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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의 신-객주 2015>.
 <장사의 신-객주 2015>.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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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극에 등장하는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선비 출신들이다. 사극의 논리에 따르면, 이런 관료들은 원칙상 영리 행위와 무관하다. 나라에서 주는 녹봉만 갖고 살아가는 것이 사극에 나오는 선비 출신 관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물론 사극에는 머릿속에 돈 생각밖에 없는 탐관오리들이 선비 출신 관료들의 예외적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탐관오리들을 제외하면, 사극 속의 관료들은 금전이나 물질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이런 이미지는 최근 시작된 KBS 사극 <장사의 신-객주 2015>의 밑바탕에도 깔려 있다.

이 드라마의 초반부에서는 개성상인 천오수(김승수 분)의 재물을 뜯는 데 혈안이 된 개성유수(개성광역시장)와 의주부윤(의주시장)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이들의 악행과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로, 의로운 상인인 천오수는 객지인 의주 땅에서 억울하게 참수형을 당했다. 임금의 최종 심판도 거치지 않고 지방 사또가 참수형을 선고하는 것은 조선 법률 제도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드라마 속의 의주부윤은 그런 법제에 아랑곳없이 개성상인의 목을 베었다.

이 드라마도 이전 사극들과 마찬가지로, 금전과 물질을 추구하는 모습을 대부분의 일반 관료가 아닌 소수의 악질 관료들한테서 찾았다. 이렇게 '선비 출신 관료들은 물질을 추구할 수 없었지만, 소수의 일부 관료들만이 탐욕을 부렸다'는 인식이 사극을 지배하는 것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전통적 명제가 아직도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농공상' 하면 생산활동과 무관하게 서책을 들여다보는 선비 혹은 문서를 살펴보는 관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우리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많이 배운 사람이 옛날 사회를 지배했구나'라는 느낌을 갖기 쉽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틀린 느낌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에 지나치게 경도되다 보면 옛날 사회에 존재한 지배·피지배의 본질을 놓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근거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뉘는가'에 대한 당연한 상식을 놓칠 수밖에 없다.

출근하면 관료, 퇴근하면 '농업 경영인'

선비의 모습.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선비의 모습.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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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백성의 대부분은 선비·농민·공업기술자·상인으로 분류됐고 이 중에서 선비는 현실적 돈벌이를 떠나 나라를 다스리는 데만 전념했다는 이미지가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다. 이렇게 우리는 선비 출신 관료들이 돈벌이와 무관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공식적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선비 출신 관료들의 대부분은 노비를 동원해서 농토를 경작하는 지주였다. 농업경제 시대의 지주는 지금의 기업체 사장이나 임대용 빌딩의 소유자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의 돈줄을 공식적으로 쥐고 있었다.  

이 점은 지금 SBS에서 방영되는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는 정도전이나 정몽주를 비롯한 신진사대부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런 신진사대부들은 중소 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지주계급이었다.

신진사대부 집단은 대규모 부동산을 소유한 권문세족 집단과 싸워 정권을 획득했다. 그래서 신진사대부와 권문세족의 싸움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소 지주' 대 '대지주'의 싸움이었다. 두 그룹은 각종 정치적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런 대의명분 뒤에는 물질적 욕망도 숨어 있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신진사대부는 권문세족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인수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조선왕조를 창업했다. 

관료가 곧 지주였다는 점은 조선 시대 역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부터 조선 초기 사이에는 경기 지방 토지를 전·현직 관료에게 지급하는 과전법이 시행됐다. 그러다가 세조 때부터는 현직 관료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이 실시됐다. 그 뒤 성종 때부터는 토지 대신에 월급을 지급하는 관수관급제가 실시됐다. 

15세기 후반인 성종 때부터는 관료들이 월급을 받았지만, 그 이전의 관료들은 나라에서 받은 토지에 노비 출신 소작농들을 투입해 농업 경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종 이전의 관료들은 명확한 지주였다. 성종 이후의 관료들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월급을 받았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원래부터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성종 이후에도 관료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지주였다.

농업경제시대에는 지주가 사회의 지배자였다. 이들은 자기 시대의 최첨단 산업을 경영하는 기업인들이었다. 옛날 관료들은 지주를 겸했다. 이들은 출근하면 관료이지만 퇴근하면 농업 경영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머릿속으로 항상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노비 출신 소작농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금년 농업생산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이들의 머릿속을 떠날 수 없었다.

물론 관료가 된 지주들이 농업경영의 일선에 직접 나설 수는 없었다. 이들은 가족이나 최측근 노비에게 경영을 맡긴 뒤 그들을 통제했다. 그러다가 관직에서 물러나면 자신이 직접 농업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회사 경영을 다른 이에게 맡겼다가 재선에 실패한 뒤 기업 경영에 복귀하는 오늘날의 정치인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이처럼 선비 출신 관료들은 농업 경영인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돈벌이에 신경 쓰지 않는 선비', 조작된 이미지일 뿐

임금을 알현하는 관료의 모습. 다산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임금을 알현하는 관료의 모습. 다산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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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출신 관료들의 대부분이 지주였기 때문에, 관료들은 항상 물질 문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부정부패한 관료들만 물질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선비 출신 관료의 입장에서 볼 때, 농업 경영이 잘 안 되면 집안의 위세가 약해질 뿐만 아니라 중앙에서 자신의 위치도 흔들릴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물질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기업 지분을 보유한 국회의원이 다음 총선 자금을 만들기 위해 기업 경영에 신경을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개혁적인 왕이 소작농이나 서민을 위한 정책을 시도하려 할 때마다 관료들이 쌍수를 들고 반대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개혁을 반대하는 관료들은 서민 친화적 산업정책의 일차적 피해자인 지주들이었다.

이런 점을 본다면, 현실적 돈벌이와 무관하게 묘사되는 사극 속의 선비나 관료의 이미지는 실제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도출할 수 있다. 책이나 문서에만 파묻혀 지내지 않고 농업 경영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선비나 관료의 진짜 모습이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물론 농사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는 선비들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를 대신해서 농업을 책임질 가족이나 노비 측근을 믿고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선비 출신 관료들이 '사농공상의 제1계급인 우리는 돈벌이에 신경 쓰지 않고 나랏일이나 학문에만 신경을 쓴다'는 이미지를 조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현실적 돈벌이와 무관한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조작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자신들은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통치하는 계급인 것처럼 보여주면서, 자신들의 지배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층은 토지를 포함한 부동산에 대한 지배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한다. 많이 배운 사람이 사회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많이 가진 사람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선비 출신 관료들이 지배하던 옛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극에는 이런 지배·피지배의 본질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 사극에서는 학식이 높고 공부 잘하는 선비들이 나라를 지배한 모습만 나타날 뿐, 그들이 실제로는 노비와 토지를 보유한 지주계급이었다는 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과 가문의 경제적 축적에 항상 신경을 썼다는 점도 드러나지 않는다. 드라마 <객주>에 나온 개성유수나 의주부윤 같은 탐관오리들만이 금전과 물질에 신경을 썼던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장사의 신-객주 2015, #사농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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