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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시키가와 강을 따라 유람하는 뱃놀이가 방문자들에겐 인기가 높다.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구라시키 마을가꾸기에 공헌한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아내를 위해서 지은 별장 '유린소'다.
 구라시키가와 강을 따라 유람하는 뱃놀이가 방문자들에겐 인기가 높다.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구라시키 마을가꾸기에 공헌한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아내를 위해서 지은 별장 '유린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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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오전 8시, 숙소를 나선 버스는 구라시키 시청을 향해 부지런히 달렸다. 오전 9시부터 구라시키시의 문화정책에 관한 설명회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구라시키는 약 400년 전 에도막부가 직할 통치하는 물류중심지였다. 그래서 구라시키를 '창고마을'이라고도 불렀다. 구라시키는 바다와 직접 맞닿은 해항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구라시키가와강이 세토내해와 이어져 있어 물류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구라시키 시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강형기 충북대 교수는 "공공기관이 땅을 갖고 장난을 쳐서 주민들을 힘들게 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탄식을 했다. 다른 곳도 아닌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나서 계속 신도시를 만드는 통에 도시가 역사적으로 형성이 안 되고 금방 사멸돼가고 있는데 그걸 살리겠다고 또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단기 치적에 눈이 먼 자치단체장들이 신도시만 지어대다 보니 한 도시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이 축적되지 않고 소멸돼가고 있다"며 "도시를 살리려거든 원도심부터 재투자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도시재생 프로젝트' 원조, 구라시키

구라시키는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나 '원도심 살리기'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도시를 건설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전통을 보존해서 성공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안에 끝낸 단기사업이 아니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작업의 역사는 무려 70년에 가깝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한 곳은 강 주변에 남아있는 1800년대식 창고와 건물이다. 또 다른 곳은 '마치야(町屋)'라고 하는 1910년대식 가옥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나카하시(中橋) 건너편으로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상징하는 하얀 색칠을 한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나카하시(中橋) 건너편으로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상징하는 하얀 색칠을 한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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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술집과 카페가 즐비한 혼마치, 히가시마치에 인력거가 지나고 있다.
 선술집과 카페가 즐비한 혼마치, 히가시마치에 인력거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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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중심지로 성장하던 구라시키는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창고마을의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대신 1888년 구라시키방직소 등이 세워지면서 근대공업으로 활기찼다. 근대공업의 발전은 1922년 구라시키은행 설립으로 이어졌다. 1930년엔 일본 최초의 근대미술관인 오하라미술관이 개관했다. 그 당시 구라시키가 얼마나 풍족한 도시였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구라시키 역시 맥을 추지 못했다. 전시체제에서 돈을 벌었던 기업들이 쇠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창고는 텅텅 비기 일쑤였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수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아름다운 구라시키를 지켜야 한다며 민간운동을 시작한다. 1949년 '구라시키 도시아름다움협회'를 결성한 주민들은 구라시키의 상징과 같은 흰벽보존운동을 시작한다. 민·관은 모두 이 때를 구라시키 미관지구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삼고 있다.

아름다운 구라시키를 보존하려는 주민들의 운동은 오래된 창고와 공장을 호텔과 민예관으로 바꾸는 기적을 낳았다. 그리고 규모가 큰 마치야는 고고관이나 여관으로 바뀌었다. 용도는 바뀌었지만 건물마다 전통을 지키려 애썼다.

주민운동은 1968년 구라시키시 전통미관보존조례 제정, 1978년 구라시키시 전통적 건조물 보존지구 보존조례 제정으로 제도화되었다. 심지어 1990년에는 구라시키시 전통적 건조물 보존지구 배경 보전 조례까지 제정되어 아무리 건물주라도 미관지구 전통 배경을 해치는 일체의 증·건축 행위를 할 수 없게 됐다.

구라사키 인구 46만, 연간 관광객 350만

옛 구라시키 방적공장 건물은 지금은 복합문화 교류기관인 '구라시키 아이비 스퀘어'로 탈바꿈했다.
 옛 구라시키 방적공장 건물은 지금은 복합문화 교류기관인 '구라시키 아이비 스퀘어'로 탈바꿈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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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시키시청에서 만난 후시와라 학예원은 "조례에 의거해 1979년부터 전통가옥과 건물, 창고 등을 수리해오고 있다"며 "지금까지 모두 533건의 수리를 실시했고 총 수리금액은 약 220억 원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후시와라 학예원은 또 "1986년부터 시작한 전선지중화 사업도 지난 2014년 모두 완료했으며 현재는 NPO에 의한 옛날 민가재생사업을 하고 있다"라고 소개하면서 "구라시키 인구가 약 46만 명인데 연간 관광객은 350만 명에 달한다"라고 자랑했다.

구라시키시청에서 약 5분을 걸어가자 미관지구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에도시대부터 운하로 이용했다는 구라시키가와 강변의 수양버들이었다. 찰랑이는 버드나무 줄기 사이로 어린이들과 관광객들이 뱃놀이를 하는 이들을 기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 최초 근대미술관인 오하라 미술관에 들어가 보았다. 단체관람을 온 학생들과 멀리서 명성을 듣고 찾아온 관람객들로 오하라미술관은 조용하게 북적거렸다. 미술관을 나와 강변을 따라 구라시키 아이비 스퀘어로 향했다. 건물의 붉은 벽돌을 담쟁이가 예쁘게 감싸고 있는 이 건물은 예전엔 방적공장이었다. 지금은 복합문화 교류시설과 호텔 등으로 변신해 있다.

흰색으로 단아하게 색칠을 한 건물들 사이로 작은 골목길이 나 있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작은 분식집 앞에서 나들이를 나온 중년의 장애인 일행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담소를 즐기고 있다. 아까부터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20대 여성은 그 유명하다는 구라시키 청바지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두 여행자가 전통 가옥이 잘 보존돼 있는 구라시키 미관지구 골목을 산책하고 있다.
 두 여행자가 전통 가옥이 잘 보존돼 있는 구라시키 미관지구 골목을 산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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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나와 혼마치, 히가시마치로 접어들었다. 선술집과 카페가 있는 풍경 사이로 인력거가 지나갔다. 순간 시간을 혼돈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 흑백사진처럼 찍혀 가슴으로 들어왔다. 기억 혹은 추억이라 부를 그 무엇이 또 하나 생겨난 것이다.

어딜 가나 이야깃거리 풍성한 한국의 도시들이 요즘 앞 다퉈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다. 표현은 도시재생, 도심재생, 원도심 살리기 등 제각각이지만 목표는 다르지 않다. 사람이 떠난 곳에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다시 오게 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여야 사람들을 다시 오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저 옆 도시와는 다른 우리 도시만의 '재생'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구라시키는 전통가옥과 거리를 보전하면서 구라시키만의 이야기를 다시 살려냈다. 공식적으로 계산해도 1949년부터 시작했으니 2015년 현재 구라시키는 만 66년째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예비 부부가 구라시키가와강에서 뱃놀이를 하자 주민들이 나와 사진을 찍는 등 즐거워 하고 있다.
 예비 부부가 구라시키가와강에서 뱃놀이를 하자 주민들이 나와 사진을 찍는 등 즐거워 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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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구라시키, #오하라미술관,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강형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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