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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상 수상자들이 며칠째 분야별로 발표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도 발표 됐습니다. 공동으로 수상하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에는 일본 도쿄대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일본은 과학 분야에서만 스물한 번째 수상자라고 합니다.

일본인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는 자체보다 더 관심을 끄는 건 이번에 수상을 하는 가지타 교수는 13년 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영예교수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스승과 제자 모두가 중성미자에 관한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니, 사제의 연구는 대를 이어 이어졌고, 그 공로 또한 대를 이어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 집니다. 

일본이 과학 분야에서 스물한 번째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반해 아쉽게도 우리나라 과학계에서는 아직껏 단 한 명도 노벨상을 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물론 언론에서도 그 이유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연구는 일본에서처럼 대물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된다는 걸 우선 꼽고 있습니다. 대물림은커녕 한사람이 평생 동안 연구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과학계의 연구 풍토입니다.

일본에서처럼 스승이 했던 것을 그대로 이어 연구하면 무능하거나 게으르다고 평가 받을 것입니다. 수박 겉 핥기 식일지라도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해야 하고, 남들이 생소해 하는 결과를 내놓아야만 인정을 받는 풍토입니다. 경험을 축적하며 진득하니 연구할 분위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풍토가 연구 분야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학계는 물론 산업계조차도 한 우물을 깊게 파지 못하고 메뚜기 같은 연구로 과학계의 풍토와 요구자의 입맛에 맞추는 얄팍한 결과를 쏟아내야만 한다는 현실입니다.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한 <축적의 시간>

<축적의 시간> (지은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 펴낸곳 (주)지식노마드 / 2015년 9월 25일 / 값 28,000원>
 <축적의 시간> (지은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 펴낸곳 (주)지식노마드 / 2015년 9월 25일 / 값 28,000원>
ⓒ (주)지식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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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지은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펴낸곳 (주)지식노마드)은 서울대학교 교수 26명이 우리나라 산업계에 대한 현실적 진단이자 위기로까지 진단되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미래 지향적 처방(제안)입니다.

각 분야를 리드해 가고 있는 석학들이 내놓는 진단과 처방은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미래지향적 대안을 한마디로 농축시킨 공통분모는 '축적'입니다. 

책에서는 26명의 교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6가지 정도의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한 답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산업계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한국의 산업계가 돌파해야 할 관문이 무엇인가?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산학협력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대학(공대)의 역할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틀과 국가정책의 틀이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는가?

한국의 경제개발은 전 세계적으로 50년간 유일한 성공사례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공사례는 어느새 위기 징후로 다가오고 있음이 직감된다고 합니다. 그동안 한국이 추구해온 발전 모델은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숙성된 발전이 아니라 벤치마킹에 역점을 둔 빠른 발전이었다고 합니다.

대형 건축물이 속속 건설되고, 인천대교 같은 장대교를 우리의 자립 기술로 건설했다고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한둘 아닙니다. 영종대교도 그렇고 인천대교도 기획과 초기 설계는 외국회사의 힘을 빌린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규모의 교량을 기획하고 초기 설계를 할 만한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획력과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노하우를 쌓아가는 축적의 결과라고 합니다.  

시행착오 거듭하며 쌓는 '축적' 반드시 필요

그렇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 경쟁력의 원천은 어디에 있나요?

무엇보다 100년 이상의 시행착오 경험이 핵심입니다. 옛날에는 10개 시추정을 뚫어 1∼2개 성공한다고 했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실패하면서 개량해온 결과로, 최근에는 2∼3개 파면 1개 정도 성공할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모두 시행착오의 과정을 오랫동안 축적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입니다. -<축적의 시간> 159쪽-

기술과 경험을 축적해야 할 분야는 토목이나 건축분야만이 아닙니다. 산업계 전반입니다.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반도체나 ICT 분야 역시 새로운 기술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개념과 기본을 능수능란하게 응용 할 수 있을 만큼 경험과 연구를 거듭하는 축적입니다.

진정한 요령,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묘한 이치는 경험으로 터득하는 것이 제일 확실합니다. 요령으로 터득한 응용력은 탄탄한 기술개발이 되고 산업성과를 보장하는 튼튼한 토대가 된다는 건 성공한 글로벌 기업들 사례에서 얼마든지 확인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런 정도의 분석·검토 역량 수준을 가지고 해외 자원을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이야기였을 수 있습니다. -<축적의 시간> 155쪽-

에너지 공학과 신창수 교수는 이명박 정권이 추진했던 해외자원 개발이 실패한 정책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기술을 아는 CEO', 해외자원 개발을 분석·검토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을 축적하고 있는 책임자가 없었기 때문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26명의 교수들이 내놓은 현실 진단과 미래를 위한 제안은 산·학·연 종사자들 대부분이 이미 어느 정도는 어림하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현상은 막연하고, 개개인이 생각하는 대안(제언)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무력하기만 한 빛이 한곳으로 모이면 가공할 만한 에너지를 갖는 게 레이저입니다. <축적의 시간>은 흩어지는 빛처럼 사람들 개개인이 느끼는 현상과 대안을 '축적'이라는 두 글자로 집약시켜, 한국 산업계가 나갈 바를 강력하게 조사(照射)하고 있는 레이저입니다.

결과만을 우선시 하는 정책이 바뀌고, 경험과 축적을 소홀히 하는 산업계 풍토가 어떻게 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지를 <축적의 시간>에 담긴 '축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축적의 시간> (지은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 펴낸곳 (주)지식노마드 / 2015년 9월 25일 / 값 28,000원>



축적의 시간 - 서울공대 26명의 석학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지음, 이정동 프로젝트 총괄, 지식노마드(2015)


태그:#축적의 시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주)지식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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