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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 확정을 발표하고 있다.
현행 역사교과서의 검정 발행 제도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며 "더 이상 역사교과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역사교육을 정상화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가의 책임으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 황우여 "사회적 혼란 막기 위해 역사교과서 발행 결정"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 확정을 발표하고 있다. 현행 역사교과서의 검정 발행 제도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며 "더 이상 역사교과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역사교육을 정상화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가의 책임으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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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의 취지와 내용을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행정절차법 제46조에 따라 붙임과 같이 공고합니다. - 교육부 공고 제2015-216호

지난 10월 12일 교육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 행정예고 공고 내용 중 일부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 계획을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진행한 이 행정 예고는 2일 자정 마감됐다. 그리고 11시간 뒤, 교육부는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은 3일 오전 11시 국정화로 전환된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 확정 고시를 발표했다. 5일 예정으로 알려진 것보다 이틀 앞선 시점이다.

이어 오후 3시께 올라온 행정예고 의견 검토 결과와 의견 수합 내용에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찬성 의견 제출자에 비해 반대 의견 제출자가 약 3만6000명(익명의 의견 수 제외) 더 많았지만, 교육부는 찬성 의견만 수용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해석한 부분도 기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해온 측의 주장과 사뭇 달랐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 12일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 행정예고 발표 당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의 행정 예고 과정과 관련 발표 자료를 통해 교육부가 국민의 의견 가운데 언제,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짚어 본다.

[시간] 국민 전체 의견 분석·정리에 반나절도 안 쓴 교육부

"관보 문제를 해결했고, 행정 예고 기간 충분히 의견 검토해 왔다."
"늦게 들어온 건 새벽까지 직원들이 맞추면 조속히 매듭을 짓는 게 옳다는 판단을 했다."

황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갑자기 확정 고시를 발표하게 된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교육부가 밝힌 전체 의견 제출자 수가 총 33만5670명(익명 또는 주소가 불명확한 이 제외)이다. 33만여 명의 국민 전체 의견을 수렴하고 정리하는 데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날 김동원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전날뿐 아니라 그 전부터 상당히 많은 양의 의견서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준식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위원장은 "관보 규정을 무리하게 어기면서 일을 추진한 이유는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단 추진하고 보자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수용] 반대가 3만6000건 더 많지만, 찬성만 '오케이'

중등 역사(한국사) 구분 고시 행정예고 의견 수합 현황. 찬성, 반대 총 제출 인원.
 중등 역사(한국사) 구분 고시 행정예고 의견 수합 현황. 찬성, 반대 총 제출 인원.
ⓒ 교육부 자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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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행정예고를 통해 접수한 국정 교과서 찬반 의견은 찬성 14만9816명, 반대 18만5854명으로 반대가 3만6천명 이상 많았다. 익명의 의견 또는 주소 및 전화 번호가 불명확한 의견을 포함할 경우 찬성과 반대의 격차는 16만8270명으로 더 벌어진다. 하지만 교육부는 찬성의 의견만 수용했다. 그 이유를 밝힌 검토 결과서에서는 그간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며 주장해온 바와 계획이 반복 제시돼 있었다.

김동원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질의 응답을 통해 "반대 의견이 있는 부분 중 정당한 부분은 반영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제시된 교육부의 의견 검토 내용에는 반대 의견을 반영한 부분이 제대로 제시돼 있지 않았다. 

교육부가 밝힌 의견 검토서는 찬성 의견 수용 이유에 대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키울 수 있도록 중등 역사교과서를 국정 도서로 전환한다"며 이유라기보다는 기존에 밝혀왔던 교육부의 주장을 반복 제시했다.

반대로 반대 의견에 대해선 "친일 미화, 역사 왜곡은 있을 수 없는 일", "학계의 통설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보장하겠다"는 등 역시 이유 대신 교육부의 계획과 반박을 적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행정절차법을 보면 행정예고 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의견을 존중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돼 있다"면서 "반대 의견이 더 많다면 교육부가 반대 의견을 반영해 정책을 수정하든 폐기하든 해야 하는 건데, 교육부가 행정절차법을 무시했다는 이야기다"라고 지적했다.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 행정예고 의견 검토결과.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 행정예고 의견 검토결과.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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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헌법재판소 결정을 바라보는 두 개의 눈

한편, 교육부는 의견 검토서에서 반대 의견이 제시한 '국정 교과서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헌법재판소 결정 '89헌마88'을 근거로 들어 반박했다. 황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3일 국정화 전환 브리핑에서 "헌법 가치 기준에 합당한, 나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부여하는 교과서로 현재 (교과서는) 미흡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교육의 헌법적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89헌마88'는 그간 국정 교과서를 반대한 이들이 '국정 교과서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제시한 결정문과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부와 반대 의견을 낸 시민들의 헌법적 해석 차는 왜 발생했을까. 실제 교육부가 의견 검토서에서 제시한 결정문 내용을 옮겨와 본다.

'국정 제도가 바람직한지 여부는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교육이념과 국내외의 제반 교육여건, 특히 남북 긴장관계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 여건 등에 비추어 교과서 종류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면 교육부가 발췌한 내용에 추가 설명이 뒤따른다. 아래는 교육부가 발췌 과정에서 생략한 내용이다.

'예컨대 특정과목 교과서의 저작·발행에 비용은 많이 드는 반면 수요는 적어 어느 누구도 그러한 교과서를 집필·발행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라든지 사인에게 맡기는 경우 그에 관한 연구가 충실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예컨대, 현재 중학교 1종 교과서로 되어 있는 가정, 농업, 공업, 상업, 수산업, 가사)가 그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이외에는 국정제도 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 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과내용의 다양성과 학생들의 지식습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교과서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교과서의 내용에도 학설의 대립이 있고, 어느 한쪽의 학설을 택하는 데 문제점이 있는 경우, 예컨대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똑같은 헌재 결정문을 두고 교육부와 국정화 반대 시민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에 대해 이준식 위원장은 "(관련 결정문에 대해) 여러 법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헌재 결정문 핵심 내용은 국정제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면서 "정부가 헌법재판소 결정마저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교육부 , #국정, #확정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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