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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2일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더욱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등 독재·친일 미화 국정교과서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마이뉴스>는 연쇄 인터뷰를 통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살펴볼 예정이다. - 기자 말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이 9일 오전 부천여고의 한 교실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펼쳐든 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이 9일 오전 부천여고의 한 교실에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펼쳐든 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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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념 대결의 장으로 변질됐다. 보수 진영은 현행 검정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낙인찍고 종북 몰이에 나섰다. 집권여당 대표가 총대를 멨다. 국정화에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역사 교사들이다. 지난달 2일 역사 교사 2255명이 실명을 밝히고 국정화 반대 선언에 나섰다. 전국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6000여 명 중 1/3이 나선 최대 규모의 선언이었다. 이후 국정화 반대 선언이 각계각층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천여고 교사인 조한경(50)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화가 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일 오전 부천여고에서 한 인터뷰에서 "9월 초부터 보수언론을 포함해 모든 언론이 국정화를 두고 시대착오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면서 "지난주 교육부는 빠지고, 새누리당이 나서서 종북·좌편향 교과서 운운하며 종북 몰이를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교육은 교육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역사교육은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교과서가 나와도 그 수명은 짧은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를 두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라고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교과서? 대안 교재 마련하겠다"

-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진영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목매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뉴라이트 사관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거부당한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현행 검정교과서들은 역사를 균형 있게 서술하고 있다. 교육부는 퇴행적이면서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지 않는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면서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현행 검정교과서와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나.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더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는 줄이고 친일을 희석하지 않겠나.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 국교 정상화 추진과 이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담긴 한 교과서를 기자에게 보여주면서) 현 정부 입장에서 불편한 내용이 많다. 이런 내용들이 많이 사라질 수 있다."

국정교과서가 나오면 학교 현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그는 "현재 일반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중에 국정교과서는 사실상 없다"면서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생기면, 학생들은 낯설어할 것이다. 또한 역사 교사 다수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는데, 그런 교과서로 어떻게 제대로 된 수업을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역사 수업에서 꼭 다뤄야할 부분이 교과서에 없거나 왜곡됐다면 어떻겠나. 지금도 많은 교사들은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해서 자신만의 배움책(대안 교재)을 만든다. 국정교과서가 확정되면 수업할 때 국정교과서를 쓰지 않을 수 없겠지만, 나름의 대안 교재를 만들어 수업에 활용할 것이다. 교과서는 성전이 아니다."

"1년 안에 교과서 만든다? 표절 우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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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2017년 1학기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10월에 국정교과서를 만들기 시작해도, 1년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또한 일부 연구학교에 시범적용을 하려면, 내년 2학기 전까지는 만들어야 한다. 국정교과서를 만들 시간은 1년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조한경 회장은 그 기간 동안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두산동아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진이기도 하다. 그는 "집필, 편집, 오류 시정 등의 과정 등에 최소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본문과 부속자료를 넣고 디자인에 공을 들이면 3년가량 걸린다"면서 "1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교과서를 만들면, 부실한 교과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부실한 국정교과서의 사례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를 꼽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나온 첫 국정교과서다. 그는 "만드는 데 2년 이상 걸린 이 교과서를 일주일 동안 분석했더니, 150개의 오류를 발견했다"라고 꼬집었다.

- 국사편찬위원회(국편)에서 국정교과서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감수한 곳이 바로 국편이다. 또한 보수진영이 좌편향 교과서라고 지적하는 교과서들은 모두 국편에서 검정을 맡았다. 감수나 검정도 제대로 못하는 국편이 제대로 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 수 있을까. 역사교사·학자들이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위 있고 능력 있는 필진을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 시간이 부족하다면, 국편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교과서를 만들 것으로 보나.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과서를 만들려면, 제일 먼저 검정교과서나 과거 국정교과서를 가져다 놓고 베껴 쓸 수밖에 없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은 인터넷에서 사진을 그대로 내려 받아 쓰지 않았나. 앞서 얘기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교과서에도 예전 교과서에서 그대로 가져온 부분들이 많다. '표절교과서'가 될까 우려된다."

"교육은 교육으로 풀어야"

지난 5일부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는 공개석상에서 연일 현행 검정교과서에 색깔론을 제기하면서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8일 "<한국사> 교과서 8종 중에서 6종이 '1948년 정부 수립', '북한은 국가수립'이라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약화시키고, 긍정적인 역사를 배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조한경 회장이 허탈하게 웃었다.

"헌법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돼있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다. 1948년에는 '임시'를 뗀 정부가 수립됐다. 1948년에 건국됐다고 하면,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데에까지 나갈 수 있다.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보는 뉴라이트 사관이다."

- 김무성 대표는 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현행 검정교과서를 두고 "좌파적 세계관에 입각해 학생들에게 민중혁명을 가르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북한 체제를 정상적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무성 대표가 말하는 좌파적 세계관이 뭔지 모르겠다. 교육부는 북한에 대해 세습 체제와 경제 정책의 실패, 국제적 고립에 따른 체제 위기,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서술하라는 집필기준을 세웠다. 교과서의 내용은 여기에 맞춰 서술됐다. 또한 김무성 대표 말이 맞다면, 민중혁명이 몇 번은 일어났어야 하지 않나."

- 교육부가 여당 의원들에게만 제출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 자료에서 현행 검정 교과서가 북한 입장 두둔하는 등 좌편향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3년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6종에 대한 수정명령을 내렸고, 현재 수정명령이 모두 반영됐다. 그랬던 교과서를 두고 종북·좌편향이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 아닌가. 이런 분석 자료를 여당 의원들에게만 주고 종북 몰이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다."

- 원유철 원내대표는 6일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2011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37명 중 28명이 2014년에 나온 교과서에도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또한 <한국사> 교과서 7종의 근현대사분야를 22명이 집필했는데, 그중 18명이 특정이념에 경도됐고 10명이 전교조"라고 주장했다.
"출판사 입장에서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험 있고 믿을만한 집필진에게 교과서 집필을 맡기는 건 당연하다. 새누리당의 주장은 자신들에게도 해당된다. 다선 의원들은 문제가 있으니, 국회는 초선으로만 채워야한다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교과서 필진 중에 전교조가 많다고 하는데, 능력 있는 게 무슨 문제인가."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9일 오전 부천여고의 한 교실에서 다양한 <한국사> 교과서를 펼쳐놓은 채 인터뷰에 응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9일 오전 부천여고의 한 교실에서 다양한 <한국사> 교과서를 펼쳐놓은 채 인터뷰에 응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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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를 '국민통합 교과서', '역사 교육 정상화'라고 부른다.
"교과서 도서 규정에 따르면, 발행 체제에 따라 국정·검정·인정 교과서밖에 없다. 새누리당은 규정에도 없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국정교과서 논란을 희석하려고 한다."

- 정부·여당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교육은 교육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 역사교육은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의 몫이다. 역사학자·교사의 반대에도 국정교과서가 나오면, 국정교과서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면,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를 두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라고 반대하지 않겠나. 앞으로 발행 체제가 법제화돼서 정권이 함부로 국정교과서를 만들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 자유발행체제가 될 수 있도록 운동에 나설 것이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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