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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重慶森林) 한 번 볼까? 제목에 중경이 있잖아."

여행할 곳으로 중경(重慶·충칭)을 선택한 후 우리는 정보를 찾아 헤맸다. 중경이라면 중경삼림과 중경임시정부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던 나는 일단 영화부터 보자고 제안을 했다.

제목에 중경이 들어가 있으니 틀림없이 그곳을 담은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 이상하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중국 같지가 않다. 중국이 저렇게 세련됐을 리가 없는데, 중국에서는 저런 일들이 일어날 수가 없을 텐데... 기대를 갖고 영화를 보던 남편이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중경삼림에는 중경이 없었다.

중경에 대해 아는 게 도통 없었던 우리였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경에 간다고 하니 다들 "중경삼림의 그 중경요?"라고 물었다. ​홍콩이 무대인 영화인데도 사람들은 중국의 중경인 줄 알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면 한두 시간 안에 도착하는 중국이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먼 나라였고 생소한 곳이었다.

중경에 대해서 아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곳은 내가 늘 꿈꾸던 곳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경을 출발해서 푸링(部陵)이라는 도시로 가보는 게 내 오랜 꿈이었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을 읽고 시작되었다.

<리버타운> 속 나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아서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서 중국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어한다는 양쯔강 삼협. 중국 돈 10위안짜리 뒷면에는 위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서 중국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어한다는 양쯔강 삼협. 중국 돈 10위안짜리 뒷면에는 위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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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重慶)을 떠난 배는​ 느릿느릿 강을 따라 내려와 푸링에 도착했다. 1996년 8월도 하순에 다다른 어느 무덥고 화창한 날의 저녁이었다. 별들은 양쯔강 위에서 반짝였지만, 검은 물살에 반사되어 자취를 남기기엔 그 빛이 너무 약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책이 있다. 그 책은 양쯔강 가의 작은 도시인 푸링을 그리고 있다. 1996년에 평화봉사단원으로 중국에 간 미국인 청년이 양쯔강 중류에 있는 작은 도시인 '푸링'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2년 간 산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살았던 경험을 <리버 타운>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 책은 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한 권의 책만 읽어도 중국을 다 알 수 있다"라고 평한 사람도 있을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푸링은 양쯔강 중류에 위치한, 인구 20만 명쯤의 작은 도시다. 중국에서 그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내륙 깊숙이 들어앉아 있으니 어쩌면 궁벽한 시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푸링에 가보고 싶었다. <리버 타운>을 통해 본 푸링이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 충칭에서 배를 타고 푸링으로 가보는 거야. 글쓴이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푸링사범대학에도 가보고 짐꾼인 '방방쥔'들이 어깨에 짐을 지고 오르내렸던 계단도 찾아봐야지. 학교 앞 국숫집의 여섯 살짜리 황카이는 이제 어른이 다 됐을 거야. 얼후를 연주하며 구걸을 하던 맹인과 딸은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

책을 통해 본 푸링이 마치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충칭 구경은 뒷전이었고 내 관심은 오로지 푸링밖에 없었다. 충칭 인근에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리버 타운>을 꺼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장장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그 두꺼운 책에 밑줄을 쳐가면서 찬찬히 읽어나간 게 내 여행 준비의 전부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푸링에 가지 못 했다. 내 여행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그곳을 못 가보다니, 어째 이런 일이 다 있단 말인가.

푸링은 충칭시에 속해 있는 도시이니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을 내서 둘러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 계획을 짤 때도 그리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자투리 시간으로도 다녀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 욕심으로는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니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푸링에 꼭 가봐야 된다고 내가 말할 때마다 남편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한 수 더 떠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 가봐야 별 볼 것도 없을 텐데... 샨샤댐이 만들어지면서 푸링도 대부분 물에 잠겼을 거야. 책에서 봤던 그 풍경은 이제 그 곳에 없을 텐데..."

남편은 매번 이렇게 말끝을 흐리면서 내 열망에 회의를 표했다. 푸링에 가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그는 잘 알지를 못했다. 풍경을 보려고 그곳에 가려는 게 아닌데도, 그는 별 볼 것이 없을 거라며 시큰둥해 했다. 하기야 남편을 탓할 것도 없다. 책을 보지 않은 그로써는 당연한 반응이다.

남편에게 푸링은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잠깐 다녀오면 될 곳이었다. 그러나 내게 푸링은 그 어떤 곳보다 더 궁금하고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지 푸링에 가보고 싶다는 말밖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름다운 경치나 유명한 문화유적을 볼 거면 굳이 푸링에 갈 필요가 없다. 중국에는 그곳 아니어도 이름난 명승지와 역사 유적지가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도 내가 푸링을 꼭 가보고 싶어 했던 것은 <리버 타운>이라는 책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글쓴이가 맡았던 푸링의 냄새며, 도시의 소음도 나는 느껴보고 싶었다.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도 만나보고 싶었고, 그 책을 통해 중국이란 나라를 호흡해보고 싶었다.

또 다른 욕심도 있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푸링을 그렇게 가보고 싶어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놓고 말하려니 조금 부끄럽지만 그때는 꼭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푸링은 우리나라에 소개가 거의 되지 않은 작은 도시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푸링에 대한 글이 거의 없었다.

누구나 다 여행 작가가 되고, 사진가가 되는 요즘에도 푸링은 미개척지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다녀온 곳을 따라가는 것도 괜찮지만 남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일도 꽤 흥미로울 것이며, 더구나 책을 읽고 그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이란 말인가.

생각만 해도 신나고 설레었다. 푸링은 그 어떤 관광지보다 나를 더 끌어당겼다. ​​그곳에만 있다 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리버 타운>의 저자인 '피터 헤슬러'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나 역시 따라해 보고 싶었다. 우장강과 양쯔강이 만나 하나가 되는 그곳 푸링은 그렇게 내게 환상의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뜻밖의 불행으로 바뀐 중국인 친구의 '호의'

충칭시 공무원인 이빈 선생과 그의 친구 부부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 충칭 대표 요리인 훠꿔를 맛보았다.
 충칭시 공무원인 이빈 선생과 그의 친구 부부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 충칭 대표 요리인 훠꿔를 맛보았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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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꿈에 부풀어서 충칭으로 갔다. 그러나 나는 끝내 푸링에 가지 못했다. 멀리서 스쳐지나가며 바라보기는 했지만 그곳을 밟아볼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안타까웠지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내 친구 중에 중국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았던 사람이 있다. 그는 알고 지내는 중국 사람도 꽤 있는데 그중에는 충칭 사람도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쉽게 잊지 않는지 한국 친구의 친구인 우리 부부가 간다고 하니 충칭의 이 선생은 우리를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외국 사람이 한국에 온다면 나 역시 이 선생처럼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한국말과 지리에 서툴 테니 도와주는 게 마땅하다. 이 선생도 그러했다. 그는 교통편이 좋은 곳으로 숙소를 잡아주기도 했고, 충칭 근처 볼거리들을 알려주며 여행사에 예약도 해주었다. 또 다른 지역으로 갈 기차표도 예매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친절은 내게는 횡액(뜻박에 닥쳐오는 불행-편집자 말)으로 다가왔으니, 푸링을 못 가게 되고 만 것이다.

푸링에 가보고 싶다는 내 말을 충칭의 이 선생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고 많은 유명 관광지를 다 놔두고 볼거리도 없는 그곳에 왜 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이라도 잘 통하면 왜 그곳을 꼭 가보고 싶어 하는지 이야기해 줄 수도 있으련만, 고작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인사 말 정도밖에 없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책을 보고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다는 말을 전달할 방법이 그때의 내게는 없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푸링은 당일치기로 갔다 와도 된다고 했다. 충칭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이니 하루만 시간을 빼도 충분할 거라며 다른 볼거리들을 우선 챙기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먼 중국 땅까지 와서 이름난 곳을 안 보고 간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충칭 인근에 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대족석각(大足石刻)과 2박 3일 동안 배를 타고 양쯔강을 구경하는 샨샤(長江三峽) 크루즈를 우선 챙겼다. 그 다음 남는 시간을 푸링에 할애했다.

충칭에서 출발해 호북성 이창까지 2박3일간 가는 샨샤 크루즈는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까지도 선호한다.
 충칭에서 출발해 호북성 이창까지 2박3일간 가는 샨샤 크루즈는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까지도 선호한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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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계획은 샨샤 크루즈를 마치고 저녁 때 충칭으로 돌아와 하룻밤을 잔 뒤, 그 다음 날 오후에 다른 도시로 떠나는 것이었다. 이 사이 약 스무 시간이 비어있으니 푸링 쯤은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한 게 있었다. 중국이 넓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푸링이 충칭시에 속해 있다고 하나 충칭시가 워낙 큰 도시다보니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는 중국어도 못 하니 하루 일정으로는 그곳을 갔다 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물어물어 찾아가야 하는데, 무슨 수로 낯선 곳을 당일치기로 다녀온단 말인가. 그것도 자투리 시간을 모아서 가야 하니, 도저히 무리였다.

또 갔다가 그냥 둘러만 보고 올 거면 굳이 그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곳의 냄새를 맡고 공기를 느끼는 것이지 단순하게 보고 오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여행 경험이 많았다면 계획을 짤 때부터 다르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배낭여행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모든 게 다 낯설고 서툴렀다.

결국 푸링은 접어야 했다. 그것은 남편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그렇게 된 게 모두 남편 탓인 양 원망하고 한탄했다. 지금 현재에 충실해야 하는데도 나는 지나간 것에 연연해하며 남은 여행 기간 내내 힘이 들거나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애꿎은 남편을 탓했다.


태그:#중국 여행, #중경, #리버 타운, #샨샤 크루즈, #중경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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