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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기자말

3년 만에 큰애를 본다는 설렘으로 마음은 날아 갈 것만 같았다. 큰애의 입학을, 새로운 출발을 축하할 겸, 우리 가족은 설 명절 기간 동안 호주 멜버른 여행을 하기로 했다. 실로 3년여 만에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작은 애가 예약한 항공편은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경유 해서 멜버른으로 간다. 예전에는 직항이 있었는데, 이용객이 적어서 폐지되었다고 한다.

갈 때는 쿠알라룸푸르 환승 대기시간이 5시간뿐이어서 그냥 공항에서 기다리기로 했지만, 돌아 오는 길에는 9시간의 환승시간을 이용해 쿠알라룸프르 야시장 투어도 즐기기로 했다. 모두가 들떠 있는 가운데 걱정거리도 있었다.

장시간 비행의 지루함, 팟캐스트로 날리다

내가 외국에 나가본 것은 대여섯 시간이면 충분한 동남아 지역이 전부여서 비행기만 열 다섯 시간 타야 하는 맬버른 여행은 부담스러운 여정이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번 여행을 위해 체력을 다지기 위한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했다. 내 경우에는 금년 1월부터 금연을 시작해서 담배로 인한 금단 증세가 덜 하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시차 때문에 비행시간 계산이 쉽지 않다
▲ 멜버른행 비행기표 시차 때문에 비행시간 계산이 쉽지 않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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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리무진 버스는 승용차 장기 무료주차가 가능한 익산에서 타기로 했다. 예전 태국여행에서 이용했던 코스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새벽 4시에 익산 리무진 터미널에 도착해서 보니, 버스표가 매진된 것이다. 한 겨울 새벽 추위에 떨면서 인천공항까지 승용차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표를 파는 아저씨가 예약했다가 안 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기다려 보라고 했다. 미리 예약하지 않은 나의 부주의를 탓하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마침 빈자리가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작 빠른 작은 애가 모든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짐을 부치는 과정에서 살짝 기분이 상했다. 수하물이 일정 무게를 초과하면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허용되는 수하물 무게가 생각보다 적었고,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한 것에 비해 그 가격이 배나 비쌌던 것이다.

왠지 바가지를 쓴 느낌이었다. 그리고 설 명절을 전후한 황금연휴로 인해 출국 수속장에는 엄청난 줄이 만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3년 만에 큰애를 본다는 설렘으로 내 마음은 날아 갈 것만 같았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는 현지 시간으로 오후 다섯 시 정도 도착했다. 대충 6시간 30분 정도의 장거리 비행이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온 것 같다. 예전에는 여행의 무료함을 잡지와 음악으로 달랬는데, 여기에 팟캐스트가 추가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열어 놓은 새로운 미디어 세계는 휴식,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지식에 대한 갈증해소가 모두 가능한 공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잠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정치적인 이슈에서 역사, 심리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고수들이 내놓는 고품질의 콘텐츠가 널려 있는 곳이 팟캐스트다. 지금 팟캐스트 세상에서 활약하는 고수들을 보면 옛날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에서 보통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팟캐스트를 차분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말에 VOD로 드라마 전편을 몰아서 보는 빈지 뷰잉(Binge Viewing)족처럼,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버스나 비행기에서 보내는 긴 기다림의 시간은 팟캐스트를 몰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제는 출장이나 여행의 준비작업에 팟캐스트 다운로드가 필수적인 항목으로 자리 잡았다.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면 바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새로운 형태의 휴식을 즐기는 것이다. 피곤하게 눈을 뜨고 보지 않아도 그냥 지식과 정보가 귀로 들어 오는 라디오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예전에 필리핀 여행을 갔을 때, 힘들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아내도 견딜 만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내 표현대로 그 동안 열심히 한 운동이 체력을 더해주고, 팟캐스트가 지루함을 덜어내고, 3년 만에 아들을 본다는 기대감이 우리를 들뜨게 했기 때문이리라.

공항에 회원제 스파라니...

우리는 제법 싱싱한 상태로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맛집을 찾아 나섰다. 멜버른까지는 대략 8시간의 장거리 비행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좀 버티면 되겠지 하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찾은 곳이 말레이시아 스트리트 푸드를 판매하는 코너였다. 식당 3개가 연달아 붙어 있었는데, 첫 번째 집의 기다리는 줄이 가장 길었고, 메뉴도 가장 괜찮아 보였다. 아내와 작은 애는 첫 번째 집에서 줄을 서고, 나는 줄이 가장 짧은 세 번째 집으로 갔다.

면류에 고명을 얹어주는 형태가 대부분
▲ 말레이시아 스트리트 푸드 면류에 고명을 얹어주는 형태가 대부분
ⓒ 트레블딜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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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제공하는 메뉴는 대부분 면류를 볶거나, 삶아서 고기 국물에 말고, 거기에 여러 가지 고명을 얹어 주는 형태였다. 지금까지의 동남아 여행 경험에 의하면, 현지 음식에는 한국인들이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향료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잘못 주문한 경우에는 거의 먹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일단 한 그릇씩 주문하여 먹어 본 후, 맛이 있으면 더 먹기로 했는데, 아쉽게도 두 그릇 모두 겨우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전세계 표준음식인 패스트 푸드점에서 파는 치킨과 햄버거로 부족한 배를 채웠다. 저녁을 이렇게 해결하고 공항을 구경하다가 발견한 곳이 스파였다. 마사지도 할 수 있어서 남은 시간 보내기에 딱 좋다고 생각했는데,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공항이라는 곳이 여행객들이 거쳐 가는 곳인데, 어떻게 회원 전용으로 운영되는지 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전에도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이 있어서 들어 가려고 했더니 거기도 회원 전용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와이파이가 되는 패스트 푸드점 한켠에 죽치고 앉아서 비행기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지면서 나는 공항면세점을 둘러 보다가 술을 사기로 했다. 외국에서는 소주를 주류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아직 소주만큼 맛있는(?)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외국에 여행 갈 때에는 꼭 소주를 한 박스씩 챙겨간다.

외국 여행에서 먹는 식사에는 고기 안주가 흔하고, 그 때 소주 한잔을 곁들이면 이국의 음식에서 느끼는 부조화를 한번에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 나라 음식 특유의 향이나 육류의 느끼함을 상쇄하는 데 소주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소주를 챙겨가지 못했다.  말레이시아를 경유하기 때문에 거기서 압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공항 면세점 직원 이야기 때문이었다.

소주가 없으면 위스키나 보드카에 음료수를 칵테일해서 마시는 것도 괜찮다. 작은 애와 나는 주류 코너를 여기저기 돌아 보다가 보드카를 한 병 골랐다. 고기와 술은 서로 맛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 나중에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지만 보드카와 함께한 호주의 쇠고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태그:#워킹홀리데이, #호주유학, #쉐프, #청년실업, #베이비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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