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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이기는 건 역시 좋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이기는 건 역시 좋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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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고 했습니다. 얼굴 좀 보자고 했습니다. 잔치를 한다고 했습니다. 사오랑마을 주민과 출향 인사들이 한마음으로 어울려 보자고 했습니다. 먹을 것도 주고, 선물도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돼지를 두 마리나 준비하고, 고향사람들이 지은 쌀로 밥도 짓고, 떡도 하고, 강에서 잡은 올갱이로 국도 끓기고, 부침개도 부치고, 나물도 무치고…. 하여튼 잔치 음식도 푸짐하게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 고향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만 가지고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하루 전, 살다보니 어느새 출향민으로 살고 있는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친구네 집에서 하루 저녁을 보냈습니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밤새 숙덕입니다.

10월 10일, 사오랑 마을은 잔치 중

10월 10일, 날이 밝았습니다. 고향사람들을 만날 마음에 발걸음조차 설렙니다. 고향마을로 올라가는 길은 왜뚝길과 갈골길 두 길입니다. 행사를 알리는 걸개가 안터 쪽으로 올라가는 '갈골길'과 도롱골로 올라가는 '왜뚝길' 양쪽 길 모두에 걸려 있었습니다.

마을 잔치를 알리는 걸개가 걸려있는 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 할머니들
 마을 잔치를 알리는 걸개가 걸려있는 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 할머니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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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두 분이 잔치가 열리는 곳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허리 꼿꼿하고 피부 뽀얗던 새댁, 연상의 누이 같았던 아주머니들이 어느새 등 굽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걸개 아래로 나있는 이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면 잔치가 열리는 곳, 그 옛날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장승박이처럼 자라고 있던 그곳입니다.

잔치는 도롱골 입구, 느티나무가 있던 딸기 밭에서 열린다고 했습니다. 준비 중이었습니다. 웃음도 주고 행복도 주려고 아주 바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만국기도 내걸고, 부녀회원들은 먹을 걸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쪽에서는 지글거리며 돼지고기를 볶고, 저쪽에서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부침개가 익어갑니다. 차려지고 있는 먹거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침이 고입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피다보니 어느새 침이 꿀꺽 넘어갑니다.

행사가 준비되도 있는 비닐하우스 안
 행사가 준비되도 있는 비닐하우스 안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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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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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고향어른들 앞에서는 90도 인사를 하고, 누구와 누구는 악수를 합니다. 안부도 묻고 소식도 나누고 있습니다. 100평쯤은 되는 비닐하우스 안이 고향을 찾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고향을 찾은 사람들 중에 '삼성'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건 삼성이 사오랑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어 삼성 사람들 또한 사오랑마을 출향민이기 때문입니다. '삼성'과 '사오랑'은 몇 년 전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삼성에서는 매달 한 번씩 봉사활동을 나옵다고 합니다.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꼬박꼬박 나와 농사일도 도와주고 마을길도 청소해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삼성 사람들 또한 사오랑 사람입니다.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숲이랑사오랑마을 소진호 위원장이 인사말을 합니다. 전재식 이장도 인사말을 합니다. 고향마을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한 명 한 명 소개됐습니다. 누가 어떤 말을 어떻게 해도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인사말을 하고 있는 숲이랑사오랑 정보화마을 소진호 위원장
 인사말을 하고 있는 숲이랑사오랑 정보화마을 소진호 위원장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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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식 이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전재식 이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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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이었던 아주머니들이 어느새 할머니가 됐습니다.
 새댁이었던 아주머니들이 어느새 할머니가 됐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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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였던 아저씨들도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젊은이였던 아저씨들도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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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마을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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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색시처럼 고왔던 이웃 아주머니는 할머니가 돼 앉아 계시고, 한때 동네 장사였던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돼 앉아 계십니다. 고향을 지키며 살다보니 어느새 등 굽고, 얼굴에 검버섯이 핀 고향마을 사람들과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얼기설기 함께 앉았습니다.

닮은 자식들 보니 먼저 간 친구 더 생각 나

기억 속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엄마를 닮았니?' 하며 투정 아닌 투정을 하는 것으로 봐 먼저 간 친구 자식들을 보니 친구가 문뜩 그리운가 봅니다.

고향사람들이 잔치를 여는 건, 출향민들에게 마음을 기댈 둥지가 있다는 것을 알져주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힘들고 고단할 때 떠올리는 고향은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머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고향 사람들은 넉넉했습니다. 물질적인 살림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출향민들을 챙기는 마음은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마음에 버금입니다.

맛난 점심을 먹기위해 줄을 선 사람들
 맛난 점심을 먹기위해 줄을 선 사람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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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것을 맛나게 먹고 있는 사람들
 맛난 것을 맛나게 먹고 있는 사람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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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맛나게 먹을 식사 시간입니다. 참 푸짐했습니다. 줄을 서 기다려야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오순도순 함께 먹는 맛은 맛 그 이상의 맛이었습니다. 고향마을에서 고향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추억을 더듬으며 먹는 밥맛은 먹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향 맛'입니다.

점심을 맛나게 먹고 나니 운동회(?)가 시작됩니다. 젊은이 들은 밖에 모이고 할머니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앉아서 구경을 합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앉아서 구경이나 하렵니다. 젊은이들이라고 해봐야 다들 50대 이상입니다.

엉덩이 들썩 거리고 어깨 으쓱 거리게 하는 체육대회

신발 멀리차기 대회를 위해 먼저 여자들이 줄을 맞춰 섰습니다. 대회에 앞서 사회자가 춤을 추라고 합니다. '에궁~' 몸이 처녀 때 같지 않은가 봅니다. 그래도 다들 열심히 흔들었습니다. 엉덩이는 들썩 거리고 어깨는 으쓱 거립니다. 볼거리도 이런 볼거리가 없습니다. 하하거리며 웃고 호호거리며 웃느라 잔치마당이 들썩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앉안 채 운동회를 구경하고 있는 할머니들
 비닐하우스 안에 앉안 채 운동회를 구경하고 있는 할머니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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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가 춤을 추라고 하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춤을 춥니다.
 사회자가 춤을 추라고 하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춤을 춥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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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멀리차기, 힘껏 차 보지만 잘 안됩니다.
 신발 멀리차기, 힘껏 차 보지만 잘 안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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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도 마음대로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도 마음대로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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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안에서 바깥에서 열리는 운동회를 구경하고 계시는 할머니들
 비닐하우스 안에서 바깥에서 열리는 운동회를 구경하고 계시는 할머니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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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멀리차기 대회가 시작됐습니다. 아~앗싸!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힘껏 차보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멀리 나가라는 신발이 되레 머리 뒤쪽으로 날아갑니다.

신발 멀리차기 대회가 끝나고 줄다리를 합니다. 미리 나눠진 편도 없고 다시 나누어야 할 팀도 없습니다. 남녀노소, 나 너 가리지 않고 동네사람 모두가 그냥 서고 싶은 데 서서 줄다리기에 나섰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당겨 봅니다. 나눠진 편도 없고, 나누어야 할 팀도 없었지만 줄을 당기다 보니 승패나 갈립니다.

이낀 쪽 사람들은 환호성이고 진 쪽 사람들은 탄식입니다. 이긴 쪽 할머니 어깨가 얼쑤 올라갑니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이기는 건 역시 좋은가 봅니다. 이기고 진 사람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줍니다. 줘서 뿌듯하고 받아서 기쁜 표정이 너울너울 퍼져갑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줄다리기에 나섰습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줄다리기에 나섰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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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노래자랑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와 후드둑 거리며 내리는 빗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사람들이 노래를 합니다. 어르신들이 부르는 노래는 박자, 음정, 가사 다 자유롭습니다. 그래도 즐겁습니다.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언제 저 어르신의 타령을 들어 볼 거며, 누구네 집 며느리가 엉덩이 들썩 거리며 추는 춤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좋았습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이런 잔치 아니면 못 볼 며느리 엉덩이 춤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마다 선물이 푸짐합니다. 가슴도 푸짐하고 선물도 푸짐합니다. 고향사람들이 차려준 잔치는 재미도 보고, 그리운 사람들 얼굴도 보고, 선물도 받고, 맛난 것도 실컷 먹고...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일석이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일석 몇 조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래자랑,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언제 저 할아버지의 타령을 들어 보겠습니까.
 노래자랑,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언제 저 할아버지의 타령을 들어 보겠습니까.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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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마다 선물이 푸짐합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마다 선물이 푸짐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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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다르고, 이름은 달라도 고향 사람들은 이 고구마처럼 한 줄기에서 뻗은 뿌리, 뿌리가 같은 한 줄기 고향사람들입니다.
 성이 다르고, 이름은 달라도 고향 사람들은 이 고구마처럼 한 줄기에서 뻗은 뿌리, 뿌리가 같은 한 줄기 고향사람들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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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뒤쪽 테이블에 고향사람들이 지은 고구마가 눈길을 끕니다. 그랬습니다. 성이 다르고, 이름은 달라도 고향 사람들은 이 고구마처럼 한 줄기에서 뻗은 뿌리, 뿌리가 같은 한 줄기 고향사람들입니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고향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이 50대 이후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야 철(?)이 들듯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야 애틋해지는가 봅니다.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잘 놀고, 잘 먹고, 잘 즐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두루두루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필자 마음대로 쓰고 있지만 출향민 모두의 마음이 비슷비슷 이럴 겁니다.


태그:#사오랑, #숲이랑사오랑, #산막이옛길, #소진호, #전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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