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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판결 기사, 법조계 소식. 하지만 흥미 위주의 기사로는 내막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신 법조계 소식을 쉽게 정리해서 소개합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 법률, 법원·검찰 관련 소식 등 누구나 알아야 할 법률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간추려서 단번에 한 주간 법조계 소식>, 줄여서 <간단한 법>이 법을 보는 올바른 눈을 갖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 기자 말

<간단한 법> 아홉 번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① 국정원, 비밀누설 혐의로 전직 수장 고발하다 
② 며느리 몰래 손녀 미국 보낸 할머니, 납치일까
③ "야한 화상 채팅할래요?" 몸캠 피싱 피해 남성 수백 명
④ 여고생 껴안으려다 비명에 멈췄다면 유죄, 무죄?

① 국정원, 비밀누설 혐의로 전직 수장 고발하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아시아와 유럽, 평화를 향한 동맹'을 주제로 열린 '10.4남북정상선언 8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아시아와 유럽, 평화를 향한 동맹'을 주제로 열린 '10.4남북정상선언 8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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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이례적으로 전직 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 대상은 최근 '남북 정상 간 핫라인' 발언으로 주목을 받은 김만복 전 국정원장. 그는 지난 2일 노무현 재단 주최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 국제심포지엄'과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남북 간에 상시 핫라인이 있었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김 전 원장은 최근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비화를 담은 책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 - 10·4 남북정상선언>을 냈다. 이 책에도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2007년 서울을 극비리에 방문,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국정원은 지난 6일 김 전 원장의 최근 발언과 책 내용이 '공무원의 직무상 비밀 누설 금지를 어겼다'면서 형법과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사건을 공안1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국정원은 책에 대해서도 판매금지 임시처분 신청을 냈다. 국가정보원 직원법에 따르면 퇴직한 직원도 직무상 비밀을 공개하기 위해선 국정원장의 사전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이 책은 사전허가를 얻지 않았다는 것이 국정원의 주장이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50민사부 심리로 열린 1차 심문기일에서 김 전 원장은 "책에 쓴 내용은 대부분 공개된 사실"이라며 비밀누설을 부인했다. 2차 기일은 16일 열린다.    

김 전 원장의 언행이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7년 말 극비리에 방북한 뒤, 방북 대화록과 경위 등이 담긴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2008년 검찰에서 입건유예 처분을 받았다. 2011년엔 일본 잡지에 남북 정상회담 관련 내용을 기고한 것이 밝혀져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모두 기소는 되지 않았지만,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책 서문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여론은 그의 최근 행보에 대해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석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남북정상회담의 내막에 대해 알고 있는 그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여하겠다면 말릴 까닭이 없다. 하지만 최고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재직 중 알게 된 고급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공개한다면 용납하기 어렵다.

② 며느리 몰래 손녀 미국 보낸 할머니, 납치일까

"이혼 소송 중인 며느리 몰래 손녀를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이 할머니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이혼 소송 중인 며느리 몰래 손녀를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이 할머니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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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가 손녀 납치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혼 소송 중인 며느리 몰래 손녀를 미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이 할머니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A(59)씨는 몇 년 전부터 남편과 함께 어린 손녀 B양을 돌보았다. 외국에 자주 나가는 아들 C씨와 며느리 D씨가 B양을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 부부는 갈등이 생기면서 2014년 이혼소송을 하게 됐다. 당시 5살이던 B양은 엄마인 D씨와 외가 쪽에서 임시로 돌보고 있었다.

미국에 있던 C씨는 어머니 A씨에게 "외가에 알리지 말고 B양을 미국으로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A씨는 D씨에게 "손녀와 밥을 먹고 곧 데려다 주겠다"고 말한 뒤 B양을 미국으로 보내버렸다. 이에 D씨는 시어머니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검찰은 A씨를 납치(정식 죄명은 '국외이송약취') 혐의로 법원에 넘겼다. 재판에서 쟁점은 2가지로 모였다. ① 미성년자를 보호·감독하는 사람도 약취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② 강압이나 폭력이 없이도 약취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

①은 '그렇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앞서 2년 전 대법원도 "미성년자 보호감독자라도 다른 보호감독자의 보호양육권을 침해하거나 권한을 남용할 때는 미성년자 약취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판시한 적이 있다.

②에 대해 법원은 약취가 성립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있거나 그 정도로 평가될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결론은 납치가 아니다. A씨가 B양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가했다는 증거가 없고, 불법적인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B양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점과 이혼소송 결과 B양을 C씨가 양육하기로 결정된 사실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서울서부지법 11형사부(재판장 심우용 부장)는 7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친권자 사이의 갈등으로 야기된 분쟁 과정에서 죄를 가릴 때는 가정공동체의 특수성 등을 헤아려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③ "야한 화상 채팅할래요?" 몸캠 피싱 피해 남성 수백 명

"사기꾼들이 여성으로 가장해 음란 화상채팅을 하도록 꼬드긴 범행에 수백 명의 남성이 당했다. 피해액도 10억 원이 넘는다."
 "사기꾼들이 여성으로 가장해 음란 화상채팅을 하도록 꼬드긴 범행에 수백 명의 남성이 당했다. 피해액도 10억 원이 넘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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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들이 여성으로 가장해 음란 화상채팅을 하도록 꼬드긴 범행에 수백 명의 남성이 당했다. 피해액도 10억 원이 넘는다. 최근 적발된 조아무개(27)씨를 비롯한 사기꾼들의 수법은 이랬다.

조씨는 스마트폰 채팅 어플에 접속한 뒤 남성들에게 접근, 여성인 척하며 영상통화를 제의했다. 그는 영상통화 중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며 상대 남성 스마트폰에 특정 파일을 설치하게 한다. 이 파일은 전화기에 저장된 연락처, 위치정보 등을 이메일로 전송받을 수 있는 악성 프로그램이었다.

이렇게 범행 준비를 마친 조씨는 본격적인 화상채팅을 시작했다. 자신은 미리 준비한 나체여성 동영상을 전송하고, 남성이 이를 보면서 음란행위를 하도록 유도했다. 남성의 영상파일은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채팅을 마친 뒤 조씨는 남성에게 전화하여 "돈을 보내지 않으면 지인들에게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동영상 삭제 조건으로 수백만 원을 요구했다. 2014년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확인된 사례만 보더라도 약 7백여 명이 걸려들었다. 

조씨 일당이 이른바 몸캠 피싱 수법으로 뜯어낸 돈은 자그마치 10억 원이 넘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자살할 때까지 유포하겠다, 대한민국 경찰의 무능함을 보여주겠다"고 협박했다. 심지어는 돈을 보내지 않으면 실제로 부모와 친구 등에게 알몸 영상을 전송하기까지 했다.

법원(서울중앙지법 형사 7단독 김한성 판사)은 2일 조씨를 비롯한 일당 5명에게 징역 3년~6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들이 재산적 손해뿐만 아니라 피고인들의 집요하고 악랄한 수법으로 매우 큰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④ 여고생 껴안으려다 비명에 멈췄다면 유죄, 무죄?

박아무개(30)씨는 작년 3월 밤 10시경 혼자 술을 마시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던 김아무개(17)양을 발견했다. 박씨는 마스크를 쓴 채 김양을 200m 정도 뒤따라가다가 1m 간격으로 접근했다. 인적 없는 곳에 이르자 박씨는 뒤에서 양팔을 높이 들어 김양을 껴안으려고 했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김양이 뒤돌아보면서 "왜 이러세요"라고 소리치자 몇 초간 김양을 빤히 쳐다보던 박씨는 되돌아갔다.

박씨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이 유죄(강제추행미수)를 선고했지만, 2심인 서울고법(제8형사부 재판장 이광만 부장)은 무죄로 판결했다. 2심 판결 요지는 이렇다.

"미수가 성립되려면 최소한 실행에 착수한 뒤에 결과에 이르지 못하여야 한다. 강제추행미수는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박씨가 양팔을 높이 들어 올리거나 빤히 쳐다본 정도는 폭행이라고 볼 수도, 실행의 착수라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2심과 달랐다. 박씨의 행동이 '기습추행'(폭행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김양을 추행하기 위해 따라갔으므로 추행하려는 고의가 인정된다. 뒤에서 갑자기 껴안는 행위는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기습추행'이다. 실제로 박씨의 팔이 김양의 몸에 닿지 않았더라도 껴안으려는 행위는 폭행에 해당하고, 실행의 착수로 볼 수 있다. 박씨는 강제추행미수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성범죄로 집행유예 기간 중인 박씨에겐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태그:#간단한법, #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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