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전주 KCC가 위기다. 5연승의 상승세도 온데간데없이 연패에 빠지며 좋았던 분위기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더욱이 연패를 당하는 과정에서 변변한 힘도 못 쓰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뼈아픈 것은 하승진(30·221cm), 김태술(31·180cm) 등 팀 내 빅네임들이 합류한 후 경기력이 더욱 안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김태술은 장기인 미들 뱅크슛은 물론 외곽 슛 감까지 잃은 듯하다. 강점인 리딩과 속공 전개마저 안 되고 있다. 김태술이 톱에서 공을 잡으면 다른 선수에게 도움수비를 들어갈 정도다. 발도 빠르지 않아서 수비 시 매치 업 상대를 놓치기 일쑤다.

더욱 큰 문제는 하승진이다. 하승진은 자타공인 KCC 간판선수다. KCC 제2 왕조는 하승진의 영입과 함께 시작됐다. 전임 허재 감독은 항상 하승진에 맞춰 시즌 준비를 했고, 이 같은 준비가 결실을 볼 때 KCC의 성적은 좋았다. 반면 하승진이 부진하거나 빠져있을 때는 팀도 같이 부진했다.

맞춤형 용병이 함께할 때 더욱 강했던 하승진

리바운드는 누가? 지난 6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전주 KCC와 인천 전자랜드의 경기. KCC의 하승진과 전자랜드 스미스가 골 밑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 리바운드는 누가? 지난 6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전주 KCC와 인천 전자랜드의 경기. KCC의 하승진과 전자랜드 스미스가 골 밑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하승진은 강점과 약점이 뚜렷한 선수다. 국내 최장신 빅 맨답게 높이에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발이 느리고 기술이 떨어지는지라 속공 혹은 조직적인 수비 전술이 필요할 때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승진이 한창 좋을 때는 외국인 선수는 물론 동료들까지도 그에 맞춘 선수들로 팀이 돌아갔다. 마이카 브랜드(35·207cm)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하승진 파트너로 불린다. 브랜드는 팀의 취약한 부분을 요소요소에서 긁어줬다. 그는 정통센터가 아닌 만큼, 힘에서는 상대 팀 빅 맨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센스가 뛰어나고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고르게 갖추고 있어, 파워의 열세를 다른 부분에서 커버하며 자신의 몫을 해냈다.

그는 골 밑에서 상대를 등지고 펼치는 1:1 능력이 뛰어났다. 부드러운 피벗 동작으로 수비수를 따돌린 채 성공하는 훅 슛은 적중률이 매우 높았다. 톱에서의 3점 슛과 양옆에서의 미들 슛 등 긴 슈팅 거리를 자랑해 어떤 상황에서도 득점을 성공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의 공격이 원활치 않으면 골 밑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동료들에게 칼날 같은 패스를 찔러줬다. 또한, 자신이 직접 ´컷 인 플레이(cut in play)´에 참가하는 등 패싱 게임에 있어서도 중추적 역할을 해낸다. 이러한 다재다능함 덕분에 정통 빅 맨인 하승진과 동선이 겹치지 않고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크리스 다니엘스(31·206.7cm)는 스피드는 빠르지 않았지만 묵직한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골 밑 몸싸움에 능했고 무엇보다 슛 거리가 길었다. 하승진과 다른 방식으로 득점을 올리는 기술이 뛰어났다.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했던 아이반 존슨(30·200.3㎝)은 내·외곽을 넘나드는 폭발적 득점을 통해 하승진에게 수비가 몰리는 것을 막아주었다.

에릭 도슨(31·201㎝)은 전천후 마당쇠로 불렸다. 도슨의 최대 장점은 뛰어난 농구 감각을 바탕으로 한 팀플레이였다. 그는 타 팀의 기교파 용병들보다 개인기나 탄력 면에서 크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리했던 도슨은 누구보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무리하게 공격에 나서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기회가 오면 3점 혹은 미들 슛을 안정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을 비롯해 전술 이해도가 좋아 받아먹는 패턴에도 능했다.

도슨의 숨은 무기는 ´공격 리바운드´였다. 그는 상당수 외국인 선수와 달리 수비나 몸싸움 등 궂은일부터 챙기며 동료들의 슛이 림을 맞고 튀어 오르면 누구보다도 먼저 골 밑으로 달려가 공을 잡아냈다.

하승진은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대 팀 빅 맨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경우 허둥지둥 대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 순간 도슨의 진가가 발휘된다. 도슨은 높이 뛰지는 않지만, 위치선정이 워낙 좋아 동료의 슛이 실패할 경우 곧잘 리바운드 경쟁에 참가했다. 그는 ´팁 인 슛(tip in shoot)´을 연결하는 데도 능했다. 하승진에게 몰리는 수비를 누구보다도 잘 이용한 영리한 선수였다는 평가다.

과거 '들개 군단' 역할 가능한 맞춤형 포워드 문성곤

'내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2015 남녀대학농구리그 챔피언결정 1차전 고려대와 연세대의 경기. 고려대 문성곤과 연세대 김진용 등이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내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2015 남녀대학농구리그 챔피언결정 1차전 고려대와 연세대의 경기. 고려대 문성곤과 연세대 김진용 등이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하승진 전성기 때는 외국인 선수 못지않게 국내 선수들의 도움도 많았다. 특히 수비 시 하승진의 느린 발을 책임질, 발 빠르고 활동량 많은 선수의 존재가 간절했다. 이러한 역할을 신명호(32·183cm), 강병현(30·193㎝), 임재현(38·182㎝) 등이 잘 해줬다.

이들은 경기 내내 미친 듯이 코트를 뛰어다니며 하승진의 느린 움직임으로 인해 생겨나는 수비 공백을 잘 메워주며 빠른 팀들과의 경쟁에서 KCC가 밀리지 않는데 큰 공헌을 했다. 출중한 속도를 바탕으로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이들의 모습에 팬들은 '들개 군단'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KCC에는 들개가 부족하다. 강병현, 임재현은 타 팀으로 둥지를 옮긴 상태며 유일하게 남아있는 신명호는 스피드와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더욱이 신명호 혼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김태홍(27·193cm), 정희재(24·195cm)는 근성은 좋지만, 과거 들개들처럼 1인 2역의 역할을 소화할 정도로 영리하거나 투쟁심이 넘치는 정도는 아니다. 전태풍(35·178cm), 안드레 에밋(33·191cm), 리카르도 포웰(32·196.2cm) 등 팀 내 주득점원을 맡은 기술자들은 기술은 좋을지 몰라도 수비에서의 높은 공헌도나 궂은일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많은 팬과 관계자들은 KCC의 핵심 하승진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과거 '들개 군단'같은 역할을 해줄 선수들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 멤버 구성으로는 그러한 플레이를 펼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팬들은 오는 신인 드래프트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번 신인드래프트에는 문성곤(고려대·196cm), 한희원(경희대·195cm), 이대헌(동국대·197cm), 이동엽(고려대·192cm), 최창진(경희대·185cm), 송교창(삼일상고·201cm) 등 각 포지션별로 좋은 자원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1순위 후보는 단연 문성곤이다. KCC팬들 역시 문성곤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

문성곤은 좋은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매우 영리하고 빠르다. 그래서 공수에 있어서 안정적인 기량을 자랑한다. 특히 수비에서의 존재감은 당장 프로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극찬이다. 가로-세로 수비가 모두 가능하며 버티는 힘은 물론 걸음도 빠른지라 1~4번 수비가 모두 가능하다. 역대 최고급 수비수 KGC 양희종(31·194cm)과 비견될 정도다.

만약 KCC로 온다면 과거 강병현이 했던 '전천후 마당쇠' 역할을 재현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문성곤과 신명호가 엄청난 활동량으로 코트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면 김태홍-정희재도 좋은 쪽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하승진이 편해지는 최대의 효과가 예상된다.

물론 예전과 달리 KCC가 행운의 문성곤 지명권을 거머쥘 확률은 높지 않다. 신인드래프트는 플레이오프 탈락 팀 4팀에 많은 확률을 주던 과거와 달리 상위 1, 2위 팀을 제외한 8개 팀이 동등하게 자격을 가진다. 일부 팀은 플러스 옵션까지 가지고 있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예상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이유다.

과연 KCC가 1순위 지명권을 받아 행운의 문성곤 픽을 행사할 수 있을지, 코앞으로 다가온 신인드래프트에 귀추가 주목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전주 KCC 하승진 문성곤 들개 군단 강병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