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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의 간까지 빼먹는 명불허전 '기업가 정신'

임금피크제로 일자리가 쪼개진다. 정부와 기업은 고연령·장기근속 노동자들의 임금에 상한선을 긋고 삭감해, 아낀 돈으로 청년 일자리를 늘리려 한다. 언론은 연일 임금피크제 도입을 대서특필하며 정책 선전에 일조한다.

"지방공기업 임금피크제로 일자리 1000개 창출" <KBS> 29일
"지방공기업 95% 임금피크제 합의.. 청년 일자리 청신호" <연합뉴스> 28일

청년 일자리 창출 자체는 언제나 환영이다. 다만 고통분담은 늘 노동자들 몫이고, 기업은 고용에 따른 비용을 지급하려 들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의 수가 늘면, 기업에 이득이 되니 대가를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삥땅 친 돈도 있지 않은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법인세율을 낮춰주며 특혜까지 줬다.

하지만 30대 그룹은 돈을 풀어 경제를 활성화하긴 커녕, 사내유보금이 매년 최고 수준을 경신하다가 지난 1분기 무려 710조 원에 이르렀다. 특혜로 생긴 돈을 '시장에 풀기에는 경기가 좋지 않았다'는 변명을 할 것이라면, 애초에 세금도 깎지 말았어야지. 1%의 '현금성' 유보금만이라도 풀어 비정규직 50만 명을 정규직화하자거나, 월 200만 원 이상 일자리 30만 개를 만들자는 지적도 나오지만 시큰둥하다. 동시에 혐의는 뚜렷해져만 간다.

4대강 '녹차라떼 제조사업'에도 22조 원이나 처박았으니, 상식의 잣대로 보면 MB정권과 대기업은 가히 환경 사범과 경제사범이 아닌가. 전과가 있으면 염치란 게 있어야 할 텐데, 갱생은 어디 가고 또 저지레를 한다. 이게 명불허전 '기업가 정신'이란 걸까? 벼룩의 간을 빼먹어도 정도가 있지, 임금피크제로 고만고만한 노동자 벼룩들이 간을 내놓고 애잔한 '아나바다 운동'을 하란다. 참네, 이게 마냥 꽹과리 치며 좋아할 일인가?

"허허, 이거 원 벼룩의 간이라 약소합니다만.."
▲ 티끌모아 태산? "허허, 이거 원 벼룩의 간이라 약소합니다만.."
ⓒ 얀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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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벼룩'들'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른바 '신의 직장'에 일하며 '고연봉'을 챙기는 노동자들은 '기득권'만 챙기는 '귀족노조'들이 아닐까? 적어도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분은 지난 8월 6일 대국민 담화에서 비장한 콘셉트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의 딸과 아들을 위해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 기성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눈물 없인 보고 들을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젊을 때 '빡세게' 구르되, 나이 많아 부양가족이 많을 때 설렁하게 일하며 돈을 더 가져가는 '보상심리 사회'란 걸 염두에 두자(이런 문화가 권장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직장인은 '38선(38세는 서서히 퇴직을 받아들인다)·사오정(45세 정년)·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 신세이며, 심지어 취직도 못 한 2030이 널린 게 '헬조선'의 현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리고 좀 더 직접적 이해관계에 맞게 발상의 전환을 이끌 수는 없을까? 그들이 과한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나머지가 푸대접을 받는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신의 직장' 같은 노동자 편가르기식 프레임들을 따라 읊으면서 퍼뜨리면, 세습 자본가들과 박근혜 대통령은 좋아하겠지만 말이다.

노동자 푸대접 1·2·3등 석권, 남다른 '헬조선의 클라스'

재계는 노동자들의 복지보다 다른 떡고물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잘 알려졌듯, 한국의 산업화 압축성장은 노동자와 농민이 허리띠를 졸라매 단기간에 이뤘다.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이 관행처럼 자리잡혔다. 자본에 인간을 끌어다 맞췄다. 그러나 후기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보화 시대가 됐고, 기계에 인간을 끌어다 맞추는 식으로는 더는 생산성이 안 나온다. 노동자들의 두뇌 회전이 빨라야 하는데, 신체 피로감은 집중력과 업무 능률을 저해한다. 이때 재계가 임금피크제(라 쓰고 '일자리 쪼개기'라 읽는다)를 꺼내 든 건 가히 '신의 한 수'다. 곧 죽어도 자신들 지갑은 안 열면서, 생산성은 끌어올려 한 몫 챙길 기회가 된다.

게다가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선전하고, 여당을 향한 표심까지 자극할 수 있으니 속된 말로 '개이득'이다. 하지만 재계의 본심은, 노동자들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에서 '뽀록(들통)'난다. 한 사회의 노동자 처우를 대략 비교할 수 있는 게, 바로 최저임금 수준과 질 낮은 일자리 비중이다.

하지만 이런 클라스는 좀 사양하고 싶은데요.
▲ 쓸 데 없이 고퀄 하지만 이런 클라스는 좀 사양하고 싶은데요.
ⓒ freeimages/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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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확인할 수 있는 게, '2015 한국노동연구원 해외노동통계'나 'OECD 고용 전망 2015' 보고서 같은 것들이다. 2013년 한국의 실질최저임금은 시간당 5.30 달러로, 이웃 나라 일본(6.70)에 못 미치며 프랑스(10.70)와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심지어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7명 중 1명 꼴(14.7%)로 1위이며 주요 20개국 평균의 2.7배다.

2014년 전체 노동자 중 임시직·단기직(임시직·현 직장 근속 1년 미만) 노동자 비율은 임시직이 5명 중 1명꼴로 3위(21.7%), 단기직은 3명 중 1명꼴로 1위(30.8%)다. 노동자의 삶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적신호인 셈이다.

걸핏하면 직장을 옮겨야 하고, 매 구직 활동 기간마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임금(임금 중윗값 2/3 이하) 노동자는 2위로(24.7%), 1위 미국과도(25%)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정리하면 ①기업들이 뒷통수 친 소식 ②노동자 벼룩의 간 빼 먹히는 소식 ③노동자가 푸대접받는 소식은 들려와도, ④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지급했다는 소식이 없다.

기업의 무한탐욕이 한국인을 멸종시킨다?

결국 기업이 돈을 풀어야 한다. 돈이 풀리는 양이 정해져 있는데, 일자리만 쪼갠다고 경기가 얼마나 활성화될지 의문스럽다. 핵심은 '일자리 쪼개기'가 아니라 '일자리 늘리기'다. 복잡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둑질의 방법은 다양하다. 다른 걸 토해내라는 게 아니다. MB정권 때 늘어난 유보금 중 현금성 유보금 1%만 풀면 ①기존 노동자의 임금삭감 없이 청년 고용이 늘고 ②일자리를 얻은 청년들의 소비력이 증대돼 경기가 활성화되며 ③기존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은 줄고(간접 복지) ④노동생산성 증대까지(생산)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조세로 거둬들이는 돈이 늘고, 그 돈이 복지 예산으로 흘러들어 가면 생활이 안정돼 출산율 상승도 기대된다. 하지만 이 네 가지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말씀에서 실종된다.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 정도가 평소 김 대표의 눈높이기 때문이다(2월 5일,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 특강). 기업의 탐욕과 정부·여당의 근시안이 계속 유지된다면, 한국인은 멸종할 수도 있다.

농담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저널>이 소개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2750년에 멸종한다' 물론 이것은 당시 합계 출산율(가임여성 1명당 출산율)이 약 1.19명으로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의 경고성 예측이다(통일·이민 정책 변화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예측에 따르면, 인구는 이번 세기가 끝나는 시점 2000만 명→2134년경 1000만 명→2196년 300만 명→2379년 10만 명으로 빠르게 감소한다.

통계청의 최신 조사에서 2014년 출산율은 약 1.2명에 머물러 있다. 2013년보다는 높지만, 출생아 수 자체는 감소했다(436.6→435.4 천 명). 지금이야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지만, 이대로 가면 노동력이 점점 감소할 것이다. 그걸 보전해 경제성장을 지속하려면, 2060년까지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500만 명의 이주민이 필요하다고 전망된다.

한편 지난 3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2030세대 28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눈길을 끈다.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중 포기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1660명(57.6%)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 가운데 결혼 1위(50.20%), 출산 3위(45.90%)로 나타났고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 이유였다.

만약 재계가 저출산·고령화 추세 속에서도 자신들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푸대접을 이어가며, 정부가 더불어 방조한다면 앞날은 뻔한 일이다. 결국 이것은 여성혐오나 국수주의로 편을 가를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을 먹고살기 어려워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을 것이고, 일손은 부족해질 것이며, 정부와 재계는 값싸게 외국인 노동자들을 데려와 노동력 착취도 불사할 것이다.

실제로 OECD 국가 중 한국의 내·외국인 임금 격차는 이미 1위이다. 청년 일자리가 느는 건 좋은 일이지만, 또다시 재계의 탐욕을 눈감아줘야 할까? 만약 2750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된다면, 한민족은 멸종하고 '싸와디코쿤캅'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한일전 결승 골을 넣는 상황도 연출될 수도 있다. 너무 부정적이라고?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한국사 검정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다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변하셨다.

이 신령스런 신정일치 사회에서, 기운(?)을 체득하는 건 헬조선의 신민으로서 마땅히 본받아야 할 자세가 아니겠는가. 필자도 통계나 사회 돌아가는 추세를 보니, 그냥 전체적으로 다 그런 기운이 올 뿐이다. 그저 필자의 점괘(?)가 틀리기만을 빌 뿐이다.

만약 기업이 생산성 증가로 벌어들인 돈을 노동자들에게 분배하고, MB정권 때처럼 세금 삥땅을 치지 않고 복지 예산으로 흘러들어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속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자꾸 속으면 그건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에게 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태그:#헬조선, #벼룩의 간, #일자리 쪼개기, #재벌 개이득 사회, #멸종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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