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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를 참 열심히 했었다. 나만의 다락방에 비밀스레 친구를 초대할 때마다, 이 친구에게 나의 일부를 고백하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어려워졌다.
 싸이월드를 참 열심히 했었다. 나만의 다락방에 비밀스레 친구를 초대할 때마다, 이 친구에게 나의 일부를 고백하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어려워졌다.
ⓒ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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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싸이월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페이스북 헤비유저이면서도 10년째 꾸준히 싸이월드를 써왔던 것은, 싸이월드는 내게 '다락방'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나를 너에게 보여주지만, 싸이월드는 네가 나를 찾아온다. 페이스북에서 말하는 것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광장'에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싸이월드에서 쓰는 것은 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친구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페이스북의 나와 싸이월드의 나는 달랐다

나만의 소중한 다락방이었던 싸이월드. 하지만 싸이홈으로 개편되면서, 나의 소중했던 추억 저장소는 사라졌다. 나의 정성스러운 다락방의 한쪽 벽이 와르르 무너진 것 같았다.
 나만의 소중한 다락방이었던 싸이월드. 하지만 싸이홈으로 개편되면서, 나의 소중했던 추억 저장소는 사라졌다. 나의 정성스러운 다락방의 한쪽 벽이 와르르 무너진 것 같았다.
ⓒ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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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간은 다른 호흡을 가지고 있었다. 교환학생 시절 내 페이스북을 본 친구들은 말했다.

"넌 어디서나 재미있고 씩씩하게 지내는구나! 보기 좋다!"

같은 때 내 싸이월드를 본 친구들은 말했다.

"많이 힘들었지, 하지만 그대로도 괜찮아."

페이스북에 올리는 이야기들이 죄다 거짓말로 포장된 건 아니었다. 다만 가깝고 먼 친구들 몇백 명의 타임라인에, 그들이 원치 않을지도 모르는 내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들을 불쑥 들이밀고 싶지 않았다.

반면 싸이월드의 독자들은 기꺼이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페이스북에는 할 수 없었던 -너무 우울해서, 너무 지질해 보여서, 너무 변태 같아서, 너무 솔직해서, 너무 오글거려서, 혹은 너무 쓸데 없어서- 이야기들을 싸이월드에 마음껏 털어놓았다.

그래서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많이 썼다. 대단히 솔직하고 가끔은 위험한, 혹은 내 질척거리는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올라갔다. 누군가 내 다이어리들을 훑으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닉네임을 알아야 하는 블로그와 달리 내 이름만 알면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전체공개였기 때문에 일촌이 아니거나 싸이월드 아이디가 없는 사람도 읽을 수 있었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나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 사실 아직도 싸이월드 해" 하고 고백하곤 했다. 그건 "너를 내 다락방으로 초대해, 나에 대해 읽고 나를 더 알아줘, 나를 더 사랑해줘"라는 프러포즈를 조심스럽게 돌려 말한 셈이었다.

싸이월드가 야심 차게 '모아보기' 기능을 내놓았을 때 나는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며 모아보기를 해제했다. 내 업데이트는 모아보기에 뜨지 않았으므로, 내 이름을 직접 찾아서 들어와야 했다. 나는 누구에게나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아무에게나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처럼 그냥 눈에 띄어서 한번 클릭할 수 있는 글이 아니었으면 했다.

내 일기를 읽기는 번거로웠지만 까다롭지는 않았다. 그 수고로움은 내가 내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이야기 값이었다. 내 친구들은 나에 대한 애정으로 기꺼이 그 값을 치렀다.
나의 다락방, 나만의 공간. 싸이월드의 '대체 불가능' 성은 여기에 있었다.

황새 따라가려는 뱁새, 대체불가능성을 포기하다

서버 과부하로 인해 개편이 늦어진 싸이월드. 현재는 모바일 앱만 복구된 상태이다. 하지만 내가 싸이월드를 그만두는 이유가, 늦어진 점검 때문은 아니다. 내가 원했던 싸이월드라면 기꺼이 기다릴 용의가 있었다.
 서버 과부하로 인해 개편이 늦어진 싸이월드. 현재는 모바일 앱만 복구된 상태이다. 하지만 내가 싸이월드를 그만두는 이유가, 늦어진 점검 때문은 아니다. 내가 원했던 싸이월드라면 기꺼이 기다릴 용의가 있었다.
ⓒ 싸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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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싸이월드에서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싸이월드의 질문에 많은 사람이 "추억"이라고 답했다. 누군가는 '다이어리'와 '사진첩'이라고도 말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들이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꾸준히 싸이월드로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포함한 그들이 싸이월드에 바라는 것은 명백했다. 발 넓은 네트워킹이나 짧고 빠른 박자의 기록, 실시간 의사소통은 다른 SNS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싸이월드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곳은 차곡차곡 기록들을 쌓아 만드는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비록 '투데이 히스토리(Today History)'가 묻어놨던 몇 년 전의 내 흑역사를 끌어올릴 때마다 미니홈피를 폭파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치기 어리고 어설픈 그것들마저도 싸이월드가 담고 있는 나의 일부였다.

지난 9월 말, 싸이월드가 싸이홈으로 개편된다는 소식은 몇 년간 싸이월드에 접속하지 않았던 사람들마저도 술렁이게 하였다. 미니홈피와 싸이블로그가 합쳐지면서 더는 쪽지와 일촌평, 방명록을 서비스하지 않는단다. 나처럼 꾸준히 싸이월드를 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더 이상 싸이월드를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우르르 몰려와 일촌평과 방명록을 백업했다. 오래 잊어버리던 공간이긴 해도 그대로 없어지게 두기엔 아까운 '추억'들이었으니까.

한때 전 국민의 SNS 표준이던 싸이월드에 담긴 데이터가 어마어마하긴 했나 보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의 개편 기간을 가지고 5일에 오픈하겠다던 싸이홈의 약속은 기약 없이 늦춰졌다. 오랜만에 싸이월드를 기억해 낸 사람들로 인해 서버는 늘 터져 있었고, 나는 내 다이어리를 읽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일주일이 지난 12일에야 '모바일 앱'부터 한시적으로 오픈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싸이홈'은 더는 내가 사랑하던 다락방 '싸이월드'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싸이월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개편에 따르는 오류나 접속지연 때문은 아니다. 그런 것쯤이야 싸이월드에 대한 애정으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싸이월드가 더는 다락방이기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이전부터 싸이월드의 개편 방향은 꾸준히 '페이스북 따라잡기'였다. 더 짧고 더 간편해졌다. 버튼 몇 개로 '오늘의 기분'을 올릴 수 있었는가 하면 '모아보기'로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일일이 방문하지 않고도 새 글들을 쓱쓱 훑어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나마도 예전까지는 반쯤 블로그의 형태였었던 인터페이스가 이번 개편에는 더 나빠졌다. 다이어리와 사진첩 폴더를 없애고 해시태그로 이를 대체했다. 차곡차곡 책을 분류하고 정리해 꽂아놓은 책장을 무너뜨리고 그 책들을 죄다 바닥에 흩어놨다고 생각해 봐라. 딱 그런 꼴이다.

왜 싸이월드는 자신만의 무기를 포기했을까? 싸이월드는 이제 평면적인 공간이 됐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페이스북보다는 느리고 인스타그램처럼 사진특화도 아니다. 트위터처럼 가볍지도 않다. 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다시 싸이월드를 쓴단 말인가. 10년째 잘 꾸려오던 다락방의 벽 한쪽이 무너져 휑뎅그렁하게 모두에게 드러난 것만 같다. 싸이월드는 황새를 따라가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처럼 되어 버렸다.

싸이월드를 버리겠다는 건 단순히 하나의 SNS를 접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공간에서 내가 모아오고 지켜왔던 몇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블로그나 티스토리, 포스타입 등 새로운 공간을 뒤적여보고 있지만, 어느 것도 예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만큼 마음에 차지 않는다.

마음이 휑하다. 도대체 어디에다 정을 붙이고 다시 내 다락방을 꾸민단 말인가.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싸이월드, #SNS,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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