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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한 말이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Those who fail to learn from history are doomed to repeat it.)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역사를 잊기는커녕 아예 안 배운 근대 역사가 있었다. 지난 2012년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를 아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답을 해야하는 상황도 아니었건만, 해머로 뒤통수를 마구 두들겨 맞은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난 다카키 마사오에 대해서 전혀 들은 바가 없었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전 대통령의 창씨개명 이름 -편집자 말)가 일본 정부에 혈서를 쓰고 독립군 토벌군이 된 한국인이라는 것도, 그가 바로 '그때 그 사람'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으니까. '나는 대체 학교 역사 시간에 뭘 배운걸까?'하는 회의감이 한순간에 몰아쳐왔다. 당시 아빠는 '대선 후보 중에 빨갱이가 있다'고까지 하셨다.

검정교과서로 바뀐 해가 2007년이니까, 나는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다. 국정교과서가 좋은지 나쁜지 그때는 판단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렸고, 무조건 달달 외우는 게 최고였다. 학생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건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가 결코 아닌 듯했다. '그때 그 사람'이 총살당한 다음 날, 국기를 조기 게양하며 시뻘건 눈을 훔치던 엄마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만드세. 살기 좋은 새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어릴 때 하도 많이 들어서 아직까지도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 징하다. 국정교과서였던 탓에 우리는 배워야 할 역사를 배우지 않았고, 지나간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그때 그 사람'의 딸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의미심장한 지지율 51.6%를 얻어 권력에 앉았고, 8년 만에 국정 역사교과서로 회귀하는 이 더러운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는 가운데,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 땅에서는 역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좋은 사례라면 같이 나누고, 아니라면 반면교사의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 선진국' 또는 '혁명의 나라'라 일컬어지는 프랑스에서는 역사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역사를 통해 무엇을 가르치며, 교과서를 어떻게 정할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1968년 68혁명이 시민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프랑스에서는 아마도 역사를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나열하는 정도로만 치부하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 나라의 성공적인 민주주의가 역사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건 아닐까? 거창한 철학은 집어치우고, 프랑스의 역사 교과 과정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16년째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로렁스 드콕씨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프랑스에서 국어, 수학, 다음으로 중요한 과목은 '역사'

 로렁스 드콕
 로렁스 드콕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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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역사 교육에 대해 소개해주세요(참고로 프랑스에서는 만 3세부터 유아학교에 가기 시작하고, 의무교육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만 6세부터 시작된다).
"역사는 프랑스 의무 교육과정 중에서 매우 중요한 과목 중에 하나예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총 11년 동안 역사를 배우는데, 초등학교 때는 주당 1시간, 고등학교 때는 주당 3~5시간씩 역사 수업이 있어요. 프랑스에서는 역사와 지리를 함께 가르치고, 공민 교육도 병행합니다."

- 역사가 매우 중요한 과목 중에 하나라고 하셨는데, '매우 중요한 과목들'은 뭔가요 ?
"국어, 수학, 그리고 역사 순입니다."

(한국에서는 국어, 수학, 영어 순인데, 프랑스에는 국어, 수학, 그 다음이 역사!!! -기자 말)

- 왜 역사 교육이 중요한가요?
"19세기 때부터 역사 교육을 통해서 프랑스인이라는 느낌, 공화국민이라는 시민정신을 갖게 하기 때문이에요. 프랑스에서 역사 교육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9세기 말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고, 두 번째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요.

첫 번째 시기에는 프랑스의 역사만 가르쳤어요. '민족주의 소설'(roman national)이라고 부르는데, 소설처럼 아름다운 줄거리에 주인공을 둘러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늘 긍정적인 면만 이야기했죠. 자기 나라 프랑스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려는 의도였어요. 지나간 역사에는 영광스러운 사건들만 있는 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있어요.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통치했었는데, 그걸 '알제리를 위한 것이다'라고 미화하면 거짓말이죠.

두 번째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인데, 유대인 대학살이 신호탄이 되었어요. 그것은 역사 발전이 아니라, 야만이었어요. 그 야만을 이해해야만 했어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 지역에 걸쳐서 유네스코가 다음과 같이 발표했어요. 역사 교육을 통해서 첫째, 인종차별주의와 싸울 것, 둘째, 관용을 가르칠 것. 그래서 오늘날에는 프랑스 역사만 가르치지 않고 프랑스, 유럽, 세계, 이 셋의 역사를 균등하게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80년대 이전에는 역사 교육이 교육부 소관이었어요. 2차 세계대전 끝날 때까지는 공개토론은 전혀 없었고, 역사 교육은 언론에서만 다뤘어요. 그러다가 1979년 <르 피가로> 1면에 실린 알랑 드코의 사설이 대대적인 공개토론의 도화선이 됩니다. '우리는 당신네 아이들한테 더 이상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이에요. 

(프랑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알랑 드코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기관인 아카데미프랑세즈회원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로, 저술가이자 방송인이다. 1951년에 '역사 토론회' 라디오 방송을 개설하여 1997까지 운영했으며, 프랑스의 역사교육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공으로 2014년에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현재 프랑스 북부 릴르에 살고 있다. -기자 말)

1970년대에 국어, 수학, 그리고 '감각 일깨우기'(éveil)를 가르쳤는데, 감각 일깨우기 시간에 생물, 역사, 지리 등을 한꺼번에 가르쳤어요. 예를 들면 이건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을 분석하다보면 역사, 지리 등이 다 나오는 거죠. 근데 이렇게 가르치니까 막상 프랑스 왕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못 배우는 거예요. 그래서 1985년에 교육부가 초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프랑스 왕들에 대해 배우도록 역사 프로그램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프랑스와 세계, 모두를 역사시간에 가르치고요. 그리고 그때부터 공개토론이 생겨났습니다. 최근의 예로는 지난 2008년 '아프리카 역사를 중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이 있었어요."

프랑스 역사 교과서, 국가는 절대 관여 안 해 

 2010년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의 역사 교과서 중 나덩 출판사의 것. A4크기.
 2010년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의 역사 교과서 중 나덩 출판사의 것. A4크기.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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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교과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선정되나요?
"100%, 사립 출판사들이 만들어요. 교육부가 절대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교육부는 배워야할 역사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6~7개의 출판사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교과서를 만들어요. 완전히 자유경쟁시장이라서 정부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고, 어떻게 하면 역사 선생님의 눈에 띌까 고심하며 최선을 다해 만들어요. 고등학교1학년인 만 15세가 배우는 역사책을 갖고 나왔어요. 한번 보세요. 챕터별로 프랑스 역사와 지리, 세계 역사와 지리가 분배되어 있고, 설명뿐 아니라 사진이 많이 들어있죠 ?

- 최근에 있었던 공개토론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한데요.
"읽기 교육에 관한 거예요. 음절파는, 예컨대, '카' '케' '키' '코' '쿠'를 배운 후에 '카'와 '키'가 합쳐져서 카키라고 읽는다는 그룹이고, 전체법을 쓰는 그룹은 음절이 아닌 각각의 단어를 외우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첫 번째 그룹은 '꼭 이래야한다'고 강경하게 나오고, 두 번째 그룹은 '이런 게 더 좋다'고 둥글둥글해요. 영어권에서는 이런 게 없는데 프랑스만 읽기 문제로 대립하는 것 같아요. 진짜 이건 정치적인 싸움이에요. 가르치다보면 둘 다 필요하거든요."

- 학교의 교육 방침에 반대해서 부모들이 시위를 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 
"3년 전에 '성별(gender)'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있었어요. 여권부에서 '평등에 대한 기본사항'으로 내놓은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에 동성애자 결혼에 관한 이슈가 사회에 등장했던 때랑 맞물려서 동성애자 결혼 반대자들이 이 교육 프로그램을 비판했어요. '아이들을 다 동성애자로 만들려고 한다' '정부가 아이들의 동성애 성향을 조장한다'면서요. 대개 가톨릭 단체에서 그랬어요."

- 만일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하면?
"선생님과 역사가들이 먼저 행동할 거예요."

- 공무원인 데도요? 
"네, 공무원이지만 이들은 자유와 함께 하고, 정치적 선동을 경계하거든요."

- 역사는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 걸까요?
"비판의식과 관용, 시민정신, 그리고 다른 동료 시민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가는가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에게 필요한 용병이나 군인을 만들려는 게 아니에요. 역사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비판의식을 키우는 겁니다."

-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4지선다식 시험을 쳤어요.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시험은 어떤가요?
"4지선다식 시험은 거의 없고, 문제가 몇 개 주어지고 그에 대해 답을 술술 써내려가는 형식이에요. 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질문들 처럼요."

유럽과 미대륙으로 이동한 이탈리아 이민을 다룬 챕터의 질문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이탈리아인이 이동하기 시작한 대시기는 언제인가?
2.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주로 어느 지역에 정착했나?
3. 이민의 급격한 증가와 이탈리아 인구 성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나?
4. 어느 부류의 인구가 부득이하게 떠났어야 했나?
5. 또 다른 어떤 요소가 이민을 부추겼나?
6. 이들 이민은 늘 결정적인가? "

"역사 교육은 '세계의 시민' 키우려는 것"

 2010년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의 역사 교과서 중 나덩 출판사의 것. 그림도 큼직하게 많이 배분되어 있다.
 2010년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의 역사 교과서 중 나덩 출판사의 것. 그림도 큼직하게 많이 배분되어 있다.
ⓒ 정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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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는 얼마마다 개정 되나요?
"4년에서 5년에 한 번씩이요."

-한국의 경우, 대입제도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 선생님 모두가 혼동스러워 하는데요, 프랑스의 고졸 및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어떤가요?
"아! 바칼로레아는 19세기 초부터 만들어져 내려오는 아주 오래된 시스템이라 누구도 손을 거의 못 대는 신성한 영역이에요. 1808년에 나폴레옹 1세 때 만들어졌어요."

- 인터뷰 초기에 역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프랑스인임을 느끼게 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국적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서 프랑스인임을 느낄 수 있는 걸까요?
"그건 국가에서 역사를 교육하는 데 필요한 이유로 꼽는 사항이고, 저한테는 프랑스인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우리가 세상의 한 시민이 되는 거고, 세상의 시민과 소통하는 거예요.

- 마지막으로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일반적인 교육 말이에요. 왜 교육이 필요한 걸까요?
"어른의 도구를 갖추기 위해서예요."

- 어른의 도구요?
"네, 세상에서 행동하고자하는 욕구를 갖는 것,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 세상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최고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한국에 있을 때, 학교와 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되거라, 공부 잘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였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지는 무척 주관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다수가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리라.

10년 전부터는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제일가는 덕담이라고 한다.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16년간 과거사를 가르쳐 온 선생님에게서 교육의 목적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듣고 나니 깊숙이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 우리는 역사 교육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고, 무엇을 가르치려 하고 있으며, 어른인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플로렁스 드콕
 로렁스 드콕
ⓒ 로렁스 드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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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준 로렁스 드콕은 현재 고등학교와 파리7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275명의 역사 및 지리 선생님,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아죠르나멘토 (Aggiornamento) 협회의 창간멤버이다. 2009년에 동료 에마뉴엘 피카르와 함께 책 <학교에서 제조해내는 역사>(La fabrique scolaire de l'histoire)를 썼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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