다. 사람들과 요원들이 몸으로 막지 않았다면 그 환자는 팔뿐 아니라 다른 곳도 부러졌을 것이다.

물대포를 조종하는 경찰은 구급차 안으로 들것이 들어가 버리면 목표물을 놓친다고 생각했는지 구급차의 열린 뒷문을 정확히 조준해서 물줄기를 쏘았다. 사람들과 요원들이 몸으로 막지 않았다면 그 환자는 팔뿐 아니라 다른 곳도 부러졌을 것이다.
 물대포를 조종하는 경찰은 구급차 안으로 들것이 들어가 버리면 목표물을 놓친다고 생각했는지 구급차의 열린 뒷문을 정확히 조준해서 물줄기를 쏘았다. 사람들과 요원들이 몸으로 막지 않았다면 그 환자는 팔뿐 아니라 다른 곳도 부러졌을 것이다.
ⓒ 민중의 소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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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고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저것은 명백한 살의였다. 어딘가가 부서져 더는 활동할 수 없는 인간에게 흉기나 다름없는 물대포를 똑바로 겨누어 쏘는 것은 너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뜻 말고는 다르게 해석할 수가 없는 행위였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 도저히 멈출 것 같지 않던 물줄기가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옮겨 가더니 다른 누군가를 향해 겨누어졌다. 몸으로 물줄기를 막느라 온몸이 흠씬 젖은 사람들은 증오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는 가슴을 쳤고 누군가는 발을 쿵쿵 굴렀다. 누군가는 소리 내서 울었다. 정신을 차린 요원들은 구급차 안으로 들것을 밀어 넣고서 쾅하고 뒷문을 닫았다. 곧 사이렌 소리가 울렸고 구급차는 그곳을 빠져나갔다.

멍하니 서 있던 나는 다시 광화문 쪽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다가 후미진 곳으로 가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저 앞에 버티고 있는 공권력은 이 자리에서 누구 하나 죽어도 얼마든지 뒷수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감쪽같이 수습해 박근혜 정부에 물 한 방울 튀기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소름 끼치는 자신감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참담하면서도 무척 모욕적인 일이었다. 저들은 우리를, 밟아 죽여도 아무런 표시가 안 나는 개미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맛도 모르고 피운 담배가 다 타자 다시 광화문으로 갔다. 그리고 할아버지 한 분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은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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