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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프랑스 파리의 식당.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프랑스 파리의 식당.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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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가 일어난 프랑스 파리의 캄보디아 식당 앞에 놓인 꽃들
 테러가 일어난 프랑스 파리의 캄보디아 식당 앞에 놓인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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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파리의 밤은 전쟁을 떠올리게 했다.

기자는 밤 10시 반쯤에 우연히 TV를 켰는데, 모든 방송에서 테러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여서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하고 놀라서 TV 앞에 앉았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벌어진 '파리 테러'

뉴스에서는 파리 시내 11구에 위치한 바타클랑(Bataclan) 공연장 테러로 사상자가 발생했고 경찰과 구호대가 도착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제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되어서 였을까. 뉴스는 처음엔 사망자 수가 18명이라고 하더니 이어 40명이라고 전했다. 1500석을 보유한 바타클랑 콘서트 홀에는 이날 저녁 미국 록밴드의 공연이 있었고 관객은 만원이었다.

그런데 뉴스는 바타클랑 공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10구에서 또 다른 총격사건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식당(Le petit Cambodge)과 그 맞은 편에 위치한 '르 캬리옹(Le Carillon)' 카페가 그 무대였다. 그 앞에 흑색 승용차가 나타나더니 괴한이 내렸고, 테라스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12명 사망. 그 캄보디아 식당과 캬리옹 캬페는 기자의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여서 기자도 자주 이용하던 장소였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날 밤 프랑스-독일 친선 축구 경기가 열리던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8만명 수용)에서도 폭발물 세 개가 터졌다. 때문에 경기를 관람하던 올랑드 대통령이 급히 피신했고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운동장 안으로 내려와 퇴장 신호를 기다리는 일도 벌어졌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올 뻔했던 축구 경기장에서는 오히려 3명의 '카미카제'와 1명의 사망자만 발생했다.

사건 다음 날인 14일 토요일 아침 7시.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한국에 있는 오빠가 파리 테러 소식을 듣고 걱정이 돼 전화한 것이다. 이어서 동생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왔고 프랑스 지방에 사는 프랑스 친구들이 별 일 없냐고 전화하는 등 요란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침을 간단하게 차려 먹고 집에서 멀지 않은 캄보디아 식당으로 향했다. 언론에서 되도록 외출하지 말라고 해서 인지 거리는 한산했다. 철문을 무겁게 내린 식당 앞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고 많은 꽃다발과 촛불이 켜져 있었다. 길 건너편에 자리한 셍 루이 병원에서는 헌혈을 받고 있었다. 파리의 다른 병원처럼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해서 지금은 혈액이 넘쳐나는 상황이란다.

 파리 테러 후 병원 앞에서 헌혈을 위해 줄서 있는 프랑스인들.
 파리 테러 후 병원 앞에서 헌혈을 위해 줄서 있는 프랑스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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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가 일어난 프랑스 파리의 거리. '두렵지 않아'라는 팻말이 보인다.
 테러가 일어난 프랑스 파리의 거리. '두렵지 않아'라는 팻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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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었던 한 아저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포르투칼계인 48세의 아르멩도씨는 파리 근교에 사는데 자신이 이전에 살았던 곳이라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 '프레드'라는 친구가 바타클랑 공연장에 있다가 지붕을 타고 근처 아파트에 피신해 목숨을 구했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들었다며 그 친구에게 빨리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이번 테러 사건을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아르멩도씨는 "등이 시리는 것처럼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번 테러로 밖에 나가는 게 두렵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다. 평소처럼 살아야 한다. 우리가 무서워한다면 테러범들이 기뻐할 것이다. 오히려 고개를 번쩍 들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파리는 모든 학교와 관공서,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등 관광명소뿐만 아니라 백화점들이 문을 닫았다. 모든 문화, 스포츠 행사가 취소됐으며, 10여 개의 지하철 노선과 일부 버스노선의 운영이 금지됐다. 또 공공장소에서의 집회가 다음 주 목요일까지 금지됐다. 프랑스는 3일 동안 '국장'을 선포하고, 국경을 폐쇄하는 등의 대긴급조치를 취했다. 프랑스가 이런 대긴급조치를 취한 것은 1955년 알제리 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며 이렇게 대형 희생자를 낸 테러도 지금까지 없었다.

전쟁과 같은 공포상태, 충격에 빠진 파리

14일 밤 현재, 테러 상황은 좀더 명확해졌다. 이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세 그룹으로 나눠져 실행됐다고 뉴스는 전했다. 13일 오후 9시 20분 '스타드 드 프랑스'를 시작으로 9시 57분 '바타클랑'의 2차 폭발까지 37분간, 모든 테러가 여섯 장소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현재 사망자 129명과 부상자 352명을 냈으며 부상자 중 99명은 생사를 오가는 중상으로 알려졌다.

89명이라는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바타클랑 공연장. 테러범 3명이 공연장에 들어와 관객들에게 무차별로 총을 난사해 1차 희생자를 냈다. 이후 수십 명의 인질을 잡고 대기하는 동안 테러범 2명이 허리에 찬 폭탄을 터트려 자폭해 근처의 인질이 수십 명 살상되면서 2차 희생자를 냈다. 자정이 넘어서 투입된 프랑스 특수경찰에 의해 1명이 사살되면서 테러범들은 진압됐지만 결국 89명이라는 대형 사상자를 냈다.

그 사이 일부 관객들은 여러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무대 근처에 있었던 사람들은 무대 뒤에 설치된 비상구로 바로 탈출했고 2층 발코니에 있었던 사람들도 바로 옆에 있는 비상구를 통해 빠져나왔다. 일부는 시체 사이에서 숨도 쉬지 못하면서 죽은 사람 흉내를 내 겨우 살아남았는가 하면 한 여성은 시체 밑에 깔린 채로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테러가 일어난 프랑스 파리의 캄보디아 식당과 르 크리옹 카페가 마주 보고 있는 거리
 테러가 일어난 프랑스 파리의 캄보디아 식당과 르 크리옹 카페가 마주 보고 있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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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인명이 희생당한 바타클랑 공연장
 많은 인명이 희생당한 바타클랑 공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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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현재 7명의 테러리스트가 사망했는데 6명이 자폭했으며, 1명만이 사살됐다. 이 중 한 명의 정체가 드러났다. 바타클랑 공연장에서 발견된 잘린 손가락으로 DNA가 밝혀진 이 테러범은 '오마(Omar)'라는 이름의 30세의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으로 밝혀졌다. 시리아 여권도 하나 발견됐는데 여권 소지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테러범들은 모두 2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젊은 청년들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죽음을 자초한 자들이라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는 게 전문가의 말이다.

이슬람 국가(IS)는 시리아를 공격하고 있는 프랑스가 테러의 집중 대상이 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들이 공연장과 경기장, 카페, 식당 등을 고른 것은 가능한 많은 희생자를 낼 수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샤를리 엡도 공격이 특정인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번 테러는 죄없는 무수한 시민을 상대로 했다는 점에서 무서운 파장을 낳고 있다. 이슬람 국가는 프랑스가 시리아 공격을 중단하지 않는 한 테러는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프랑스 정부는 이번 테러로 시리아 공격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악순환이 예상되자 프랑스인들을 사실상 전쟁 상태와 같은 공포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 테러로 프랑스 전국이 치안 확보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공공장소에서의 가방, 몸 수색을 강화하고 도청뿐만 아니라 더 많은 곳에 감시 카메라를 실시해야 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결국 치안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가 타격을 받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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