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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온다 하면 우린 완전 신난데이. 일 시켜야지 하면서~ 호호호."

한동대학교 청소 노동자 이태순(61, 여)씨는 자신을 도우러 온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씨를 돕던 임윤미(23, 여)씨는 "마음껏 시켜달라"며 너스레를 부렸다. '엄마와 딸'처럼 보일 정도로 둘은 제법 친해 보였다.

미안해서인지 이태순씨는 일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눈치였다. "일 좀 시켜달라"는 임윤미씨의 요구에 "이제 그만 가서 공부하라"고 만류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지난 10일 '들꽃'이 기획한 청소 노동자들을 돕는 활동 '힘을 내요, 슈퍼파월' 현장이다. '들꽃'은 한동대 교내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자발적 학생 단체다.

화장실에서 '들꽃' 학생들에게 청소할 걸레를 가져다주는 청소 노동자
 화장실에서 '들꽃' 학생들에게 청소할 걸레를 가져다주는 청소 노동자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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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낭만' 낙엽, 이들에겐 '일거리'

이태순씨의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한다. 출근해서부터 쉴 새 없이 바닥을 밀고 거울을 닦는다. 복도와 계단까지 청소를 완료하면 건물 밖으로 나간다. 가을을 알리며 길가에 떨어진 낙엽을 쓸기 위해서다. 수수한 낙엽을 보며 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낙엽이 지지. 예쁜 꽃도 좋고 가을도 좋은데 우리한텐 저게 다 일이라, 봄도 가을도 안 오면 좋겠다 싶기도 허고…."

캠퍼스의 낭만과 탁 트인 복도마저도 그들에겐 쓸고 닦아야 할 일거리들이었다. 공간이 넓을수록 노동 강도는 올라간다. 이씨는 "그래도 학생들이 이렇게 도와주니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낫다"며 고마움의 표시로 과자와 홍시를 학생들에게 쥐여줬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한 것도 없는데…"라며 미안해했다. 임윤미씨는 한 시간 동안 일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저는 그나마 사람 없는 시간이라 널널해서 괜찮았는데, 어머님(청소 노동자)은 학생들 오기 전에 강의실을 들쑤셔가며 재빠르게 해야 하잖아요. 진짜 헬(hell, 지옥)이겠더라구요. 무엇보다 한 층도 아닌 두 층을 혼자서 다 한다구요? 이건 말이 안 돼요."

높은 노동 강도에 기겁하는 임윤미씨에게 이태순씨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임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힘든 걸 힘들다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해진 노동강도를 보니 너무 짜증 나고 안타까웠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캠퍼스의 낭만과 탁 트인 복도마저도 그들에겐 쓸고 닦아야 할 일거리들이었다. 공간이 넓을수록 노동 강도는 올라간다
 캠퍼스의 낭만과 탁 트인 복도마저도 그들에겐 쓸고 닦아야 할 일거리들이었다. 공간이 넓을수록 노동 강도는 올라간다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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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고용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태순씨를 비롯한 한동대 청소 노동자들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일하는 곳은 한동대이지만 한동대 소속은 아니다. 전혀 다른 회사에 고용된 이들은 용역업체 마크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따라서 이들의 처우와 노동 환경은 한동대에서 책임질 이유가 없다.

간접고용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열악한 근로 형태에 속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겐 휴게시간, 임금 보장, 근무 환경 개선과 관련해 권리를 주장할 상대가 사실상 없다. 노동자들이 속한 용역업체도 '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갑'인 학교 측이 제시한 근무 환경 등 조건에 맞춰 '을'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한다.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고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가 바로 '들꽃'이다.

'들꽃'이 태동한 건 1년 전이다. 지난해 11월 28일, 한동대 독립언론 <당나귀>와 사회복지정책학회 'WELL-FAIR'는 '미안해U'라는 간담회를 열고 교내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실태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미안해U'에 참석한 학생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상을 듣고 분노하고 부끄러워했다. 이날 행사가 끝난 후 몇몇 학생들이 뜻을 모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모임을 결성했다. '들꽃'의 시작이었다.

'당신과 함께 피어나는 우리들-꽃'은 '들꽃'의 슬로건이다. '들에서 피는 꽃'의 섬세하고 강인한 이미지에 '함께 피어나는 우리들'이라는 연대의 정신을 더했다. '들꽃'은 페이스북 페이지에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노동과 고용의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문제가 아닌, 내 이야기이자 내 이웃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이태순씨는 "그래도 학생들이 이렇게 도와주니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낫다"며 고마움의 표시로 과자와 홍시를 학생들에게 쥐여줬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한 것도 없는데..."라며 미안해했다.
 이태순씨는 "그래도 학생들이 이렇게 도와주니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낫다"며 고마움의 표시로 과자와 홍시를 학생들에게 쥐여줬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한 것도 없는데..."라며 미안해했다.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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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 사는 청년으로서 노동 문제는 나의 문제"

앞서 임윤미씨가 참여했던 '힘을 내요, 슈퍼파월' 행사는 노동이 '나와 이웃의 이야기'라는 것을 체험하기 위한 행사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청소를 돕고 노동자들과 식사를 함께 한다. '힘을 내요, 슈퍼파월'을 총괄한 '들꽃' 사회협력팀장 황단비(24, 여)씨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꾸준히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라고 설명했다.

청소 노동자들이 '들꽃' 학생들에게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어서 가서 공부하라"는 말이다. 이태순씨는 '또 오겠다'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당부했다.

"매일 도와주면 우리야 고맙지. 그래도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데이. 어머니, 아버지가 좋은 대학 보내놓고 얼마나 기대하겠노. 그제? 너희는 어머니, 아버지 생각해서라도 공부 열심히 해야 한디~."

공부할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 '들꽃' 대표 최경준(25, 남)씨는 "헬조선에 사는 청년으로서 이 문제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라며 "지금 헬조선 땅에 청년들과 관련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는 건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청소 노동자 이태순씨의 손, 이태순씨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
▲ 노동자의 손과 노란리본 청소 노동자 이태순씨의 손, 이태순씨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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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움 진다고 당신, 잃을 게 없잖아. 이거 당신 싸움 아니라고."

JTBC에서 방영 중인 인기 드라마 <송곳>에서 노동운동가 구고신이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려는 이수인에게 던진 대사다. 최경준씨는 이같은 말을 수차례 들었다. 그는 '어차피 너는 졸업하면 떠날 사람이고, 그분들이 해고 당해도 잃을 게 없다'라는 충고를 들으면서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네가 이수인인 줄 아느냐, 착각하지 마라'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여러 비판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최경준씨가 '들꽃'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 "노동 문제는 청년들의 미래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말한 최씨는 실제로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로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3년 전, 그는 생계가 어려워져 학비를 벌기 위해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당시 청소 노동자로 사는 설움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당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안타까웠다는 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비정규직 노동가 될 수 있어요. 내 가족, 내 친구들, 심지어 나라고 안 된다는 법이 없어요. 저라고 대학 들어와서 청소 노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겠어요? 그러니까 절대 외면해선 안 돼요. 이제는 그만둘 수도 없어요. 1년 동안 어머니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더 이상 그만둘 수 없게 됐어요. 끝까지 해봐야죠."

'들꽃'의 '힘을 내요, 슈퍼파월' 행사 포스터 사진. 이 행사는 노동이 '나와 이웃의 이야기'라는 것을 체험하기 위한 행사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청소를 돕고 노동자들과 식사를 함께한다. '들꽃'은 한동대 교내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자발적 학생 단체다.
 '들꽃'의 '힘을 내요, 슈퍼파월' 행사 포스터 사진. 이 행사는 노동이 '나와 이웃의 이야기'라는 것을 체험하기 위한 행사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청소를 돕고 노동자들과 식사를 함께한다. '들꽃'은 한동대 교내 비정규직 청소·경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자발적 학생 단체다.
ⓒ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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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들꽃, #비정규직 노동자, #송곳, #청소 노동자, #한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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