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선사축제의 거리퍼레이드
▲ 강동구 선사축제 선사축제의 거리퍼레이드
ⓒ 강동구청

관련사진보기


10월 31일 오전 11시부터 서울시 강동구청 앞에서는 마을축제가 열린다. 강동구의 사회적경제조직들과 마을공동체가 함께 하는 이 축제는 구청이나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여느 축제들과 다르다. 그것은 결국 '남'이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

대한민국은 소위 '축제공화국'이다. 지난 9월 행정자치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4년도 전국 243개 자치단체에서 열린 크고 작은 행사·축제는 총 1만4604건으로 하루 평균 약 40개의 축제가 열렸으며, 그 예산은 1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이는 그 전년도와 비교하여 23% 증가한 것인데 작년 세월호 사태를 감안한다면 엄청난 수치임에 분명하다. 축제의 계절이었던 5월부터 꽤 오랜 기간 동안 대부분의 축제가 중단되었거나 연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같은 맥락으로 올해 메르스 사태 역시 축제 규모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리라.

10/31(토) 강동구청 앞
▲ 마을, 협동에 물들다 10/31(토) 강동구청 앞
ⓒ 이희동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왜 이렇게 축제가 많은 걸까? 이는 결국 1990년대 들어와 다시 시작된 지방자치제도와 관계가 깊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되면서 각각의 지자체들이 자신들을 홍보하기 위해 축제를 경쟁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인인 자치단체장은 짧은 임기 내에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주민들에게 각인 시켜야 하는데, 축제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좋은 기제가 됐다.

실제로 축제는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시작된 이후부터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자체가 실시하는 제법 큰 규모의 축제의 경우만 해도 1996년도에는 412건이었던 것이 2010년도를 지나면서 800건을 넘어섰다.

변질되어 버린 축제 문화

문제는 이와 같은 축제의 증가가 그 지역 주민들의 삶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비록 축제는 날이 갈수록 더더욱 화려해지고 대형화되고 있지만 정작 그 축제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지역 주민들은 축제가 왜 기획되고 진행되고 있는지 그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오히려 피곤함만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단순히 홍보가 부족하거나 축제 별 차별성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축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로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열리는 축제들이 예전과 같은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이다.

사실 축제라 함은 인류의 아주 오래된 전통으로 고대 제사에서부터 유래되었다. 우리가 국사 시간에 배웠던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이 그 대표적인 예로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예식을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그 핵심가치를 지켜왔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전쟁이나 천재지변을 극복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사람들은 축제를 열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소속을 확인하고 '우리'를 인식했다. 축제는 과거 '우리'라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그 축제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근대화와 함께 1960, 1970년대까지 존재한 기존 공동체들이 붕괴되면서 축제가 지닌 본연의 가치는 흐릿해지고, 그 외형적인 형태만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우리'를 확인하던 축제의 가치는 사라지고 단순히 유희의 수단 혹은 특정 주체의 홍보 수단으로 축제가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방자치제의 등장은 이와 같은 축제의 변질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유료화로 말이 많았던
▲ 진주유등축제 유료화로 말이 많았던
ⓒ 진주시청

관련사진보기


결국 현재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축제들을 보자. 그 속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자체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대부분 축제에서 공무원들은 주체 아닌 주체로서 자신들의 업무를 하고 있으며, '우리'가 되어야 하는 주민들은 '손님'이 되어 그 축제를 소비하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축제가 가지고 있던 가치들은 잊어버린 채, 관광객 숫자와 그로 인한 매출만이 축제의 성공 척도가 되어버렸다.

최근 유료화로 문제가 되었던 '진주유등축제'는 바로 이와 같이 변질된 축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유등을 통해 임진왜란의 오래된 기억을 상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진주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심어주던 그 축제가, 이제는 돈을 내야지 유등을 볼 수 있는, 그 천박한 현실이 현재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작은 희망, 마을 축제

그렇다면 이제 '공동체의 유지'라는 본연의 의무를 하고 있는 축제는 사라진 걸까? 이와 관련해 작은 지역 단위에서 열리는 마을축제들을 주목해 보자.

행정자치부는 2013년부터 실시한 행사축제 원가정보 공개와 투자심사 강화로 인해 3억 원 이상 대규모 행사축제는 감소한 반면 광역단체 5천만 원, 기초단체 1천만 원 미만의 소규모 행사축제는 대폭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의 축제 문화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타 지역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보다 우리 지역에서 우리끼리 여는 축제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조악한 전시
▲ 마을축제 조악한 전시
ⓒ 김종건

관련사진보기


누가누가 잘하나
▲ 그래도 우리 이웃인데 누가누가 잘하나
ⓒ 김종건

관련사진보기


물론 마을축제는 매우 조악하기 짝이 없다. 엄청난 인력과 자본을 투자하는 지자체의 축제들과 달리 마을축제는 주민들이 직접 나와 작은 놀이터나 마을 공터에서 빤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이게 무슨 축제냐 싶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들에서 축제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축제가 공동체의 재발견을 위한 것이라면, 지역 주민들이 자기네들끼리 즐기기 위해 벌이고 있는 마을축제야말로 참다운 축제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가수가 나오지 않고, 체험마당이 2% 부족하면 어떤가. 그 모두가 나의 이웃이며, '우리'의 일부분으로서 내가 속한 공동체를 확인하는 소중한 과정 아니던가. 어쩌면 이런 마을축제가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동체적인 삶을 갈구하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사회적경제와 마을축제

우리가 꿈꾸는 지역
▲ 사회적경제의 목표 우리가 꿈꾸는 지역
ⓒ 김두선

관련사진보기


따라서 이런 마을축제는 사회적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결국 마을축제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소속감을 고취하고 그 안에서 '우리'를 확인하는 과정인 바, 지역을 기반으로 그 지역 내에서의 경제 순환을 추구하는 사회적경제는 작은 마을축제의 대표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부들이 소소하게 만든 액세서리나 의류들, 마을 가죽공방의 지갑, 동네 치킨가게의 치킨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제를 풍요롭게 만들지만, 더 나아가 '우리'를 인식하게 한다. 결국 그것들을 매개로 우리들은 동네 사람들 간의 신뢰를 경험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지역 내의 자족을 꿈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들이 지역의 작은 축제에 크고 작게 관여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지역이 살아야 사회적경제가 살고, 사회적경제가 살아야 지역이 풍요로워진다. 우리가 동네에서 열리는 마을축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는 31일 강동구청 앞에서 열리는 마을 축제는 강동구의 '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들과 여러 마을공동체들이 함께 어린이뮤지컬(오전 11시), 체험마당, 전시마당, 판매 마당 등을 꾸미며 축제를 이끌어 나가는데 우리는 그 속에서 작은 마을축제의 가능성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경제의 원대한 꿈과, '우리'를 꿈꾸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즐기시기를.


태그:#축제, #사회적경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