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11월 2일까지 개최된 '인천다큐멘터리포트2015' 피칭 현장

지난 10월 30일 ~ 11월 2일까지 개최된 '인천다큐멘터리포트2015' 피칭 현장. 이제 세 살배기 행사이지만 열기는 뜨거웠다. ⓒ 인천다큐멘터리포트


[기사 수정 : 6일 오후 3시 27분]

지난 10월 31일 오전 인천다큐멘터리포트가 열린 인천 한 호텔의 피칭 행사장. 300석 되는 좌석이 가득 찼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피칭(제작, 투자, 배급 관계자 등이 모인 자리에서 제작 중인 자신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행사)에 나서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긴장된 표정이 엿보였다. 프로젝트는 10편. 1편당 주어진 시간은 15분, 7분 정도 작품에 대한 설명과 그간 제작해 놓은 영상 상영이 있은 후 국내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패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왜 굳이 방송이 아닌 영화를 선택한 것이냐"는 질문부터 "다큐멘터리가 목적하는 과정을 잘 전해주면 해외 TV 채널에서 상영이 가능할 것 같다"라는 기대 섞인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지 정확히 이해가 안 간다"는 우려의 지적을 받은 작품도 있었다. "언어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메시지를 담아야, 가능성 있을 것 같다"는 조언 등, 패널들의 반응은 작품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피칭에 나온 제작자는 짧은 시간 동안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감독들은 한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 애쓰는 표정이었다.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관심을 나타내는 패널들의 질의가 이어지면서 대부분의 피칭이 시간을 초과했다. 덕분에 3시간 정도로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프로젝트별로 박진감 있게 진행되는 탓에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들이 드물 만큼 3시간은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열기는 뜨거웠다. 15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피칭은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기획·제작·투자·배급 가능한 원스톱 쇼핑 환경

 '인천다큐멘터리포트2015' 피칭에 나와 자신의 프로젝트인 <공자의 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중국 미지에 리 감독

'인천다큐멘터리포트2015' 피칭에 나와 자신의 프로젝트인 <공자의 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중국 미지에 리 감독 ⓒ 인천다큐멘터리포트


지난 10월 30일 개막한 3회 인천다큐멘터리포트(아래 인천다큐포트)가 행사를 성공리에 마치고 지난 2일 폐막했다. 인천다큐포트는 다큐멘터리 기획과 제작 지원, 배급, 판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인천영상위원회가 준비한 국내 최대의 다큐멘터리 행사다. 다큐멘터리 피칭은 캐나다 다큐영화제의 양대 산맥인 '핫독스다큐멘터리영화제'나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

인천다큐포트는 영화제 없이 다큐멘터리 산업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렸다.  결과적으로 큰 성공이었다.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피칭에는 국내외에서 몰려든 다큐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행사 기간 중 다큐멘터리의 투자 판매를 위한 프로그램 등에도 국내외 관계자들의 참여가 활발했다.

2013년 다큐피칭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행사는 지난해 인천다큐포트로 이름을 바꾸면서 행사 기간도 2배로 늘어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3회 만에 예산도 크게 확대됐다. 예산 규모는 웬만한 영화제 행사와 비슷할 정도다. 국내 3대 다큐피칭 행사로 전주국제영화제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인천다큐포트가 꼽히고 있는데, 규모와 상금 면에서 세 살배기 인천다큐포트가 다른 행사들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올해 인천다큐포트에는 한국과 아시아 등에서 제작되고 있는 22편의 프로젝트가 선보였다. 지난해는 국내 작품 위주로 했다면 올해는 국내 작품과 아시아 작품을 구분해 보폭을 넓혔다.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5·18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김군>부터, 부동산 거품을 다룬 <버블 패밀리>, 신기 있는 싱가포르 시민운동을 이야기하는 <젊은 활동가들>, 미군부대 주변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을 조명한 <호스트 네이션>, 아프리카에 동상이나 건출물을 세우며 외화벌이를 하는 북한의 이야기인 <검은 기념비> 등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들로 구성됐다.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과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 등은 신작 프로젝트를 들고 피칭에 참여했다.  

다큐멘터리 피칭은 일반적으로 제작이 30% 안팎 정도 된 작품들이 제작비 지원을 받기 위해 나선다. 영화는 흥행이 쉽지 않고, 방송의 경우 판권을 방송사들이 갖는 현실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제작비를 조달하고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피칭 행사가 갖는 특징이다. 가능성 있는 작품들은 방송과 영화 쪽에서 별도로 지원하고, 수상작들은 상금이 수여되기에 제작에 큰 도움을 받는다.

인천다큐포트는 여기에 더해 기존 제작된 다큐멘터리들이 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구매자들과 제작자들을 연결하는 장을 마련했다. 기획 중인 작품들과 제작을 마친 다큐멘터리의 배급이나 구매가 가능한 원스톱 쇼핑 환경이 조성하면서 국내외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이 몰려들 게 된 것이다.

올해 행사에는 알자지라 다큐멘터리 채널을 비롯해 영국 BBC, 중국 상하이미디어그룹, 일본 NHK, 프랑스 아르테 프랑스, KBS, MBC, SBS, EBS 등 국내외 방송사들의 참여와 관심도 두드러졌다. 국내 다큐멘터리 제작 배급사들도 대부분 모습을 보이며 제작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엿보였다.

5·18 소재 <김군>, 부동산 투기 <버블패밀리> 주목

 지난 10월 30일~11월 2일까지 열린 '인천다큐멘터리포트2015'

지난 10월 30일 ~ 11월 2일까지 열린 '인천다큐멘터리포트2015'. 제한된 시간에 어필을 해야 하는 제작자와 감독들은, 15분 동안 여럿 진땀을 뺐다. ⓒ 인천다큐멘터리포트


국내외 참가자들은 전체적인 면에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대부로 불리는 김동원 감독은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들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아주 좋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잘 될 수밖에 없는 행사"라고 평가했다. 독립영화 배급과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는 "3회째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규모와 내실 모두 더욱 크고 단단해지고 있다"고 호평했다.

국내외 작품들의 피칭을 본 해외 쪽 인사들 역시 프로젝트의 질이 높다며 긍정적 평가를 했는데, 인천다큐포트 강석필 프로그래머는 "규모 면에서는 해외 행사들과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피칭에 나온 작품의 질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다큐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또한, 일부 운영에서는 개선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다큐멘터리 제작 관계자는 "자문위원이나 프로젝트 선정위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심사위원까지 맡는 것은 인력풀을 협소하게 운영하는 느낌이라며 행사 주최 측에서 심사까지 전담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의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피칭 결과는 2일 저녁 열린 폐막식에서 발표됐다. 한국과 아시아의 작품에 각각 3천만 원을 수여하는 베스트프로젝트상은 강상우 감독의 <김군>과 미지에 리 감독의 <공자(孔子)의 꿈> 이 선정됐다. <김군>은 1980년 5·18 당시 사라진 청년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로, 일각에서는 김군을 평양에 거주하는 인물로 지목한 사람이다. <공자(孔子)의 꿈>은 네 살배기 아들에게 논어를 읽어주며 전통적인 교육에 집착하려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김군>은 독립영화관 개봉 지원과 현물 지원 작품으로 선정되는 등 모두 5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이번 인천다큐포트 최대 화제작으로 부상했다. 강남 부동산 흥망을 소재로 한 가족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 역시 3개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관심이 쏠렸다.

[인터뷰] 인천다큐멘터리포트 강석필 프로그래머

 인천다큐멘터리포트 강석필 프로그래머

인천다큐멘터리포트 강석필 프로그래머 ⓒ 인천다큐멘터리포트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의 프로그래머를 맡아 행사 전반을 주관한 강석필 프로그래머는 국내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하다. 강 프로그래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년, 달리다>로 다큐멘터리 대상인 비프 메세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은 강석필 프로그래머를 통해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의 운영과 위상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인천다큐포트가 3회째를 맞았다. 해마다 성장이 눈에 띄는데,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문화체육관광부나 미래창조과학부도 관심 두고 지원해 주는 것 같다.
"전체 예산은 10억 원가량 된다. 상금이나 현물 펀드 등을 포함하면 지원은 6억 원 정도다. 문화부와 미래부 쪽에서 각각 2억 원을 지원해 주고 있다. 미래부에서는 방송 다큐를 지원해 주는데, 주로 해외진출용 방송 다큐에 도움을 주고 있다. 작년에 지원했던 게 괜찮았던 모양이다. 영화진흥위원회(김세훈 위원장)도 관심을 나타내주고 있다. 올해는 워크숍을 후원했는데, 내년에는 영화발전기금 지원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인천시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어 고맙다."

- 예산 대비 지원 금액이 적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원이 다 제작지원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제작지원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하면 늘려나가는 방안을 고심할 것이다. 우선은 선순환 구조로 산업 전반의 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국내외 관계자를 불러 모으고, 네트워크 등을 위해 초청하려면 비용이 필요하다. 제작비 지원도 중요하나, 이 행사는 현금을 쥐어주는 게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산업에 필요한 구조를 위해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 해외에서 오신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영국 BBC나 일본 NHK 등에서 올 수 있게 했다. 해외 25명 정도가 왔는데, 산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초청했다."

- 반응은 어떤가?
"첫날 피칭을 보면서 프로젝트들이 괜찮아서인지 굉장히 좋아한다. 올해 못 온 사람들은 다음에는 자신들도 불러달라며 기대하는 마음인 것 같다. 다큐멘터리 투자배급에 있어 홍보마케팅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은 다 만족하기 어렵다."

- 피칭에 나온 작품들을 보면 국내 다른 다큐멘터리 피칭에서 수상한 작품들도 보인다. 수상하는 작품은 계속 받고 그렇지 못한 작품은 기회를 얻기 힘든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시장 자체가 어쩔 수가 없다. 안타깝기는 하다. 제작지원이 시장논리로만 지원하지 말아야 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에 대한 지원도 많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 앞으로도 잘 될 것 같나? 안정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지.
"내년이 본격적인 시작일 것 같은데, 산업 중심으로 가는 게 장점이다. 시장 중심으로 가게 될 경우는 아트다큐멘터리 등에 더 관심이 가게 된다. 극장투자배급 등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산업적 구조가 인천다큐포트의 강점이다. 10년은 제대로 해야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정착할 수 있을 것 같다."

- 인천영상위가 준비한 행사인데, 기존 촬영 유치 등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영상위 활동과는 다른 방향으로 잡았다. 시작하게 된 동기가 어떤 건가?
"내가 다큐를 하기 때문에 관련된 정보 등이 많다. 영상위는 지역경제 도움도 주는 게 기본. 지역 영상산업 발전에 대한 의식도 다 있다. 지역 로컬 영상산업 발전에 역할을 하면서 영화산업 전체에 도움되는 일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다큐산업과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분들도 꽤 있는데 아직 같이 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원도 하고 행사에 함께 참여시키려고도 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인천다큐멘터리포트 피칭 강석필 인천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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