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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1일 긴급조치 위헌 선고 당시 헌법재판소.
 2013년 3월 21일 긴급조치 위헌 선고 당시 헌법재판소.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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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2일 오전 10시 23분]

유신헌법, 대통령 긴급조치와 함께 독재체제를 떠받치던 '악법'이 다시 한 번 공식 사망선고를 받았다.

21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만장일치로 국가모독죄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가의 안전과 이익, 위신을 지키기 위해 정부 비판 등을 원천봉쇄한 국가모독죄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등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흔히 '국가원수모독죄'라 불리는 국가모독죄는 올해로 만들어진 지 꼭 40년이 됐다. 1975년 3월, 여당이던 공화당과 유정회는 형법 개정을 강행, 104조 2항을 신설했다. 내국인이 대한민국 또는 헌법기관을 비방하거나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이 법은 '대한민국 비방'을 해외에서 또는 외국인이나 외국 단체를 이용해 할 수 없도록 막고 있었다. 결국 박정희 정부의 문제점 등을 나라 밖으로 알릴 수 없도록 금지한 것과 다름없었다.

'독재 비판' 입막음한 그때 그 악법

양성우 시인은 이 국가모독죄로 처벌받은 사람 중 하나다. 1975년 12월, 그는 <노예수첩>이라는 장편 시를 완성했다. 유신체제를 살아가는 국민들을 노예에 빗대며 정부를 비판, 암암리에 퍼져나가던 이 시는 1977년 6월 일본 시사잡지 <세카이>에 정식으로 실린다. 검찰은 양 시인의 작품이 대한민국의 안전과 이익, 위신을 해쳤다며 국가모독죄와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1978년 9월 26일 그에게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확정판결을 선고했다.

이후 재심을 추진한 양성우 시인은 법원에 국가모독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재판부는 그의 신청을 받아들여 2013년 6월 13일 국가모독죄를 헌법재판소로 보낸다.

헌재는 2년여 동안 심리한 끝에 국가모독죄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첫 번째 이유는 입법 목적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헌재는 '국가의 안전과 이익, 위신 보전을 위해 대한민국과 헌법기관을 비방, 모욕하는 행위 등을 처벌한다'는 국가모독죄는 오히려 국민의 건전한 비판을 억제하고 반정부 인사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쓰일 여지가 있었다고 봤다. 같은 이유로 1987년 민주화 이듬해 국회가 이 조항을 폐지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국가모독죄가 보호하려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이익, 위신이란 개념 자체도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그 대상 역시 지나치게 광범위하기 때문에 결국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며 국가와 국가기관을 자유롭게 비판하지 못하도록 위축시킨다고도 판단했다. 또 "국가는 국민들을 대표하는 조직이므로 국민들은 자유로이 국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국민들의 비판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했다.

헌재는 국가모독죄로 국민의 표현을 제한하는 일이 국가의 안전이나 이익 등을 지키는 것보다 이익도 적다고 봤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갖는 가치에 비춰볼 때, 기본권 제한 정도는 매우 중대하다"는 얘기였다. 결국 국가모독죄는 헌법에 어긋나는 악법이라는 것이 재판관 9명 전원의 결론이었다.

"청와대, 헌재 선고 계기로 반성해야"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연히 나와야 할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민주국가라면 누구든지 국가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설령 그 정도가 심해도 국가는 그것을 감내해야 한다"며 "어떻게 보면 헌재 판단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국가모독죄는 사라졌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 명예훼손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두고 의혹을 제기, 법정에 선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과 박래군 4·16연대 상임위원이 대표 사례다.

한 교수는 "헌재 선고를 계기로 청와대부터 여태까지 일을 반성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국가모독죄가 폐지된 데 이어 위헌 결정까지 나온 만큼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는 일 좀 안 했으면 좋겠다"며 "국가나 국가권력 담당자를 비판하는 데에는 폭넓게 문을 열어두고, 국민들의 입을 막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태그:#국가모독죄, #헌법재판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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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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