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혼자 '한 달 네팔여행'을 다녀왔다. 10박 11일 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올랐고, 어떤 날은 할 일 없이 골목을 서성였다. 바쁘게 다니는 여행 대신 느리게 쉬는 여행을 택했다. 쉼을 얻고 돌아온 여행이었지만, 그 끝은 슬펐다. 한국에 돌아오고 2주 뒤 네팔은 지진의 슬픔에 잠겼다. 그래도 네팔이 살면서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임에는 변함이 없다. 30일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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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푸르나 산맥의 베란다'인 포카라에서는 어디에서나 설산을 쉽게 볼 수 있다. |
| ⓒ 박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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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심했다.
"밥 먹었어요?"게스트하우스 주인 부부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한국말로 물었다. '한국 사람이 많이 찾는 데라 그런지 한국식 인사도 잘 하시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네 밥 먹었어요" 혹은 "이제 먹으러 가요"라고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한국에서처럼 되물었다. "밥 먹었어요?".
부부에게서 묘한 표정과 함께 뜨뜻미지근한 대답이 돌아올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내가 둔했다. 그게 '밥은 먹고 다니냐'는 인사가 아님을 알아챈 건 그날 오후였다. 분명 아침에 만났을 때 아저씨가 "밥 먹었냐"고 물어봤는데, 오후에도 어김없이 "밥 먹었냐"고 또 묻는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거 아닌가. 뭔가 이상하다 싶었고 곧 그 질문의 참 뜻을 알아차렸다. 그냥 로비인 줄 알았던 1층 테이블 한켠에 서양 여행객이 앉아 스프를 먹고 있었던 것.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니 비로소 글자가 보인다. '레.스.토.랑'.
주인 부부의 "밥 먹었냐"는 말은 "안 먹었으면 우리 숙소 레스토랑에서 먹어"라는 말이었다. 거기에다 대고 "당신들도 밥 먹었냐"고 대꾸했으니... 말귀 못 알아듣는 나를 보며 얼마나 답답했을까.
포카라 멋쟁이와 나이 든 여행자가 함께 먹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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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포카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빵집. 여행객과 현지인들이 어울려 아침을 먹고 있다. |
| ⓒ 박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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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내가 아침마다 숙소 식당 대신 찾아간 곳은, 포카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허름한 빵집이었다.
문이 따로 없는, 한쪽 벽이 뻥 뚫린 시원한 뷰에 주민과 관광객이 어울린 풍경. '포카라 멋쟁이'의 상징인 가죽자켓을 입고 오토바이 헬멧을 한 손에 든 동네 청년도, 차분히 앉아 메모를 써 내려가는 머리가 희끗한 여행자도 모두 헤진 꽃무늬 의자에 앉아 아침을 해결했다.
왼손으로 휘휘 파리를 쫓으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으면 동네 꼬마 하나가 뛰어 들어와 비닐봉지에 빵을 사서 담아갔다. 재미있는 풍경을 가진 이 가게의 또 다른 매력은 착한 가격이었다. 매일 아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곳으로 부지런히 달려온 이유이기도 했다.
네팔은 1인당 GDP가 699달러(2014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의 경우 체감하는 물가가 많이 다르다. 포카라는 특히 그랬다. 스테이크와 콜라 한 잔이 610루피(한화 6700원), 페와 호숫가에 앉아 먹는 찌아(밀크티)는 100루피(한화 1100원), 볶음밥에 찌아 한 잔이 400루피(한화 4400원) 가량이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그리 비싸지 않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 식당에서 마시는 맥주는 300루피(한화 3300원)를 호가했다. 더 놀라운 건 서비스 차지와 부가세가 최고 23프로까지 붙기도 한다는 점. 10프로도 13프로도 아닌 '23프로'다.
페와 호수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이 여행객 보트에 동승해 1시간 노를 젓고 받는 돈이 60루피(한화 660원)이니 1시간 일하고도 차 한 잔 못 사먹는 수준인 셈이다. '여행자 물가'와 비교해봐도 그렇다.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는 내 방이 하루에 600루피(한화 6600원)인데 맥주 한 병이 그 절반값이다.
'숙소 빼고 다 비싸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상황이 이러니 나처럼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은 식욕에만 충실했다간 과다 지출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단돈 2천 원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동네 어디에서나 설산이... '안나푸르나 산맥의 베란다' 포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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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를 들면 보이는 설산. 페와 호수 산책로 뒤로 안나푸르나 산맥의 설산들이 보인다. |
| ⓒ 박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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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도 배도 든든한 아침을 먹고 나와, 포카라 거리를 걸었다. 언제 쌀쌀했냐는 듯 뜨거운 햇살이 어깨 위로 쏟아져 내린다.
포카라를 찾는 관광객 중 상당수는 나처럼 트레킹을 위해 네팔에 온 이들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아래 ABC 트레킹)과 푼힐 트레킹의 시작점인 나야풀이 포카라에서 가깝기 때문. 포카라가 ABC 트레킹을 준비한 이들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셈이다.
꼭 트레킹이 아니더라도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페와 호수와 설산을 보며 시간을 보내거나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등을 하는 이들도 많다. 카트만두에 '세계문화유산'이란 매력이 있다면 포카라에는 '트레킹'과 '페와 호수' 그리고 '설산'이 있다.
'히말라야가 세계의 지붕이라면,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산맥의 줄기 아래로 뻗어 나온 정면 베란다의 1등석이라고 할 수 있다.' - <론리 플래닛 네팔>'안나푸르나 산맥의 베란다'인 만큼 포카라 어디에서나 7천미터급 설산이 보인다. 아침을 먹고 나와 걷는 길 끝에도 설산이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래서 이곳의 일출 또한 특별하다. 이른 아침, 붉은 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하얀 설산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든다. 말 그대로 '그림같은 풍경'.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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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카라 페와 호숫가에 앉아 있는 부자. 8년 전엔 상상도 못했을 놀이기구가 그 뒤로 보인다. |
| ⓒ 박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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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와 호수를 왼편에 두고 한참을 걸었다.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양쪽으로 늘어선 길이 이어졌다. 하나 건너 하나 있는 트레킹 숍 처마엔 색색의 침낭이 걸려있다. 낡았지만 완연한 여행자의 도시. 5년 전까지만 해도 포카라에 다람쥐가 살았다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8년 전엔 페와 호숫가 쪽이 온통 풀밭이었어. 거기에서 소들 풀 먹이고 그랬는데... 사진 보니까 엄청 많이 변했네.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메신저로 내가 보낸 사진을 받은 친구는 8년 전 이곳의 사진을 보내왔다. 초록 풀빛이 가득한 '낯선' 모습. 사진과 달리 2015년도의 포카라는 '공사 중'이었다. 날이 갈수록 많은 관광객들이 도시를 찾았고, 더 많은 숙소와 음식점, 가게가 필요했다. 숙소 옥상, 아침을 먹은 카페, 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공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요즘 인도도 8년 전이랑 완전 다르대. 에어컨은 기본이고, 와이파이 안 터지는 데가 없다더라."지금은 흙길이 된 페와 호숫가를 천천히 거닐었다. 해피아워(맥주 등을 할인해 파는 시간)라고 가게마다 홍보가 한창이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말끔하게 빼입고 내게 손짓하는 레스토랑 직원을 지나 허름하고 편안해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가방도 없이 헐렁한 면바지에 티셔츠만 걸친 여행자들이 지나간다. 바닥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고,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파는 여행자들도 보인다. 그 옆에선 동네 꼬마들의 흙장난이 한창이다.
서두르는 이 하나 없는, 평온한 모습을 보고 있는데 주문한 모히토 한 잔이 나왔다. 메뉴에 없는데 혹시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금방 만들어주겠다"며 웃던 순박한 청년. "한국 여행자들은 내 친구"라던 그가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만들어준 한 잔이 달콤 시원하다. 오늘은 6시부터 정전이라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데,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몇 년 뒤면 이 역시 사진으로만 기억될 모습. 이렇게 게으른 하루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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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 전인 2007년 페와 호숫가의 모습. 푸른 들판에서 소들이 풀을 뜯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 ⓒ 이정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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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정보>- 일출을 볼 땐 꼭 한눈을 팔자 : 포카라에선 일출 때 해만 뚫어져라 보면 절~대 안된다. 황금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설산을 보는 게 진짜 묘미. 해 말고 산을 보자.- 요일마다 다른 '정전 시간' : 전기 공급 사정이 좋지 않은 네팔은 카트만두, 포카라 같은 대도시에서도 정전 시간이 있다. 요일마다 달라지니 미리 체크해놓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