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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학생비자로 바뀌면 일주일에 스무 시간을 일할 수 있다. 이에 맞춰 큰애는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는 어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금, 토, 일요일은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짰다. 공장이 멜버른시 외곽에 있기 때문에 출퇴근을 위해 중고 '홀덴' 자동차까지 한 대 샀다. 시내에서 구하는 일자리보다 공장에서 지급하는 임금이 2배 정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애는 학원에 등록은 했지만 처음에는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없었고 쉐프가 되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큰애 표현대로 호주에는 일자리가 널려 있으니까 영주권만 따면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주중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일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어려운 일이다.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로 지탱되는 굳은 심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학원에 다니기 위해 시내로 나왔지만 막상 나오니까 우선 놀고 싶어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잔소리하는 부모라도 있지만 거기서는 누구 하나 터치하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노는 것이 한창 즐거운 나이이다.

어학원에 결석하는 날이 많아졌다. 공장은 결석하면 바로 잘리게 되므로 반드시 출근해야 하지만 어학원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젊은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큰애도 아침잠이 많다. 아무도 깨워주지 않으면 오후까지 자고 늦은 밤까지 이것 저것 하면서 논다.

거기다가 이때쯤 큰애의 슈퍼바이저가 바뀌면서 노동강도가 갑자기 올라갔다고 한다. 그 전의 슈퍼바이저는 워커들과 같이 일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바뀐 슈퍼바이저는 지시형(?)이었다. 자기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말로 지시만 하는 것이다.

친구들을 아르바이트로 데리고 와서 일은 하지 않고 같이 장난치고 놀며 그 일을 다른 워커에게 떠넘기기도 한단다. 한정된 인원이 다른 사람 몫까지 하니까 일이 배로 힘들어졌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학원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학원을 나가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얼마 후에는 아예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놀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불안했다고 한다. 다행이 막장까지는 가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큰애의 그 마지막 자제력 때문에 큰애는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러다 호주 학교에 못 들어가면 귀국하여 지옥 같은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유학원 담당자에게 싹싹 빌며 약속한 큰애

3주 정도 학원을 완전히 끊었다가, 학원에서 거의 포기할 즈음에 마음을 돌려 먹은 것이다. 워킹 홀리데이비자기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큰애는 어학원을 다시 다니기 위해, 유학원에 찾아가 담당자에게 싹싹 빌어서 앞으로 학원을 열심히 다니겠다고 약속하고 학원 수업기간을 연장 받았다.

나중에 유학원 담당자와 연락이 닿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큰애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성격이 착해서 동생처럼 대했는데 어학원에 제대로 안 나와서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이때가 어학원 등록 후 약 3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다. 이제는 급해졌다. 실력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지는 데에다, 그동안 까먹은 시간을 벌충해야 한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후 큰애는 따로 개인지도를 받았다.

매일 영작문을 하고 그 내용을 첨삭지도 받았다. 이때쯤 큰애는 첨삭지도 받기 전에 내게 미리 봐달라고 메일로 보내왔는데, 그 내용을 보고 나는 많이 안도했다. 내가 생각했던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지금 공부는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 입학을 2개월 정도 남긴 시점에 더욱 다급해진 큰애는 공장을 그만두겠다고 해서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래도 공부가 여의치 않자 큰애가 다시 꾀를 냈다. 며칠 전에 유학원에서 학교 설명회가 있었는데 그 학교로 가겠다는 것이다. 학비가 훨씬 싸다고 했다. 큰애는 저렴한 학비를 핑계로 입학이 쉬운 학교로 가겠다고 한 것이다.

윌리엄 앵글리스 학교 정원 모습 학교 앞에 있는 아담한 정원
▲ 윌리엄 앵글리스 학교 정원 모습 학교 앞에 있는 아담한 정원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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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앵글리스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와라"

호주의 쉐프 양성학교는 '르꼬르동 블루'와 '윌리엄 앵글리스'가 유명하다고 한다. 유명한 만큼 학생 모집이 어렵지 않으니까 학비도 비싸고 요구하는 영어수준도 상대적으로 높다.

윌리엄 앵글리스의 학비는 2년 동안 약 3만불, 우리 돈으로는 3000만 원 정도가 된다. 큰애가 말한 학교는 학비가 2년에 1만 5000불로 정확히 절반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유학생들이 저렴한 학비 때문에 이런 학교를 선호한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가 거기 직업학교를 졸업하여 영주권을 취득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처지는 크게 3종류로 나뉜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집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큰애와 같은 부류와, 집안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큰애의 사촌과 같은 부류, 그리고 학비만 약간 보조를 받는 큰애 친구와 같은 부류가 있다.

먼저 호주로 간 큰애는 한국에서 큰애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던 사촌에게 빨리 호주로 오라고, 속된 말로 '바리바리'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알바를 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급여수준에 아마 신천지(?)를 본 듯한 느낌이었으리라. 그렇게 호주로 건너간 큰애의 사촌은 스스로 번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지독하게 절약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호주의 물가체계는 이런 것이 가능한 구조이다.

큰애 사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학교에 입학하면서도 집에 손을 전혀 벌리지 않았다. 학교도 학비가 싼 학교를 선택했다. 집에서 부분적으로 지원받는 큰애의 친구도 마찬가지로 그 학교를 선택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교수진, 시설 등 여러 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요리실습 체계를 보면 그 차이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보통 요리실습 수업은 하루에 4가지 종류의 요리를 만드는데, 큰애 학교의 학생은 혼자서 만들고, 사촌이 다니는 학교는 학생들이 팀을 만들어 같이 만든다. 

팀으로 활동하면 대충 어영부영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혼자서 다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당연히 큰애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사촌이나 큰애 친구보다 많이 늦고, 스트레스도 더 받는다.

큰애 학교에는 자체 레스토랑이 있어서, 2학기부터는 거기에서 음식 주문이 몰려드는 러쉬아워를 경험하게 한다. 식사 시간에 한꺼번에 몰려 드는 주문을 체계적으로 처리하는 훈련을 받다 보면 실력과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축적되고, 동료 쉐프와 협력하여 일하는 방법도 배우게 된다. 이렇게 2년이 지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는 윌리엄 앵글리스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 오라고 했다.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물러서는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싫었던 것이다. 대충 2년 학교에서 버티고, 운 좋으면 영주권 따서 다른 일 하는 것은 내가 절대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나는 큰애가 진정한 쉐프가 되기를 원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곳에서 좀더 전문적인 요리를 배우거나, 크루즈선의 요리사가 되어 전세계를 두루 경험하는 것과 같은, 그런 도전적인 미래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큰애의 약점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복학하는 것을 지옥에 다시 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알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다른 쉐프 양성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윌리엄 앵글리스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차별성이 있다고 한다.

지금 메일을 다시 뒤져보니 올해 1월 14일 큰애는 마지막 영어 에세이를 보내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윌리엄 앵글리스로부터 입학허가서가 나왔다. 큰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공부를 해서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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