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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정부는 오는 5일로 예정되어 있던 국정화 확정 고시를 그 다음날인 3일에 한다고 밝혔습니다. 왜 당긴 것이냐고 물어도 "그날 밝히겠다"라고 답할 뿐이었습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같은 날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확정고시를 해서 혼란을 끝내고 올바른 역사교과서 만들기에 몰입해 달라"고 이야기한 직후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확정 고시를 한다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각 학교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며 1인 시위, 집회참가 등을 하고 있던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같은 날 오전, 굴욕적 한일정상회담에 반대하며 대학생 20여 명이 연행됐기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하기도 했고, 교육부가 의견을 수렴하는 팩스도 꺼놨다는 이야기도 들려 우리 사이에서 "뭐라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강행할 줄 알면서도...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육 정상화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왜 국정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사례를 들어보이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육 정상화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왜 국정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사례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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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고시를 강행하겠다는 것, 그것도 원래 예고했던 날짜보다 이틀이나 당겨서 하겠다는 것은 "당신들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렸습니다. 역사학계와 청소년, 대학생, 시민의 반발이 있었음에도 확정고시를 당겨서 강행하는 것은 "뭐라고 말하든 밀고나가겠다"는 정부의 의지 표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2년에 당선된 이후, 단 한번도 물러선 적이 없습니다. '경제민주화',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파기할 때도 그랬습니다. 작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한 후에 유가족들이 죽음의 진실을 알려달라며 길바닥에서 수사권·기소권을 요구할 때도 그랬습니다. 결국 유가족과 시민 요구의 핵심이었던 수사권·기소권은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국정화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저는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했을 때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시작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정화 반대 집회에도 나갔지만, 사실 강행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역사를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정부와 단 한발의 타협과 양보도 할 수 없지만, 이 정부는 그럴 생각조차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당장 다음날 확정 고시를 강행한다고 했을 때, 그냥 물 흐르듯 통과 시켜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권력도, 힘도 없습니다. 저 혼자서는 당연히 국정화를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역사를 통제하겠다는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끝까지 저항했다는 사실을, 역사에 한 줄이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확정고시를 발표한다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오후 8시 30분, 급하게 페이스북에 글을 썼습니다. 1시간 뒤인 9시 30분까지 정부서울청사로 와달라고 올렸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도 돌렸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1시간 만에 100회 가까이 공유됐습니다.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1시간 만에 15명의 청년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10분, 20분, 1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자정쯤에는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 앉았습니다. 처음엔 건물 앞 한 귀퉁이에서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발언자가 점점 더 옆으로 옮겨가야 가운데에 설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시민들과, SNS에서 소식을 접한 시민들, 서울 시내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핫팩과 커피, 따뜻한 물, 양초, 깔개 등을 가져다주셨습니다. 금세 농성장은 모양을 갖추고 풍성해졌습니다.

"국정화 막지 못했지만, 모두가 이 밤을 기억할 것"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앞둔 지난 2일 밤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인 시민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앞둔 지난 2일 밤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인 시민들.
ⓒ 용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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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고시 강행에 분노하며 정부서울청사에 급하게 모인 사람들과 일단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이 시간에, 이곳에 나오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은 역사교육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을 선배로 두었다는 서강대 사학과 학생, 실제 검인정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는 고3 학생, SNS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온 시민…. 10명이면 10개, 20명이면 20개, 각자의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11시 30분쯤에는 국정교과서였던 예전 국사책과 세계사교과서, 한국사교과서에 국화를 헌화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죽어버린 역사의 자유와 교육 주권을 추모하고, 역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민주주의의 퇴행을 애도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12시쯤에는 경찰이 계속  '불법집회'라며 시민을 위협했습니다. 우리는 평화롭게 참가자들의 발언을 들을 뿐이었습니다. 또 정당연설회처럼 집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동당이 뚜껑이 열리는 커다란 방송차를 보내주었습니다. 하지만 뚜껑이 열려야 쓸 수 있는 방송차의 뚜껑을 여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방송차를 빙 둘러싸고 견인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손가락을 베인 학생도, 팔목을 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정당연설회는 집회신고 없이 언제 어디서든 합법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새벽 2시에 차가 다니는 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막아 선 것입니다. 정당연설회를 막아서는 경찰에게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항의했지만, 오히려 '법정에서 보자'는 큰소리가 돌아왔습니다. 경찰이 쳐놓은 폴리스라인 위에 이슬이 내려앉은 정부서울청사 앞은 법도, 뭐도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경찰은 이때 물러난 이후에도, 몇 번이나 병력을 불러와 견인하겠다고 협박하며 시민들과 충돌을 유발했습니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앞둔 지난 2일 밤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인 시민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앞둔 지난 2일 밤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인 시민들.
ⓒ 용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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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 가량을 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방송차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계속해서 정당연설회 형태로 발언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민분들이 보내주신 깔개를 깔고 모여앉아 여기저기서 보내주신 커피와 김밥, 햄버거 등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공연을 할 수 있는 참가자들이 앞으로 나와 크럼프(KRUMP) 댄스와 노래, 율동을 선보였습니다. 우리는 "이 미친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참 추웠습니다. 시민들로부터 계속해서 공수되는 따스한 커피와 뜨거운 물, 핫팩에도 불구하고 참 추웠습니다. 경찰이 넘어오지 말라고 쳐놓은 플라스틱 폴리스라인 위에도 이슬이 맺혔습니다. 그래도 새벽 4시까지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을 췄습니다. 여기,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있다고 밤새 외쳤습니다. 즐거웠지만, 추위 때문인지 시간이 참 더디게 갔습니다.

아침이 밝자 수업과 출근 등으로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100여 명에 가까웠던 참가자는 30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춥다고, 한밤보다 새벽 6시~7시가 가장 추웠습니다. 새벽에도 경찰은 계속해서 방송차를 빼라고 압박을 했습니다. 그래도 오전 9시가 넘어가자 다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돌오돌 떨면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결국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했습니다. 국정화를 막아내진 못했습니다.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밤을 새우며 국정화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막아내진 못했습니다.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 정부서울청사에서 마음을 모아 함께 밤을 지새웠다는 사실은 남을 것입니다. 역사를 통제하겠다는 정부에 저항하고,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고, 존재해왔고, 존재할 것입니다.

역사에 자유를,
교육에 주권을.

2015.11.3. 용혜인 드림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국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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