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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로의 피아노 수송에 앞선 2010우도동굴음악회 프레젠테이션. 사진제공 : 동굴소리연구회.
 동굴로의 피아노 수송에 앞선 2010우도동굴음악회 프레젠테이션. 사진제공 : 동굴소리연구회.
ⓒ 동굴소리연구회 오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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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승람>과 임제의 <남명소승>, 충암 김정의 <제주풍토록>, 청음 김상헌의 <남사록>에 모두 이르기를 신령스런 용이 거처하고 있는 곳(神龍所處)에 가까이 가면 큰 바람이 일고 천둥 번개가 일어 나무가 뽑히고 곡식이 망가진다. 해안 쪽에서 역시 북소리, 악기소리, 닭소리 개 짖는 소리를 금하는데 만일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비바람을 동반한 천둥번개와 태풍이 불어 변고가 생기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 이형상의 <남환박물(南宦博物/1702)>

우도에는 옛날에 용이 살았다는 동굴이 있다. 용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여 성산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오조포 마을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도 노하여 비바람을 일으켰다고 한다.

조선시대 제주로 귀양살이를 왔던 충암 김정은, 전해지는 우도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우도가'를 지었으며 이를 읽고 감명을 받은 임제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성산포에서 배를 타고 우도의 동굴로 들어간다. 그리고 김정의 우도가에서 나오는 잠든 용을 깨우기 위하여 아끼던 피리를 꺼내어 불기가 무섭게 노한 용이 일으키는 비바람으로 혼비백산하여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남명소승>에 남겼다.

그리고 437년의 시간이 흐른 1997년 어느 날, 한 성악가가 겁도 없이 우도의 동굴을 찾아 용과 맞짱을 뜨고자 도전장을 내민다. 역사서에 전해 내려오는 내용대로라면 마땅히 천둥 번개를 쳐서 내몰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어울리는 복합적인 행위예술에 대해 까탈스런 용도 한 수 접어 주었기 때문일까. 그 음악회는 올해로써 자그만치 20회가 되었다.

우도 동굴의 터줏대감인 용의 마음에 쏘옥 드는 음악회를 20년 가까이 계속해온 그 주인공, 현행복 교수를 음악회가 열린 지난 8일 만나 보았다.

"제주 전통 떼배인 테우로 피아노 수송... 근사하고 멋있었죠"

경주김씨 충암공파 종가에서 수여한 감사패를 받고 경주김씨 충암공파 17대 종손 김응일 선생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경주김씨 충암공파 종가에서 수여한 감사패를 받고 경주김씨 충암공파 17대 종손 김응일 선생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 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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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무엇보다 20회 공연을 축하드립니다. 오늘(8일) 특별한 식전행사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김정 선생의 우도가를 읽으며 동굴에서 음악회를 하면 좋겠다는 착상을 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우도가>를 번역하여 책으로 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나아가 우도에 김정 선생의 '우도가비'를 세우는 데 앞장서기도 하였지요. 그래서 올해로 20회를 맞이하며 경주김씨 충암공파 종가에서 저에게 감사패를 전달해 준다고 합니다. 저로서는 영광이지요. 또한  사단법인 한국 동굴학회에서 공로패도 준비했다고 합니다."

- 20회 공연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회를 꼽으라면요?
"(웃음) 아무래도 배고픈 시절이겠죠. 그나마 나오던 예산 지원금이 끊기던 해인 2010년이었어요. 출연료를 댈 수 없으니 음악회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까짓것 내가 몸으로 때우자 마음먹었죠.

지금이야 70~8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단원들과 함께 하지만 그때는 달랑 세 명이서 공연했어요. 피아니스트 이동용의 반주와 김희숙씨의 무용 그리고 내가 노래를 불렀죠. 하지만 그 어느때 보다 무대는 꽉 찬 느낌이었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연을 계속한 내 자신에게 뿌듯한 공연이었기에 지금도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랜드 피아노를 동굴로 옮기기까지의 에피소드 역시 잊을 수 없어요. 그 무거운 피아노를 배에 실을 수 없어 고민하다가 테우(제주의 전통 떼배)에 싣기로 했는데 신기하게도 가라앉지 않고 뜨더군요.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 이동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작은 이벤트가 된 셈이었어요. 정말 근사하고 멋있었죠."

보름에 한 번 물때(사리)가 되면 동굴의 물이 나가고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해진다.
▲ 우도의 동안경굴 보름에 한 번 물때(사리)가 되면 동굴의 물이 나가고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해진다.
ⓒ 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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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동굴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유독 우도의 동굴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동굴은 제2의 악기이다'란 말이 생길 정도로 동굴이란 공간만이 지닌 자연음향의 매력에 빠져있기 때문이죠. 한 예로 우리나라의 유명한 '예술의 전당'은 인간의 건축물이고 거기에는 온갖 최첨단의 음향시설이 갖추어져 있죠. 그래서 한 음향학자가 '예술의 전당'과 '우도' 이렇게 두 군데에서 잔향실험 결과 오실로그래프(Oscillograph)로 나타난 밀도의 양태가 예술의 전당은 불규칙한 그래프가 그려졌지만 우도의 경우는 거의 완벽했다고 합니다. 음악에 가장 중요한 음향조건을 우도의 동안경굴(동쪽 해안의 고래굴)은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 이렇게 완벽한 자연의 시설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당연히 인간의 목소리입니다. 과장되지 않는 울림이 신비롭게 그대로 전달되는 효과가 있어요. 그 다음으로 하프와 같은 발현악기류를 들 수 있지요. 또한 고음악기보다는 더블 베이스 등 저음악기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동굴이란 공간만이 지닌 자연 음향의 매력에 빠졌어요"

우도동굴에서 처음 펼쳐진 하피스트 박라나 선생의 하프 연주(2002. 8. 24), 사진제공 : 동굴소리연구회
 우도동굴에서 처음 펼쳐진 하피스트 박라나 선생의 하프 연주(2002. 8. 24), 사진제공 : 동굴소리연구회
ⓒ 동굴소리연구회 오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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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한 시간을 앞두고 현 교수가 동굴 안에 단원들의 자리 배치를 하느라 진땀흘리는 모습.
 공연 한 시간을 앞두고 현 교수가 동굴 안에 단원들의 자리 배치를 하느라 진땀흘리는 모습.
ⓒ 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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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을 계속해 오면서 대중적으로 성공시키고 싶다는 열망은 없었는지요.
"기회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쉽게 손잡지 않았죠. 혹시라도 내가 추구하는 순수예술에서 벗어날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에요. 대중음악은 보통 전기음향장치를 통한 음의 증폭을 인위적으로 만들지만, 동굴음악회에서는 이런 장치를 배제한 채로 순수한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를 들려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요. 이른바 일종의 '언플러그드 뮤직(Unplugged Music)'이라고나 할까요."

- 교수님의 동굴음악회로 인하여 '문화가 살아있는 섬 우도'가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좀 더 적극적인 계획은 없으신가요?
"지금까지는 일년에 한 번 음악회를 하였지만 앞으로는 매달 보름에 한 번 찾아오는 물때(사리)에 맟춰 상설화해 개최함도 상상해볼 수 있겠지요. 아직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고요. 우도의 동굴음악회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연주 당일 물때와 기상변화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인데요. 이 점을 장점으로 살릴지 아니면 단점으로 그냥 두어 희귀성을 추구할지 현재 검토중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제주가 세계의 자연유산으로 인정받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당당하게 그중 하나로서 우도의 동굴음악회를 내세우고자 합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2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동굴음악회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미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고독한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사랑은 아직 식지 않았지만 요즈음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어요. 이 자리를 빌어 우도의 동굴 음악회가 오래 지속되어 문화적인 행사의 하나로 든든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2015년 우도 동굴 음악회 현장 스케치

성산포에서 우도로 들어가는 길. 예로부터 뱃길이 험해 사람들의 왕래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성산포에서 우도로 들어가는 길. 예로부터 뱃길이 험해 사람들의 왕래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 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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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의 동안경굴을 둘러싼 후애석벽. 오전 중 해가 떠오를 때 해수면과의 습기때문일까. 유난히 무지개 현상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우도의 동안경굴을 둘러싼 후애석벽. 오전 중 해가 떠오를 때 해수면과의 습기때문일까. 유난히 무지개 현상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 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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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앞에 바닷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반영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 동굴음악회 공연현장 무대 앞에 바닷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반영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 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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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음악회를 열기에 세계 최고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다.
▲ 우도의 동안경굴 동굴음악회를 열기에 세계 최고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다.
ⓒ 고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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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야외 음악당이라 하면 가장 먼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꼽는다. 국제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덴마크의 건축가 요른 웃손(Jørn Utzon)이 설계한 건축물에는 현대적인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추고 있어 세계 뮤지션들의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다. 또한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그리고 시드니 야외 음악당의 가장 반대편에, 유명한 건축가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동굴에서 순수예술을 고집하는 외로운 음악가가 근 20년의 세월을 바쳐 음악회를 개최해 온 우도의 동안경굴이 있다.

마이크 하나 없이 동굴이 연출해 주는 공명의 힘으로 전해지는 노랫소리와 악기의 음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단언해서 말하건대 현대에서 고대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우도의 동굴음악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네스코가 찾아 헤매는 세계문화유산은 바로 이곳, 제주 하고도 우도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머지 않은 그 어느 날, 세계의 많은 뮤지션들이 바로 이곳 우도의 동안경굴에서 마이크없이 공연을 함으로써 인정받게 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우리는 너무도 귀한 것이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만 찾아 헤메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되돌아볼 일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 귀한 사진을 제공해주신 동굴소리연구회에 감사드립니다.



태그:#현행복, #우도 동굴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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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우도에서 살고 있는 사진쟁이 글쟁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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