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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앞에 호텔을 차린 반올림들(농성 2일차)
 서초동 삼성전자 빌딩 앞에 호텔을 차린 반올림들(농성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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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 7일부터 강남역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삼성반도체 직업병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매일 24시간 이어 말하기(노숙농성)'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5월,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은 "직원들이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고, 그중 일부는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다. 그분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우리가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조정위원회)에서 보상 기준과 대상 등 필요한 내용을 정하면 그에 따르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 후 1년이 넘게 지났지만, 삼성은 사회적인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크게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정위원회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권고안'도 제출하였으나 삼성은 이런 권고를 무시, 독단적으로 '보상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삼성 반도체·LCD 직업병 피해자들과 반올림은 ▲ 삼성은 교섭을 파기하고 일방적 보상절차를 강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 ▲ 삼성은 조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에 성실히 임하라 ▲ 삼성은 무성의·무책임·무능력한 태도로 일관하는 교섭단을 즉각 교체하라 ▲ 삼성은 배제 없는 보상·내용 있는 사과·실효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 등. 네 가지 구체적 요구를 하고 노숙농성을 진행 중입니다. 하루하루 반올림 농성의 모습을 <강남일기>로 연재합니다.

삼성전자 사옥이 있는 강남역 8번 출구 앞, 그 길바닥에서 노숙을 시작한 지 14일이나 지났습니다.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게 사실 상상이 안 갔는데, 어느덧 2주일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뚱뚱한 겨울용 침낭을 피고 개는 것이 익숙해지기까지 했습니다.

2주 전 주말에는 비까지 내렸는데, 여러 가지 물품이 비에 젖지 않게 보호하고 노숙하는 이들이 비를 피할 수 있게 준비한 대형 김장 비닐도 척척 펼쳐 제법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차린 '5성급 호텔 농성장'

 농성 3일차 밤에는 비가 와서 천막을 쳤다.
 농성 3일차 밤에는 비가 와서 천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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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이 공간을 '강남역 8번 출구 앞 5성급 호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5성급 호텔들이 기분 나빠 할 얘기일지 모르겠으나, 땅값 비싼 강남역 앞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삼성 사옥 앞의 이 농성장을 우리는 재미 삼아, 위안 삼아 '5성급 호텔'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반올림을 응원하러 이곳에 모이는 많은 방문자도 '5성급 호텔 숙박자'라고 호칭합니다. 사실 이 표현은 삼성 백혈병 사망노동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직업병 피해 해결 교섭단 대표)씨의 표현을 빌린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에 호텔을 차렸습니다. 아스팔트를 침대 삼고 하늘을 이불 삼으니 5성급 호텔이 따로 없습니다. 삼성 직업병 문제 8년, 삼성의 꼼수에도 이젠 질렸습니다. 피해자들을 우롱하고, 몇 푼 돈으로만 고통을 환산하려는 삼성에 맞서 우리는 싸웁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사망자 故 황유미씨 부친 황상기씨

이 길바닥에서 반올림과 여러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은 노숙농성을 이어가며, 삼성이 반도체·LCD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역시 많이 알리려고 농성장 주변에는 여러 게시물을 만들어 걸었습니다. 삼성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소개 피켓부터 시작해, 아파서 투병 중인 노동자들의 현황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퇴근 시간 오후 6시에 맞춰 매일 저녁 작은 토크쇼 '삼성 직업병 피해 이어 말하기'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삼성 반도체·LCD 피해자 1인과 여러 분야의 사회 인사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입니다.

많은 피해자 분들이 거의 매일 1명 이상 씩 찾아와 주셨고, 말할 수록 눈물 나는 사연들을 용기 있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중 한 분, 매일 24시간 이어 말하기(노숙농성) 7일차(10월 12일)에 이어 말하기 초대손님으로 나오신 분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농성장 주변에 설치된 피켓들. 삼성반도체·LCD 피해자 제보만 221건, 사망자만 해도 74명이나 된다.
 농성장 주변에 설치된 피켓들. 삼성반도체·LCD 피해자 제보만 221건, 사망자만 해도 74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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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삼성

 연신 눈물을 훔치는 故 조은주(92년생)님의 어머니. 조은주 님은 삼성LCD사업장에서 일한지 5개월 만에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2015년 2월 사망했다.
 연신 눈물을 훔치는 故 조은주(92년생)님의 어머니. 조은주 님은 삼성LCD사업장에서 일한지 5개월 만에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2015년 2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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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울산에서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올라오신 김경희씨는 올해 2월, 24살(92년생) 딸 조은주씨를 저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고 조은주씨는 삼성전자 탕정사업장에서 대형 LCD TV 불량검사를 하는 일을 했습니다.

입사 후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던 중, 입사한 지 3년 차에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조은주씨는 2015년 2월 결국 사망했습니다. 직업병으로 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도 안 된 어머니 김경희씨는 마이크를 잡은 채 20여 분을 말을 잇지 못하다 겨우겨우 딸의 생전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괜히 삼성에 보냈어요. 거기만 안 갔어도 아직 살아있을 건데... 은주는 남매 중 막내로 삼성을 염두에 두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한 딸이었어요. 너무너무 예쁜 아이였는데... 지나가는 또래 아이들만 봐도 내 딸의 죽음이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은주가 고1 때 삼성에서 학교로 나와 연봉이 3천만 원이라고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그 날 학교를 다녀와 삼성에 들어가겠다고 얘기하더니 3학년이 돼서 삼성에 합격했어요. 대학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지만 삼성이라고 하니 내심 기쁜 마음도 있었습니다. 입사한 지 2년쯤 지나 몸이 안 좋았고, 3년 후 더 일을 할 수 없어 대학병원에 갔더니 혈액암이라고 합니다. 그때야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영화를 통해 황유미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는 22살 생각지도 못한 병에 걸려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삼성의 태도가 8년 전과 비교하여 크게 바뀐 것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고 황유미씨의 죽음으로부터 삼성 직업병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진 지 8년이 지났고, 지난 2014년 5월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까지 나와서 이 문제를 인정하는 공식발언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직업병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비상식적이었습니다.

"가족 중 혈액암이 없고 혹시 직업병이 아닐까 해서 산재 신청을 하려고 했어요. 예전에 은주가 같은 회사에 자기보다 어린 친구도 갑상선암에 걸렸다는 얘기도 했었어요. 갑상선암은 흔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죠. 근데, 내 딸이 가족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혈액암에 걸렸다고 하니 직업병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삼성에서 찾아와서 '직업병이면 일하는 사람들 모두 병에 걸려야지 왜 은주씨만 걸리겠느냐, 그건 개인이 몸이 약해 병에 걸린 거다'라고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사회적 대화 약속을 지켜라'가 적힌 현수막.
 '삼성전자는 사회적 대화 약속을 지켜라'가 적힌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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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유미씨와 부친 황상기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보면, 반도체 업체에 다니다 급성백혈병으로 딸을 떠나 보낸 가족에게 기업 쪽 사람들이 와서 매몰차게 굴던 장면이 있습니다. 2015년 현재, 조은주씨의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도 이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유가족이) '직업병 피해 문제를 성심성의껏 해결하겠다'고 말한 삼성의 말을 믿지 않는 구체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주변에서 '삼성에서 보상해 준다는데 은주도 포함되느냐'고 물어와요. 근데 저는 삼성이 보상해준다고 말로만 하면서 '좋은 기업 이미지'만 심어놓는 것 같아요. 무슨 기준으로 보상한다는 건지 뒤로만 얘기하고... 돈없는 사람들 우롱하는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애들 돈으로 유혹해서 데려가 놓고, 안 좋은 환경에서 머리 끝까지 덮는 방진복 입히고 일시키다가 죽게 하지 말고... 삼성은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알고 있는데 그 돈으로 사람이 (안 아프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김경희씨는 마지막으로 삼성에게 요구하고 싶은 바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삼성전자 빌딩 앞을 찾아오는 많은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라!", "다시는 나같은(우리 자식같은) 피해자가 안 생기길 바란다!" 이와같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삼성이 귀를 기울이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반도체·LCD 직업병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기를 농성 13일차, 오늘도 간절히 바라 봅니다.

(관련 기사 :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하는 사람들, 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정하나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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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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