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표정의 슈틸리케 감독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에서 자메이카에 승리한 한국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 후 환한 표정으로 코치진과 인사하고 있다.

▲ 환한 표정의 슈틸리케 감독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에서 자메이카에 승리한 한국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 후 환한 표정으로 코치진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누가 주전이고 누가 벤치였느냐는 구분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믿고 내보낸 선수마다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슈틸리케호가 개개인이 아닌 진정한 '팀'으로서 더 강해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하루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13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초청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자메이카와의 평가전에서 지동원-기성용-황의조의 연속골에 힘입어 3-0 완승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취임 1주년 기념 경기이자 월드컵 예선이었던 쿠웨이트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하여 치르는 자메이카전은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심지어 예상대로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쿠웨이트전 선발 선수와 비교하여 이날 9명을 바꿨다. 아무래도 쿠웨이트전에 비하면 2진이라는 인상이 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굳이 1·2진의 구분에 의미를 두지 않고 오직 '하나의 팀'이라는 일체감을 강조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이유 있는 자신감은 자메이카전의 훌륭한 경기력을 통하여 그대로 증명됐다.

환한 표정의 한국대표팀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에서 자메이카에 승리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 후 환호하고 있다.

▲ 환한 표정의 한국대표팀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에서 자메이카에 승리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 후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피파순위 57위이자 북중미 골드컵 준우승팀 자메이카는 한국이 2차 예선에서 상대한 쿠웨이트(128위)나 다른 중동팀들보다 결코 떨어지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팀을 맞이하여 한국은 완전히 새로운 라인업을 들고 나왔음에도 공수 양면에서 압도적인 내용을 선보였다. 이날 활약한 선수들이 단지 주전들의 자리를 대체하는 후보 멤버가 아니라 언제든지 1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선의의 경쟁자'임을 보여준 대목이다.

특히 이날의 최대 수확은 역시 지동원의 부활을 꼽을 수 있다. 지동원은 이날 선제 결승 골을 포함하여 팀이 터뜨린 3골에 모두 관여했다. 지동원이 A매치에서 마지막 득점을 올린 것이 2011년 9월(레바논전)이었으니 무려 4년 만이다.

지동원은 그동안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골 맛을 본 지도 오래됐다. 슈틸리케호에는 지난 3월 우즈벡-뉴질랜드 2연전에서 한 차례 발탁되었으나 역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 장기간 골 침묵에 시달리고 있는 지동원의 발탁은 꾸준한 활약을 중시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원칙과 비교할 때 드물게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이날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왼쪽 미드필더로 출전한 지동원은 부담을 던 듯 오랜만에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활약을 선보였다.

지동원은 측면과 중앙을 부지런히 넘나들며 공격을 이끌었다. 상황에 따라 과감하게 문전을 파고들어 슈팅을 노리거나, 혹은 안팎으로 부지런히 상대를 유인하며 아군이 침투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등 영리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한동안 지적받던 소극적인 움직임과 무색무취한 플레이는 간 곳 없었다. 자메이카전은 그야말로 지동원의 A대표팀 경력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한 인생경기였다.

황의조 역시 이날 A매치 3경기 만에 데뷔 골을 신고했다. 사실상 지동원과의 합작품이었다. 후반 18분, 지동원이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 슈팅을 날렸으나 1차로 자메이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하지만 오른쪽에서 쇄도하여 리바운드 볼을 잡아낸 황의조가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침착하게 골문 구석으로 이 공을 차 넣었다. 이날의 세 번째 골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K리그 클래식에서 13골로 득점왕 경쟁을 벌일 만한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 골이었다.

이쯤 되면 슈틸리케 감독은 그야말로 '미다스의 손'이 따로 없다. 신기할 정도로 그가 발탁한 선수마다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붙은 별명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찍으면 A매치 경험이 거의 없던 선수들은 스타로 탄생하고, 부진하던 선수들도 부활한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A매치에 데뷔하거나 골까지 넣은 선수들만 벌써 이정협-장현수-이종호-김승대-권창훈-황의조-이재성-석현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전 대표팀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김진현-곽태휘-지동원 같은 선수들까지 유독 슈틸리케호에 오면 화려하게 비상하는 모습은, 선수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도 아는 슈틸리케 감독의 실용적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장면이다.

폭넓은 선수층 확보, A매치 11연속 무패로 이어지다

기성용의 젖병 세리모니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 대 자메이카 경기에서 한국의 두번째 득점에 성공한 기성용이 젖병 세리모니를 펼치고 있다.

▲ 기성용의 젖병 세리모니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 한국 대 자메이카 경기에서 한국의 두번째 득점에 성공한 기성용이 젖병 세리모니를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월드컵 2차 예선 4연승에 이어, 자칫 심심한 평가전이 될 수도 있었던 자메이카전을 통하여 슈틸리케 감독은 승리 못지않게 '폭넓은 선수층'이라는 수확까지 챙겼다.

최근 슈틸리케호의 주전 원톱으로 떠오른 석현준에 이어, 최전방과 2선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지동원과 황의조의 활약은, 이번 대표팀에서 결장한 손흥민-이청용-이정협의 공백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했다. 그동안 공격자원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던 슈틸리케호로서는 기존 선수들이 부상에서 복귀하면 훨씬 폭넓은 선수운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미드필드와 수비 진용 역시 마찬가지다. 수비진은 오랜만에 주전 장갑을 낀 정성룡과 매 경기 변화가 많았던 수비 라인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무려 5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쿠웨이트전 선발 포백이던 장현수-김영권-곽태휘-박주호와 자메이카전 김진수-홍정호-김기희-김창수 조합의 안정감 차이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다만 정성룡이 후반 초반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트래핑 실수로 인한 실점 위기를 맞이할 뻔한 장면은 아쉬움을 남겼다.

미드필드에서는 '기성용 시프트'가 두드러졌다. 이번 자메이카전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기성용은 본래 포지션이던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처진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역할을 소화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번 경기에서 공들인 또 하나의 실험 포인트였다.

기성용의 공격적 재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바 있다. 더블 볼란치(이중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기존 기성용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었던 정우영과 한국영 조합의 가능성도 이를 뒷받침했다. 이들 역시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 정우영이 후방에서 볼을 배급하고 한국영이 전방으로 침투하여 공격을 지원하는 등, 고정된 역할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임무를 소화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줬다.

후반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대표팀의 전술적 압박이 다소 느슨해졌고 선수들이 개인 욕심을 앞세운 플레이가 나오기 시작한 장면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결국 큰 고비 없이 대승을 거뒀기에 그 정도는 용납될 수 있을 만큼의 '옥에 티'였다.

이로써 슈틸리케호는 출범 1년 동안 22차례 공식 경기에서 16승 3무 3패, 승률 72.7%의 눈부신 호성적을 거두며 1주년을 성공적으로 자축했다. 2015년만 놓고 보면 14승 3무 1패. 최근 A매치 11경기 연속(8승 3무) 무패행진이다. 원칙과 소신을 바탕으로 한 감독의 뚝심 있는 리더십, 주전과 벤치의 구분 없이 모든 선수가 하나의 팀으로 녹아들면서 이뤄낸 성과다. 점점 진화하는 '팀 슈틸리케'의 성장이 곧 한국축구의 밝은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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