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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2일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미시경제학자인 디턴 교수는 <21세기 자본>을 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대척점에 있는 '성장론자'로 알려져 있으며, 국내 언론에서도 앞다퉈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디턴 교수의 연구가 인정받았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역시 프린스턴대에서 미시경제학을 전공한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이같은 언론 해석을 비판하는 글을 13일 자신의 홈페이지(www.jkl123.com)에 올렸습니다. 이준구 교수의 양해를 얻어 <오마이뉴스>에 옮겨 싣습니다. [편집자말]
내 모교인 프린스턴대의 앵거스 디턴(A. Deaton) 교수가 올해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반갑기는 합니다. 솔직히 말해 약간 의외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요.

그 정도 컬리버('스펙'과 비슷한 개념- 편집자 주)의 경제학자들은 전 세계에 상당히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기야 이제 거물들 모두 상주고 나니 장삼이사(張三李四)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상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합니다만. 최근 몇 년 동안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면면을 보면 "왜 쟤만 주고 난 안 주지?"라는 불만을 갖는 경제학자가 한둘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고 계시는 분도 있겠지만, 디턴 교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이의를 제기하는 성격의 책을 저술한 바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였다고 믿고 싶지만, 만약 이것이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마음을 움직인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면 입맛이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 '피케티 열풍'에 딴지?

노벨경제학상, '소비·빈곤 연구' 앵거스 디턴 교수
 노벨경제학상, '소비·빈곤 연구' 앵거스 디턴 교수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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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약간 편파적이라 할 만큼 보수적 경제학들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시카고 대학과 연관을 갖는 경제학자들이 줄줄이 수상을 한 실적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세계를 휩쓰는 피케티 열풍이 못마땅하게 생각되는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성향이 어느 정도 작용을 했을 거라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디턴 교수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보면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디턴 교수의 '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국내 번역서: <위대한 탈출: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라는 책에서 바로 이런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의미에서 말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려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디턴 교수가 정확하게 그런 표현을 써서 불평등성을 두둔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어떤 실증적 근거 위에서 그런 주장을 했든간에, 불평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것은 너무 과장된 주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든 경제 발전의 초기에는 블평등성이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랬고, 지금 개발이 가속되고 있는 중국과 인도도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성장과 불평등성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습니다.

성장의 가속화와 불평등성의 심화가 동시에 관찰된다 해서 불평등성이 성장의 동력이라는 결론이 당연히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설득력 있는 해석은 성장의 초기 단계에서 불평등성의 심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평등' 심화는 성장 초기 단계... 성숙된 경제에선 의미 잃어

성장의 초기 단계에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올 만한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평등성으로 인해 성장이 가속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설사 디턴이 정말로 그런 주장을 했다 해도 그것을 현실에 적용할 때는 극도의 조심을 요하는 일입니다. 백보를 양보해 불평등성이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장의 초기 단계에 국한해서 성립될 수 있는 명제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즉 성장의 초기 단계를 지난 성숙된 경제에서는 디턴의 명제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는 말입니다.

개발 경제학에는 "쿠즈네츠 가설"(Kuznets hypothesis)이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습니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처음에는 불평등이 심화되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평등화로의 반전이 시작된다는 내용의 이론입니다. 디턴의 주장도 이 쿠즈네츠 가설과 맥을 함께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서유럽, 일본, 우리나라 같은 성숙된 경제에서는 쿠즈네츠 가설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 불평등성과 성장 사이의 관계는 각 나라가 어떤 정책 기조를 채택하느냐에 따라 천양지판의 차이를 가질 뿐, 쿠즈네츠가 말할 것 같은 일반적 경향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단계에 있는 다른 나라보다 미국의 불평등성 심화가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혹시나 디턴 교수의 주장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하려는 바보 같은 사람이 나올까봐 미리 못을 박으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일부 보수 계층에서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나서는 친구들이 나올 게 분명합니다. 누가 어느 말로 선동을 하든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런 허황된 주장에 휘둘리지 말기 바랍니다.

내가 늘 지적하는 바지만, 최근 연구의 동향은 성장과 평등성이 동반 관계에 있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즉 분배가 상대적으로 더 평등한 경제가 성장도 상대적으로 더 빠른 경향을 보인다는 것으로 말입니다. 디턴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이 진실이 뒤집혀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사진은 지난 2월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사진은 지난 2월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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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벨 경제학상, #앵거스 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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