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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또는 가정을 이탈했거나 기존의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예술 활동을 시켜 건강한 자아를 갖게 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유도한다.'

'아룸 앙상블 꿈의 학교(아래 아룸 앙상블)' 목표다. '방황하는 별'을 음악으로 교화한다는 말인데,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과연 가능할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11일 '아룸 앙상블 깜짝 콘서트'가 열린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 김대중 홀'을 찾았다.

노래 부르는 중 반주가 뚝, 그래도 소년의 열창은 계속되고

한지훈 학생(고1), 이 학생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지금 이 순간’을 열창했다. 중간에 반주가 뚝 끊기는 사고가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불러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꿈의 학교에 와서 뮤지컬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갖게 됐다.
 한지훈 학생(고1), 이 학생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지금 이 순간’을 열창했다. 중간에 반주가 뚝 끊기는 사고가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불러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꿈의 학교에 와서 뮤지컬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갖게 됐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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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 던진다…."

귀에 익숙한 음악이 들렸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지금 이 순간'이다. '나만의 꿈이... 사슬을 벗어 던진다'는 가사가 '방황하는 별'과 참 잘 어울린다. 단정한 차림의 한 남학생이 열창하는데 표정과 몸짓에서 간절함이 넘쳐나 빨려들 것만 같다.

노래가 클라이맥스(Climax)로 치달을 때 갑자기 반주가 뚝 끊겼다. '공연 사고'다. 남학생이 김빠진다는 표정으로 서 있자 객석에서 격려 박수가 나왔다. 잠시 뒤 반주가 흐르자 이 남학생, 언제 김빠진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다시 열정적인 모습으로 돌아가 노래를 '완창'했다.

콘서트는 점심시간인 낮 12시 20분부터 40분까지 열렸다. 남학생 독창에 이어 합창, 그 다음엔 타악기 연주가 진행됐다. 10여 명의 학생과, 이 학생들을 지도한 교사들이 선보인 여름 소나기 같은 게릴라 콘서트였다.

콘서트가 진행되는 내내 아이들 모습을 눈여겨 보았지만, 비행 청소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표정은 밝았고 옷매무새도 단정했다. 모범생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 모습이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라 확인해 보니, 모두 학교 안에 있었고 학교 교육에도 잘 적응한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박재호 교장(44세)한테 물었다.

"시도해 봤는데, 사실 실패했어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함께 음악을 만들 환경을 만들 수 없었어요. 수업 도중 담배 피우러 들락날락하고 수업 기간 중 폭력 사건을 일으키고 붙잡힐까 두려워 잠적한 아이도 있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늘 공연한 아이들은 의정부에 사는 중·고생들입니다." 

방황하는 별 음악으로 교화, "결코, 포기할 수 없어"

박재호 교장
 박재호 교장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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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룸 앙상블 깜짝 콘서트’, 박재호 교장의 독주, 박 교장은 이날 학생들 요청으로 잠깐 무대에 섰다.
 ‘아룸 앙상블 깜짝 콘서트’, 박재호 교장의 독주, 박 교장은 이날 학생들 요청으로 잠깐 무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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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아룸 앙상블'은 방황하는 아이들을 음악으로 교화한다는 애초 계획을 수정해서 의정부 중·고교생 12명과 여주에 사는 지적 장애아 11명으로 현재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포기한 것은 아니다. 최종 목표는 여전히 '방황하는 별'이다. 박 교장은 "계속 시도 할 계획이다. 음악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분명 변한다. 자신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면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할 텐데, 박 교장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꿈의 학교 철학 중 하나가 학생 스스로이지만, 이거 잠시 접고 이 친구들 특수성을 인정해 약간의 강제성을 동원하면 됩니다. 이런 친구들을 모으려면 어쩔 수 없이 법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법원에서 강제로 음악교육을 이수하게 하면 돼요. 이렇게 해서라도 잡아 둘 수 있다면, 자신 있어요. 이 친구들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잠깐만 잡아두자는 말이죠."

박 교장은 음악의 '치유 효과'를 확신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일인데, 북을 계속 두드리다 보면 심신에 안정이 옵니다. 또 약간의 비장감과 함께 용기도 생기고. 이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나'를 고민하게 되죠.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타악기를 많이 권합니다.

또 자신감이 중요한데, 자신감을 잃으면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하기 힘들어요. 아이들이 일탈하거나 범죄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물리적 힘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죠. 음악을 열심히 하면 일탈행위를 할 이유도, 힘을 과시할 이유도 없어지죠. 왜? 음악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박 교장은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꿈의 학교 철학에 꽂혀서 '아룸 앙상블'을 설립했다. 박 교장은 "음악으로 이런 아이들 꿈을 찾게 해 주는 게 내가 음악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겠다 싶어서였다"라고 아룸 앙상블 설립 이유를 설명했다. "음악으로 청소년 범죄 예방과 해결책을 제시할 자신감도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형 엘 시스테마 구현하는 게 꿈"

‘아룸 앙상블 깜짝 콘서트’, 타악 공연
 ‘아룸 앙상블 깜짝 콘서트’, 타악 공연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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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룸 앙상블 깜짝 콘서트’, 합창
 ‘아룸 앙상블 깜짝 콘서트’,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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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 교장은 어째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이처럼 큰 관심을 두게 된 것일까?

"참 뜨거운 성장기를 보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출해서 신문보급소에서 지냈고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을 털기도 했습니다. 물론 담배도 피웠고요. 고등학교 때 록 밴드를 하면서 잠시 마음을 잡았었는데, 콘서트를 하다가 아버지한테 발각돼서 테니스 라켓으로 두들겨 맞고는 밴드를 접었어요. 그 뒤에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싸움질하면서 보냈고요."

박 교장을 변화시킨 게 음악이었다. 박 교장은 "그 혼란스런 시기를 음악으로 이겨냈다. 그 당시 내가 음대에 합격한 것이 학교에서 10대 불가사의로 손꼽힐 만큼 화제였다. 음악이 내 인생을 바꿨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구현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는 범죄 예방 등을 위해 빈민층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베네수엘라 사회 변혁 프로그램이다.

박 교장은 백제 예술대학 강사, 서울 메트로폴리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정 아티스트를 역임했다. 12년간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으로 활동한 음악가다. 박 교장과 함께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는 총 7명인데, 이 중에는 연극배우 출신 현직 판사도 있다. 이들이 성악과 뮤지컬, 타악기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판사가 어째서 아이들 연극까지 지도하는 것일까?

김용희 판사(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36세)는 12일 오후 기자와 통화에서 "올바른 인격 형성과 정서 발달에 연극만큼 좋은 게 없다. 아이들이 꿈을 찾고 이루어나가는 데 내 경험이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룸 앙상블에) 참여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극이 그립고,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보람 있을 것 같아서"라고 덧붙였다.

"학교 측과 소통 어려워"

박지연 학생(고1)
 박지연 학생(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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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수민 학생(중3), 김예영 학생(중2), 전수빈 학생(중2)
 왼쪽부터 박수민 학생(중3), 김예영 학생(중2), 전수빈 학생(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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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효과, 아니 그보다는 꿈의 학교 효과는 방황하는 별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났다. 공연을 마친 아이들 표정은 무척 밝았다. 기자가 느닷없이 묻는 말에도 빼거나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또 이 학교에 와서 꿈을 찾은 아이도 있었고 음악을 좋은 취미로 갖게 된 아이도 있었다.

박지연 학생(고1)은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확신을 하게 됐다. 샘들이 발성부터 다시 가르쳐주고 계속 칭찬해 주니 힘이 난다"라고 말했다. 박수민 학생(중3)은 "꿈이 음악은 아니지만, 재미있어서 그런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좋은 취미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예영 학생(중2)은 "북을 치면 마음이 편해져서 좋다. 악보를 보는 실력도 늘었고, 음악이 점점 더 좋아진다"라고 말했고, 전수빈 학생(중2)은 "음악을 하면 스트레스가 한 방에 해결 된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이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박 교장은 큰 성과로 꼽았다. 이러한 자신감의 바탕에 '스스로 결정하고 열심히 해서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을 것'이라 분석했다. 이와 함께 박 교장은 꿈의 학교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도 토로했다.

"학교 측과 소통이 잘 안 됩니다. 공연하려면 아이들 수업을 빼야 하는데, 학교는 공문 없이는 안 된다고 하고 교육청은 아이들이 자체적으로 체험학습 신청을 하면 되지 무슨 공문이 필요하냐고 말하고.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 힘들게 데려왔어요. 이런 일 때문에 내가 불편한 건 감수할 수 있지만, 학생들이 상처 받을까 봐 걱정스러워요."

사실 아룸 앙상블 학생들이 '방황하는 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문제아들이 멋진 교사를 만나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언제나 마음은 태양>(to sir with love, 1967년)'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황하던 별'이던 박 교장의 뚝심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는 실망스러운 마음이 싹 가셨다. 음악으로 방황하는 아이들 꿈을 찾게 하겠다는 그의 용기에 그저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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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꿈 깨는 게' 목표, 이런 학교도 있습니다
'남 웃기는' 게 목표, 이런 학교도 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아룸 앙상블 꿈의 학교, #박재호, #경기도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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