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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택시협동조합 박계동 이사장
 한국택시협동조합 박계동 이사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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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는 '고급'이지만 요금은 일반 택시와 같습니다."

요즘 서울지역 택시기사와 승객들 사이에 노란색 '쿱(Coop) 택시'가 화제다. 바로 지난 7월 14일 첫 시동을 건 한국택시협동조합(이사장 박계동) 소속 택시 70여 대와 조합원 180여 명이 그 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택시기사들이 직접 출자해서 운영하는 '협동조합(cooperative) 택시'로, 사납금도 없고 회사 수익도 모두 기사들에게 배당하고 있다.

쿱 택시 출범 100일을 앞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노란 택시 안에서 박계동(63)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났다. 박계동 이사장은 2선 국회의원으로 지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을 폭로한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지난 2000년쯤 11개월 동안 직접 택시를 몰기도 했다.

택시 기사가 주인인 쿱 택시, 법인카드에 이익 배당까지

"저도 택시기사 면허증을 따 뒀어요. 2주에 한 번쯤은 현장에 직접 나가봐야 시장을 알 수 있잖아요."

이날 인터뷰도 마포 한국택시협동조합 차고지에서 시작했지만 박 이사장이 직접 모는 택시 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과연 지난 3개월 쿱 택시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날 오전 차고지에 남아있는 택시는 정비 중인 차량을 포함해 예닐곱 대에 불과했다. 70여 대에 이르는 쿱 택시들이 대부분 거리를 누비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지역 택시 평균 가동률이 60~70% 안팎에 불과하지만, 쿱 택시 평균 가동률은 9월 들어 95%에 이른다. 하지만 박 이사장이 3개월 전 법정관리 상태인 '서우택시'를 인수할 때만 해도 평균 가동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택시 숫자에 비해 택시 기사가 부족했거나 기사 처우가 열약해 쉬는 날이 많았다는 의미다.

"흔히 출격횟수라고 부르는데 택시가 오전, 오후 교대시간 다 뛰어야 가동률이 100%예요. 결국 쉬는 택시가 몇 대냐에 따라 가동률이 달라지는 거죠. 처음 회사를 인수했을 때는 가동률이 45% 정도였는데 지금은 95%예요. 손님이 줄어 일을 덜 나가는 일요일을 빼면 거의 풀가동한 셈이죠."

택시 가동률이 높을수록 회사 매출도 늘어난다. 쿱 택시 출범 전 하루 매출은 650만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택시기사 수당과 비용을 빼고 남는 회사 수익은 모두 조합원들에게 배당하는데 1인당 배당금도 지난 7월 55만 원에서 8월 60만 원, 9월 63만 원으로 꾸준히 올랐다.

"택시기사들은 항상 위험에 장시간 노출돼 있고 노동 강도도 높아요. 월 평균 수입이 300만 원은 돼야 하는데 120만 원밖에 안 되니 웬만한 일자리 생기면 떠나버려요. 이직률이 취업률보다 훨씬 높다 보니 택시 가동률은 떨어지고 기업 채산성이 악화되니 사납금을 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기사들 수익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어요. 수익이 워낙 낮으니 돈 더 벌겠다고 신호 위반하고 승객 골라 태우고 승차 거부하고 과속 운전하는 거죠."

지난달 쿱 택시기사 월평균 수입은 224만 원으로, 월 130만 원 정도인 일반 법인택시 기사는 물론 월 200만 원 정도인 개인택시 기사보다도 높다. 사납금은 없지만 기준금을 채우고 25일 근무하면 130만 원을 기본급으로 주고, 기준금을 초과한 수입은 다른 회사처럼 6대 4로 나누지 않고 100% 기사에게 준다. 여기에 배당금까지 합하면 평균 224만 원이 나오는 것이다. 또 기사들에게 50만 원 한도인 법인카드(복지카드)를 지급해 식대와 담뱃값까지 해결하게 하고 차량 유지비는 모두 회사에서 부담하고 있다.

한국택시협동조합 소속으로 일을 하고 있는 종사원의 명단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한국택시협동조합 소속으로 일을 하고 있는 종사원의 명단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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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운전 중 가벼운 접촉사고로 사이드미러가 깨지거나 범퍼가 찌그러지면 사실상 운송 비용인데도 일반 택시회사에선 택시 기사에게 전가해요.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사이드미러 값 20만 원 내라고 하면 화나죠. 심지어 네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으나 자동차 보험료도 절반 부담하라는 식이에요. 그게 다 불법이거든요.


기사들도 자꾸 소득이 줄어드니 '일차제'나 '휴무 승차' 같은 불법 영업 행위를 공공연하게 해요. 일차제는 오전, 오후 12시간 근무를 동시에 뛰게 하는 건데 불법 연장 근무나 마찬가지여서 굉장히 위험해요. 돈이 급한 사람은 한 달 내내 안 쉬는 거예요. 서울지역 택시 1대당 평균 기사 수가 1.4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30% 이상은 일차제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해요. 우린 1대당 2.4명이에요. 5일 일하고 하루는 의무적으로 쉬게 해요."

실제 이날 차고지에선 만난 택시기사나 직원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밝았다. 대표 역할을 하는 박 이사장과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눴다. 그사이 조합원들 사이에 등산이나 바둑 모임도 생겼고 네이버 밴드를 통한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하다. 박 이사장도 밴드를 통해 조합 운영 상황을 수시로 공개하고 있다.

입소문 나며 조합원 신청자 급증, 대구 부산 광주도 추진 

"어떤 영역에서 협동조합 기업이 경쟁력이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결국 자본 집약이나 기술 집약적인 것은 경쟁력이 없지만 사람의 노동 중심 영역에서 수익을 올리고 투명하게 경영해서 그걸 전부 나누는 게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택시를 선택했죠."
 "어떤 영역에서 협동조합 기업이 경쟁력이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결국 자본 집약이나 기술 집약적인 것은 경쟁력이 없지만 사람의 노동 중심 영역에서 수익을 올리고 투명하게 경영해서 그걸 전부 나누는 게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택시를 선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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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다 보니 최근 조합원 신청자도 갑자기 늘었다고 한다. 출자금 2500만 원을 낸 조합원이 170명 정도인데, 19일 현재 250여 명이 대기 상태다. 그래서 박 이사장은 올해 안에 75대 규모의 서울 회사 한 곳을 포함해 대구와 부산, 광주 등에서도 택시회사를 인수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협동조합 택시는 올해 안으로 200~250대까지 늘어나게 된다.

"대구와 부산에도 택시협동조합 추진본부가 있는데 택시회사를 인수할 목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자금을 가지고 인수해줘야 해요. 또 협동조합 택시를 하려면 3가지 협동조합적 경영 방식에도 동의해야 해요. 우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여야 하고 두 번째는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해요. 세 번째는 이익을 전부 조합원과 나눠야 해요. 우린 협동조합 6가지 유형 가운데서도 '근로자형 협동조합', '우리사주(Employee-Owned Company)'형 협동조합이에요. 이름은 '협동조합'이지만 종업원들과 노사 관계인 곳도 많은데, 우리 조합원들은 처음으로 완벽한 우리사주형 협동조합을 만들었다는 데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박 이사장은 지난 2012년 국회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 정재돈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이 번역한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교수의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는 책을 보고 감명을 받아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떤 영역에서 협동조합 기업이 경쟁력이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결국 자본 집약이나 기술 집약적인 것은 경쟁력이 없지만 사람의 노동 중심 영역에서 수익을 올리고 투명하게 경영해서 그걸 전부 나누는 게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택시를 선택했죠. 협동조합은 작은 자본을 모아 큰 자본을 만들어야 하는데, 돈을 모으고 경영하는 주체의 신뢰, '사회적 자산(소셜 에셋)'이 돈보다 중요해요. 제가 택시기사로 11개월 정도 일해 봤고 국회에 있을 때 택시 특별소비세 폐지 법안을 냈을 때 법인택시와 개인택시 기사들이 지지집회를 한 적도 있어 택시업계 종사자들도 제가 택시 협동조합 하는 걸 뜻밖으로 받아들이진 않는 거 같아요."

"우버-카카오택시도 협동조합 택시는 못 이겨"

택시가 다른 산업에 비해 노동집약적이긴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비롯된 IT(정보기술) 혁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바일을 이용한 콜택시 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장 자가용 콜택시 업체인 '우버'가 지난해 택시업계를 뒤흔든 데 이어 올해 '카카오택시'가 순식간에 콜택시사업을 장악했다. 카카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서울지역 택시업체들과 손잡고 고급 택시 서비스인 '카카오택시 블랙' 사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우버는 단순히 앱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인도 등에서 직접 택시 영역까지 뛰어들었고, 카카오택시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카카오도 택시 업계에서 협동조합 택시를 이길 순 없다고 생각해요. 우린 투명하게 경영하고 이익을 기사들에게 다 나눠주는데 우버나 카카오는 투자한 만큼 뽑아가려고 할 테니까 말이죠. 카카오택시도 협동조합 택시한테는 안 되겠다 싶으니까 고급 택시로 가는 거죠."

지난해 우버 블랙, 우버 엑스 등 자가용 콜택시가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건, 그동안 택시업계나 기사들이 수익에만 매달려 고객 서비스를 등한시해온 탓이다. 이 때문에 카카오택시 블랙도 기본요금을 8천 원으로 올려, 고급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을 잡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협동조합 택시 역시 택시기사 처우를 개선해 서비스를 개선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쿱 택시에는 어김없이 "일반 택시와 요금이 같다"고 안내 문구가 붙어있다. 일반 택시에 비해 튀는 샛노란색 택시 디자인과 깔끔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택시 기사를 보고 요금이 더 비싼 '고급택시'로 오해하는 승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전엔 승객들이 꽃담황토색 택시를 많이 찾았는데 이제 일부러 쿱 택시를 타는 사람도 많아요. 협동조합 택시를 알아보고 응원하고 팁도 많이 줘요. 우리 기사들이 '협동조합 택시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하는데, 어떤 분은 요금이 7000원 정도 나와도 만 원 내고 거스름돈 3000원은 팁이라고 줘요. 어떤 기사는 하루에 팁을 1만5천 원까지 받기도 해요. 그것만 해도 한 달에 얼마예요?"

"협동조합은 인본주의 경제, 청소용역 등으로 확장해야"

"협동조합에 대해 좌파 운동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와 달리 자본이 사람을 고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거꾸로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시스템이에요. 사회적 경제라고 하니까 그 용어만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협동조합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 경제도 아닌 인본주의 경제예요."
 "협동조합에 대해 좌파 운동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와 달리 자본이 사람을 고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거꾸로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시스템이에요. 사회적 경제라고 하니까 그 용어만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협동조합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 경제도 아닌 인본주의 경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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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운동권 출신인 박계동 이사장은 지난 1992년 14대 총선에선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해 정치에 입문했지만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하고 지난 2008년부터는 국회 사무총장까지 지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여야를 넘나드는 정치 이력 탓인지 박 이사장은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이념적 편 가르기를 가장 경계했다.  

"협동조합에 대해 좌파 운동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와 달리 자본이 사람을 고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거꾸로 사람이 자본을 고용하는 시스템이에요. 사회적 경제라고 하니까 그 용어만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협동조합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 경제도 아닌 인본주의 경제예요."

박 이사장은 택시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청소 용역, 보육, 장기요양보호사 등으로 협동조합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보육교사, 장기요양보호사, 청소용역 다 뜯기고 있거든요. 국회 예산에서 청소 용역에게 월 200만 원씩 주는데도 중간에 용역회사가 들어가 70만 원씩 뜯고 130만 원만 받아요. 거기에 협동조합이 들어가서 200만 원 다 줘 봐요. 우선 올해 말 국회에서 먼저 청소용역 협동조합 추진하고, 앞으로 지자체로 확대할 계획이에요."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박계동, #쿱택시, #카카오택시, #한국택시협동조합,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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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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