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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을 가려서 신중히 하는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달변에 토론을 즐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을 가려서 신중히 하는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달변에 토론을 즐긴다.
ⓒ 주·월간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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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주세력은 방황하고 있어"


- 보수진영에서는 근대화(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로만 그렇다. 민주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 논쟁에 뛰어들 생각은 없지만 이런 정도로 생각한다. 저쪽(보수진영, 박정희 세력)은 기본적으로 군국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민주공화정 안에서 적응하고 있다.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 3당 합당을 달리 해석하면 군국주의에 기반 둔 박정희 세력이 민주화세력의 일부를 충원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쟁력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 유전자의 변형이 일어난 것이다.

다음은 민주세력이다. 오늘날 민주세력은 방황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 안에서 정치하는 사람에게 '당신 이념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절반은 '김대중 정신', 나머지 절반은 '노무현 정신'이라고 답할 것이다. 다 엉터리다. 김대중 정신이든 노무현 정신이든 계승과 극복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

노무현의 머리를 지배한 화두는 지역주의 극복이었다. 지역주의 극복을 목숨걸고 추진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영남 민주세력의 복원을 의미했다. 노무현은 1987년 분열구조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의 가치가 자유, 평등, 평화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호남과 가야(부산.경남)의 연합을 통해 6월항쟁의 가치를 민주기지화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했어야 했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런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남을 때리면서 영남의 한나라당 세력과 연합함으로써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게 노무현의 한계다.

김대중 정신의 한계는 뭐냐? 지금 야당은 그 역사를 60년이라고 하는데 이는 법률적으로 틀렸다. 양김이 만든 통일민주당에서 김대중이 탈당했다. 그 당은 김영삼이 3당 합당함으로써 그 당의 법적 정통성은 현재의 새누리당이 가지고 있다. 평화민주당의 김대중과 이기택이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만들었다. 그런데 김대중은 1995년 이 당을 탈당했다. 1997년 대선에서 조순, 이기택이 이회창과 합당했다. 만약 평민당에서 근무한 당직자가 근무 경력을 떼야 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니라 새누리당으로 가야 한다. 현재 야당의 뿌리는 1995년 김대중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다. 그러니 야당의 역사가 60년은 아니다. 김대중 정신은 1987년 분열 구조 위에 선 호남세력의 집권전략이었다. 지역등권론이 그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이 자유, 평등, 박애로 알려졌지만 원래는 자유, 평등, 소유권이었다고 한다. 100년 동안 왕정과 공화정을 왔다갔다 하다가 제헌의회를 만들었는데 그때 비로소 헌법에다 프랑스 대혁명의 가치를 자유, 평등, 박애로 정의했다. 나는 앞으로 대한민국 민주공화정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대한민국의 가치는 6월항쟁의 가치인 자유, 평등, 평화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은 1987년 대선 패배 이후 중단됐다. 민주세력 안에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가 기고의 선으로 자라집았다. '김영삼이냐 김대중이냐'는 집권전략으로 그 이후 10년 동안 갔다.

그래서 6월항쟁의 주도세력들은 철저히 개인으로 해체되면서 다양한 진로를 걸어갔다. 극단적으로는 김영환('강철서신'의 저자)이 조선노동당에 투항했고, 맑스-레닌주의자들이 김영삼이나 새누리당에 투항했다. 또한 운동권의 다수를 차지한 재야와 학생운동세력은 대체로 김대중당에 투항했다. '투항'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김대중의 집권을 위해 수혈된 것이지 6월항쟁 정신을 가지고 정치권을 바꾸기 위한 세력으로 들어간 게 아니었다. 그냥 '젊은 피 수혈'이다. 민주진영은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각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선거전술만 난무하고 있다. 정신과 자치가 사라진 자리에 합종연횡론과 정치공학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권의 길만 논하는 유세객들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박근혜 집권은 유훈통치의 극명한 증거"

- 세 개의 혁명에 이은 '세 개의 유훈통치'는 무엇인가?
"우선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은 박근혜의 육신인가 박정희의 정신인가? (기자가 '박정희의 정신이다'고 대답하자) 지금 여기가 유훈통치인 것이다. 박정희는 1979년, 김일성은 1994년 죽었다. 내용적으로 보면 1979년 박정희가 죽을 때부터 유훈통치가 시작됐다. 김일성의 유훈통치는 달리 얘기할 필요가 없다. 민주세력조차도 유훈통치다.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을 극복하려면 6월혁명의 가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죽은 사람 이름 가지고 표만 얻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여기(민주진영)도 유훈통치다.

김대중이 처음 국회에 등원한 것이 1963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당 정치인은 소리지르며 박정희와 싸우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대중이 국회에 들어오면서 어젠다(의제)나 비전이 도입됐다.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대중경제, 평화통일를 새로운 어젠다와 비전으로 제시했다. 국회의원만 할 사람이라면 이런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게가다 당시 얼마나 엄혹한 세상이었나? 그런데 김대중은 이 세 가지를 보수야당의 어젠다로, 국가비전으로 통합시켰다. 이것이 지도자의 자세다. 지금 야당 지도자 가운데 한국사회,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어젠다를 제시하고, 김대중처럼 공부하는 사람이 있나?"

- 유훈통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퇴행이다. 한반도 정치가 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퇴행의 정점은 새누리당이 패권세력이 된 것이다. 남북통합, 역사 바로잡기, 재벌체제 탈피 등이 다 뒤집어지고 있지 않나?"

- 한반도는 여전히 '박정희-김대중-김일성'이 경합하는 체제인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나? 유훈통치인데. 그걸 뚫고 나가야 한다. 이 유훈통치를 깰 사람이 민주진영에서 나오기 바란다."

- 박근혜의 집권도 그런 한반도 삼국지 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인가?
"극명한 증거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박정희의 환생으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박근혜가 선거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것도 있지만."

- 책에 표현된 것을 빌리자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벌세력'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계승됐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계승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다. 전두환, 노태우는 박정희가 정성들여 키운 사무라이들이다. 이명박은 박정희가 정서들여 키운 재벌의 총아다. 박근혜는 박정희 그 자체다."

- 그렇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한반도 삼국지 체제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나?
"그걸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왔다. 그저께 박근혜가 '이 상태로 통일되면 사상적 노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내 짐작이긴 하지만, 그 발언은 박근혜와 그 주위 사람들이 예상보다 빨리 북한이 붕괴해 통일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북한 난민을 우려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박정희)가 힘들여 이룬 이 나라가 무너질 것 같다고 걱정한 것이다. 남한의 좌파와 종북세력, 북한의 공산당세력이 합치면 대한민국을 만든 세력이 포위되거나 고립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중심이 박정희와 산업화세력이었음을 확실하게 해야만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상적으로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산 것 아니겠나?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박근혜가 지나치게 복고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좋게 평가하려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것이 아니다. (예상보다 빠른) 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으로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본다."

"정치권 386세대 정말 각성해주길..."


- 노무현 시대는 한반도 삼국지 체제의 예외인가?

"아니다. 김대중 산맥 중 큰 산 정도다. 민주주의 산맥의 한 봉우리 정도. 노무현은 자신이 김대중의 자산과 부채를 다 인수하겠다고 했다. 노무현은 김대중 계열이다. 나중에 2권을 쓰게 될 텐데 그것은 '노무현-박근혜-김정일'의 한반도 삼국지가 될 것이다."

- 재야나 진보정당은 한반도 삼국지 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나?
"최소한 2002년까지 제도정치권에 영향을 줄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 속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다. 진보정당은 2004년에서야 10명이 당선되면서 정치적 실체로 등장했다. 재야는 무장해제돼 개인적으로 (제도정치권에) 수혈됐다. 특별히 19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386세대, 전대협세대가 다시 한번 가치의 부흥을 이루어내길 바란다. 정치권에 있는 386세대가 정말 각성해주길 바란다."

-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 모두 죽었다. 한반도 삼국지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유훈통치를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에 달렸다. 6월항쟁의 가치인 자유, 평등, 평화가 한국사회 민중들이 합의할 수 있는 정신이다. 이것이 헌법 전문의 대한민국 정신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야권 혁신의 출발점이다. 나는 역사의 진로나 방향을 결정하는 테제를 발표한 것은 아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쓴 것이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 그 방안 가운데 하나로 지금 대통령중심제를 바꾸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그것은 내가 답변할 범위를 넘어선 질문이다. 100년, 200년 후에 역사가가 오늘의 시대를 어떤 관점에서 서술할까, 이런 시각에서 박정희-김대중-김일성 세 사람의 역할, 공과 과를 균형있게 쓰려고 했을 뿐이다. 악마화하려는 모습을 피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 그것을 바꿀 사람이나 세력이 안보이나?
"그래도 미약하나마 기대는 있다. 그것은 6월항쟁 세대라고 본다. 그 세대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캐나다에서는 44살의 젊은 지도자인 저스틴 트뤼도가 총리가 됐고, 영국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제러미 코빈이 총리가 됐다. 미국에서도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대중들에게 열렬하게 지지받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주도권이 도전받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는 6월항쟁이라는 민중적 변혁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국회의원 배지와 바꾸어 먹었다. 그렇다면 보수야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초심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6월항쟁의 정신인 자유, 평등, 평화는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고, 진보정당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새누리당에서도 중도세력, 운동권적 사고에서 벗어난 테크노크라트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야권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런 거에 신경쓸 필요 없다."

보수정치세력인 민주당에서 '평등'이라는 개념을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다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유, 평등, 평화를 다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 야당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코빈이나 샌더스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한다. 민주당에서 그런 사람이 나오면 정당을 같이 해도 된다."

"6월항쟁의 부흥은 자유, 평등, 평화의 완성"

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 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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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대.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대.
▲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대.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대.
ⓒ 이인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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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6월 민주주의 혁명에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박정희나 김일성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6월항쟁이라는 역사상 그렇게 중요한 혁명이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 왜 6월항쟁이 잊혀지고 있다고 보나?
"민주세력 내부의 분열과 탐욕 아니겠나? 1960년대 지리멸렬한 야권에서 목숨걸고 대통령이 되고, 우리 사회를 민주화 화겠다고 하는 지도자가 2명 나왔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이런 정도로 바뀌었다. 지금 범민주진영에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겠다고 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긴 있는 것인가?"

- 그렇다면 '6월항쟁의 부흥'이 민주주의의 완성인가?
"자유, 평등, 평화의 완성이다. 자유의 완성은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복원시키는 것이고, 평등의 완성은 신자유주의로 쓰러진 한국사회를 인간공동체로 복원하는 것이고, 평화의 완성은 남북관계를 미래지향적이고 민족적인 이익으로 키워 나가는 것이다. 지금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바로잡고, 6월항쟁의 부흥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말만 바꾼다고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 6월항쟁의 부흥을 얘기하는 것은 한물 간 프레임으로 평가받는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복원해야 한다는 뜻으로 비친다.
"나는 현실정치 차원에서 어젠다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꼭 자유, 평등, 평화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고 그 개념을 현대화해서 민중의 열망을 받으면 그것이 6월항쟁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 조성주(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같은 사람은 이 책에서 상당히 영감을 받을 것이다."

- 책에서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가치의 전선이 사리진 시대에서 이제는 권력투쟁에서 이기는 싸움의 기술을 설파하는 정치공학자들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지금이 그렇다. 솔직히 문재인도 부산 친노의 정치공학 하나로 가고 있다. 얄팍한 지역연합구도말이다. 전부 일시적으로 표받기 위한 작전만 펴고 있다. 누가 김대중 정신 외치는 사람에게서 김대중 정신을 보나? 누가 노무현 정신을 외치는 사람에게 노무현 정신이 있다고 보나?"

- 양김이 차례로 정권을 잡은 것을 '민주주의의 우회적 진전'이라고 평가했는데.
"박정희 세력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해 군벌세력을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했지만 문민통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김대중이 집권함으로써 민주화세력도 사회적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문에 진보정당도 자리잡았다."

- 하지만 양김은 정권을 잡기 위해 3당합당, DJP(혹은 DJT)연합을 하지 않았나? 즉 군벌세력과 합치거나 군벌세력에서 이탈한 세력과 연합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군벌정권'을 연장시킨 것인가, 아니면 끝낸 것인가?
"민주진영쪽에서 보는 것과 군벌세력 내부에서 보는 것이 각각 다를 수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민주세력이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갔다고 할 수 있지만 6월항쟁을 계기로 멸망의 위기에 몰렸던 군벌세력이 민주세력의 분열로 살아남았고, 결국 패권세력으로 복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각도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민주세력, 남북한 군국주의 사상 극복 유일한 대안"

- 여전히 '친일'과 '종북'으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한국사회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퇴행의 슬픈 모습이다. 21세기로 가야 하는데 20세기 중반, 해방 직후에 논쟁하던 것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슬픈 모습이다. 안타깝다. 유훈통치의 범위에서 못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 '친일'이든 '종북'이든 그런 프레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70년째 계속 써먹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광기의 사회로 만들었던 밑바탕인 6.25 전쟁은 보수의 출발점이고, 5.18 민중학살은 진보의 출발점이다. 이번 책을 통해 우리가 살던 시대를 객관화하고, 미움과 증오보다는 긍정적으로 경쟁하는 것을 바란다. 그동안 군국주의 세력은 민주세력을 김일성에 종속된 세력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고 민주세력이야말로 남북한의 군국주의사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 '친일', '종북' 프레임에 가장 민감한 반응하는 쪽이 민주화 세대, 1980년대 세대다.
"우리(민주세력)는 박근혜 역사전쟁에 대항할 수 있는 완벽한 근거를 갖추고 있다. 남북한 세력 가운데 (남한의) 민주세력만이 유일하게 민주공화정을 이룬 세력이다. 그런 점에서 불충분한 점이 있더라도 더 노력해서 이땅에서 군국주의 사상을 추방하고, 민주주의가 꽃피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

- 한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대통령 가운데 노태우 전 대통령(혹은 노태우 정부)이 가장 저평가된 것 아닌가 싶다.
"내가 특별하게 노태우와 관련해 두 개의 장을 할애했다. 노태우는 군벌 출신이었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을 다독이면서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이것이 그가 첫 번째로 뛰어난 점이다. 두 번째로 뛰어남 점은 군벌통치로 복귀하기보다 민주헌정 질서 안에서 통치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직선제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을 가졌다고 생각해 헌정 질서 안에서 통치해야 한다고 확고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김영삼이 집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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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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