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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여행지만큼 책이 사랑받는 공간도 또 없는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독서인구가 줄었다며 사시사철 책 위기론이 제기되는 요즘이지만 여행지에서만큼은 아직도 책이 널리 읽히기 때문이다. 기차역과 터미널, 공항 등을 가보면 어딘가 꼭 한 귀퉁이엔 서점이 들어서 있다. 기차나 비행기를 타도 책을 펼쳐든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던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터미널과 기차역, 공항 등지에 위치한 서점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로 손꼽히는 작가다.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술술 잘 읽히는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 팽팽한 긴장감을 특징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작가다. 1985년 <방과후>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20편이 훌쩍 넘는 작품을 발표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가운데 상당수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도 이러한 특징 때문일 것이다.

<가면산장 살인사건> 책 표지
 <가면산장 살인사건> 책 표지
ⓒ 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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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산장 살인사건>은 1990년 12월 하순, 일본의 도쿠마 노벨스에서 출간된 작품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정해진 인물이 등장해 의도치 않은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전통적인 추리물이다. 그러나 종막에 배치된 대반전으로 독자를 충격에 빠뜨려 당시로선 파격적인 작품이란 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출간된 이래 꾸준히 팔린 작품으로 두세 시간 동안 잡고 읽기에 그만이라 터미널 등지에서 더욱 인기가 높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동차 사고로 약혼녀 도모미를 잃은 사내 가시마 다카유키다. 도모미가 죽은 지 몇 달이 흘러 다카유키는 도모미의 아버지로부터 별장에서 함께 휴가를 보내자는 제안을 받고 이곳을 방문한다. 여기에는 다카유키 외에도 도모미의 가족과 친구 등 모두 여덟 명의 남녀가 모인다. 그런데 첫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이 도모미의 죽음에 의문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이유 모를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경찰에 쫓기는 2인조 은행강도가 별장에 침입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다카유키를 비롯한 여덟 명의 남녀는 은행강도의 인질이 되어 별장에 감금되는 신세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범인을 찾기 위한 추리극이 시작된다.

추리소설을 많이 접한 이라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바이겠지만 소설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별장에 침입한 강도들로부터 주인공들이 어떻게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몇 달 전 사망한 도모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소설은 두 가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을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을 통해 연결 짓고 독자들로 하여금 숨 가쁘게 전개되는 흐름 속에서 작가보다 더 먼저 트릭을 풀어낼 것을 요구한다.

하여 이 소설은 이야기가 종막에 도달하기 전 결말을 예상한 독자와 그렇지 못한 독자의 감상이 크게 갈리고 말 운명이다. 종막에 배치된 반전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구성 때문이다. 깔끔한 반전 덕택에 끝 맛 역시 개운하지만 수준 높은 트릭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의외의 반전이 주는 충격을 최대의 무기로 삼고 있는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럼에도 소설은 잘 쓰인 작품이다. 제한된 공간, 제한된 인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잘 준비된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매끄러워 추리소설로선 흔치 않게 뒷맛이 깔끔하다. 폭풍우나 눈보라 등 천재지변으로 고립된 게 아니라 은행강도의 침입에 의해 고립된다는 설정도 특별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종종 활용하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과 철저히 의도된 장치에 의존하는 추리물이라는 점이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장르적 장점이 더욱 선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잘 쓰였다는 건 반전이 너무 쉽게 드러나지도 그렇다고 너무 꽁꽁 감춰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수준으로 잠복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독자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며 누가 범인인지를 쉽사리 예상할 수 없도록, 하지만 끝까지 독자 나름의 추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적절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한다.

바로 이것이 이 같은 장르에서 작가가 갖춰야 할 주요한 미덕이며 히가시노 게이고는 절묘하게 줄을 타는 광대처럼 때로 카드를 내보이고 때로는 감추며 독자와의 대결에서 종막까지 주도권을 놓지 않는다.

이밖에도 속도감 있는 전개와 흥미진진한 곁가지 사건들, 적절한 시점에서 등장하는 상황전환 등 여러모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점이 잘 녹아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캐릭터의 내면에 대한 풍부한 묘사,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복잡한 트릭, 머리를 쾅 하고 내리치는듯한 충격적 반전 등은 애초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장점이 아니기에 큰 기대는 버리는 편이 낫겠다.

가면산장에서의 살인은 왜 일어났을까?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제목에 힌트가 있다. 술술 잘 읽히는 추리소설 한 권을 읽고 싶다면 썩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가면산장 살인사건>(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09. / 1만 4800원)



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2014)


태그:#가면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김난주, #재인,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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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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