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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형 혁신학교 이름은 '행복나눔학교'입니다. 올해부터 행복나눔학교로 선정된 21개 학교에서 4년간 교실 혁신이 꾸준히 추진됩니다. 행복나눔학교가 공교육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교실은 어떻게 만들어질 까요? <오마이뉴스>가 <충남도교육청>과 공동으로 행복나눔학교를 돌며 시행 1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편집자말]
한진희 거산초 교사(교무부장)
 한진희 거산초 교사(교무부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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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면서 자책하고 후회했다."

교사 생활 19년째인 한진희 거산초 교사(교무부장)가 6년 전을 떠올렸다. 그는 "'내일 또 학교 가야 하나? 재미없어'하고 생각했다"며 "자존감도 바닥이었다"고 말했다.

거산초(충남 아산시 송악면)에 온 지 6년. 그는 "지금은 '내일은 어떤 일이 생길까? 재밌네!'하고 생각한다"고 활짝 웃었다.

거산초(충남 아산시 송악면)는 충남 행복나눔학교(혁신학교의 충남형 이름)의 '등대'로 불린다. 지난 2002년 폐교위기에서 지역사회가 나서 최초의 전원형 작은 학교로 거듭났다. 밤이면 반딧불이 불을 밝히는 마을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배움터가 되고 있다.

학생 교육의 목표는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재주를 찾아 키우는 학생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배려심도 강조된다. 교사들은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고, 학생들의 꿈을 열어주는, 학생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을 지향한다. 학교는 개성을 존중하고, 내 집같이 가고 싶은 학교 경영을 꿈꾼다.

우연히 만들어진 교육철학이 아니다. 한진희 거산초 교무부장은 "모든 학교 교과과정과 운영이 교사, 학부모가 함께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산초와 다른 학교와의 차이점을 묻는 말에도 "협의 문화"라며 "다른 학교의 경우 교장이나 교감이 누가 부임하느냐에 따라 학교 문화가 바뀌지만, 우리 학교는 누가 오든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교사회의에서는 학교운영의 대소사를 직접 결정한다.

거산초는 교사회의 외에 교사학부모연석회의, 교사학습 공동체 등 다양한 협의구조를 운영 중이다. 그는 "학부모들도 여러 지원단 활동과 교사 학부모 연수 등으로 교육과 학교 운영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교무부장은 거산초만의 자랑거리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모습"이라며 "거산초에서 생활한 6년 동안 줄곧 성장해온 느낌"이라고 답했다. 그는 "혁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 관계는 자연스럽게 생긴 게 아니라 협의를 통해 생긴다"고 말했다.

거산초?
거산초는 1935년 송남보통학교 부설 간이학교로 시작, 이듬해 거산국민학교로 개교했다. 한때 12학급까지 늘어났지만 1992년 분교로 격하됐고 이후 학생 수 격감으로 매년 통폐합 위기를 겪었다.

특히 2002년에는 폐교위기에 몰렸다. 교사, 학부모,시민단체가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을 벌이면서 대안 교육에 나섰다. 이를 통해 2005년  거산초로 승격됐고, 전원학교로 선정(2009년)됐다. 교사회의,학부모,지역사회가 학교운영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행복나눔학교를 꿈꾸는 후발 교사들에게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시스템화해야 한다"며 "학부모 중에 1~2명이라도 열정적인 분을 찾아 그분들과 함께 협의하고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다른 학부모들에게 전파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행복나눔학교교는 행복"이라며 "가고 싶은 학교, 있고 싶은 학교이고 그래서 행복해진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주요 인터뷰 요지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학부모들이 운동장 구석에 '움직이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학부모들이 운동장 구석에 '움직이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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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 어린 시절 직접 다닌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는 아픈 기억이 많다. 인천에서 다녔다.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갱지를 사다 달라고 부모님께 전하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필요한 물품을 몇몇 학부모에게 이런 방법으로 조달했던 모양이다. 엄마께서 다음 날 쟁지 몇 백 장을 사다 드렸다. 알고 보니 학교에서 요구한 건 몇 백 장이 아니라 몇 상자였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 교사생활은 언제 시작했나?
"97년 9월에 시작했다. 올해로 19년째다. 홍성 모 초등학교에 첫 발령된 후 천안을 거쳐 지금 거산초에서 6년째다."

- 거산초와 다른 학교의 가장 큰 차이는?
"문화다. 다른 학교의 경우 교장이나 교감이 누가 부임하느냐에 따라 학교 문화가 바뀐다. 하지만 거산초는 누가 오든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꼬집어 말하자면 협의 문화다. 모든 것을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거산초만의 협의 문화, 학부모 문화가 있다."

- '협의 문화'라고 했는데 어떤 협의 구조가 있나?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교무회의와 연석회의, 교사학습 공동체가 있다. 교무회의는 매주 월요일 있는 교직원 회의다. 사는 이야기, 주간 업무, 교육과정 협의, 소통과 공유가 주된 내용이다. 학급 고민도 공유한다. 연석회의는 매년 3차례 교사, 학부모대표단, 지원단장이 참여한다.

거산 한마당, 계절체험, 알뜰 장터, 독서한마당 등 주요 사업을 공유하고 학부모 의견을 반영한다. 참석자는 대표성을 띠고 학급 의견을 회의에 제안한다. 교사학습 공동체는 매년 큰 주제를 정해 놓고 매주 수요일 주제에 맞는 내용을 고민해 발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모든 학부모, 한 개 이상 지원단 가입·참여"

학생들이 학교 옆 텃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 옆 텃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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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 문화'라고 표현했다. 어떤 문화를 말하나?
"지원단 활동과 교사학부모 연수가 있다. 지원단은 교육과정지원단, 생태지원단, 문화예술지원단 독서지원단, 연수지원단으로 나뉜다. 모든 학부모가 한 개 이상 지원단에 가입, 1년간 활동한다. 수업에 참여할 때는 교사와 팀티칭(몇 사람의 교사가 한 조가 되어 구성원들을 분담하여 가르치는 교수 방법) 과정을 거친다. 시간이 없는 경우 주말에 텃밭 잡초제거나 학교 주변을 청소한다.

거산초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매달 교사 학부모 연수가 열리고 있다. 격월로 한 달은 학급연수로 담임교사가 학급 부모님과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유한다. 한 달은 전체 교사와 전체 학부모가 함께 강의를 듣거나 토론을 한다. 기획과 실무도 교사와 연수지원단 어머니들이 함께한다. 매년 2월 마지막 주에는 1박 2일로 전 가족이 모여 연수를 벌인다. 축제 형태다. 이게 활성화돼 아빠 모임, 아빠 캠프도 생겼다."

- 교사들의 행정업무에 대한 부담은 없나?
"교감 선생님과 나, 10년째 교무행정을 보조하시는 분, 이렇게 3명이 행정업무전담팀을 구성했다.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업무를 전담해 처리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전체 행정업무의 80%를 담당하고 있다. 이 중 교감 선생님께서 큰 역할을 한다. 교감께서 공문을 받으면 대부분을 필터링(교통정리)해주신다."

- 거산초는 충남에서 가장 먼저 대안 교육을 시작했다. 그만큼 교사들의 일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자원해서 학교를 온 이유는?
"거산초에 온 지 6년째다. 이전에는 밤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며 자책하고 후회했다. 교사로서 자존감도 바닥이었다. 전환이 필요했다. 그러다 거산초를 알게 돼 오겠다고 했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이곳이 내가 꿈꾸던 유토피아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은 사라졌다. 6년 전에 '내일 또 학교 가야 하나? 재미없어'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일은 어떤 일이 생길까? 재밌네!'하고 생각한다."

- 행복나눔학교와 다른 학교를 나누는 가치 기준은 뭐라고 생각하나?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해 균형 있는 경험이 제공되어야 한다. 교육은 인간의 인지, 정의 등을 고르게 발달시키도록 접근해야 한다. 둘째는 민주주의다. 구성원들이 소외되지 않고 참여해야 한다. 이런 민주주의원리를 체험을 통해 교육해야 한다. 셋째는 공공성이다. 개인의 입신양명이 아닌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공공의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6년 동안 줄곧 성장했다"

전원학교 특성을 살려 학교 주변 산책로를 마련했다.
 전원학교 특성을 살려 학교 주변 산책로를 마련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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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산초에서 근무하며 가장 좋았던 것을 꼽자면?
"매년 12월에는 자기가 맡은 학년의 교육과정을 통합 재구성한다. 자기가 맡은 학년의 교육과정을 권한을 갖고 만든다. 교사로서 큰 경험이자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과정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은 어떤 학교에서도 느낄 수 없는 벅찬 기분이었다."

- 거산초만의 자랑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한다. 아이들에 대한 고민, 학부모에 대한 고민, 교사 역할에 대한 고민…. 그러다 보니 6년 동안 줄곧 성장했다. 거산초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 자리에 멈춰 선 후 생각한다.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배움으로 가고 있는가'하고 질문한다. 그렇게 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거산초에서 개인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내일을 다시 보게 됐다. "

- 행복나눔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이다. 사람 때문에 감동하고 바뀐다. 교사, 학부모들과 자기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 행복 나눔학교를 준비하는 후발 학교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고 시스템화해야 한다. 학부모 중에 1~2명이라도 열정적인 분을 찾아 그분부터 시작해라. 적지만 함께 협의하고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다른 학부모에게 전파하고……. 차근차근 찾아서 모으는 게 중요하다. 거산초에서도 한 번에 변하는 건 없었다. 많은 회의와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답답해했는데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는 동안 사례가 쌓이다 보니 문화가 되더라."

"행복나눔학교, 중학교까지 연계했으면..."

거산초는 학급당 학생수가 20명 안팎이다.
 거산초는 학급당 학생수가 20명 안팎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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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나눔학교'는 네모다. 네모 안에 넣고 싶은 말은?
"'행복'이다. 가고 싶은, 있고 싶은 학교다. 그러다 보면 행복해진다"

- 거산초의 미래상은?
"학교가 모태가 돼 학교 밖 지역공동체, 거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 충남도교육청에 건의하고 싶은 게 있다면?
"교장 내부공모제 또는 초빙제를 확대했으면 한다. 거산초에서만 6년 동안 교장과 교감 선생님이 각각 5명이 오갔다. 거산초만의 문화가 형성돼 있지만 초빙제가 정착돼야 교사들이 안정적으로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다. 또 행복나눔학교를 똑같은 기준으로 재단하지 말고 학교마다 다양한 색깔, 다양한 시각으로 평가했으면 한다.

다른 하나는 중학교까지 연계됐으면 한다. 송악면의 경우 초등학교는 행복 나눔학교인데 중학교는 혁신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육청 차원에서 초등과 중등교육을 연계하는 고민이 뒤따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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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나눔학교를 찾아서 ②-1] 교장실에서 노는 아이들 "권위 내려놓으니 편해요"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거산초, #충남도교육청, #행복나눔학교, #혁신학교,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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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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