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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2일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더욱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등 독재·친일 미화 국정교과서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마이뉴스>는 연쇄 인터뷰를 통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문제점을 살펴볼 예정이다. - 기자 말

지난 2010년 종로구 동숭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강당에서 열린 '제17회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한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박노자씨.
 지난 2010년 종로구 동숭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강당에서 열린 '제17회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한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박노자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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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그 서술 방향은 '조국 근대화'로 고통받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애써 죽이는 쪽으로 갈 것입니다."

'반(反)파시즘' 역사학자로 꼽히는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 나눈 서면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이같이 우려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아는 귀화 학자'로 소개되는 그는 그간 <당신들의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에 다양한 비판의 시선을 던져왔다.

박 교수는 지난달 11일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도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지배자들의 폭력을 감당해야 했던 피지배자들의 고통에 무감각한 역사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다. 그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 비판의 초점을 자세히 좁혔다. 박 교수는 현 정권의 국정 교과서 고집은 "국가가 과거를 장악하려는 것"이라며 "역사를 정권 안보의 보루"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 여당이) 승자들의 역사, 부자들의 역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좌편향'으로 보려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유일 해석만으로 진리로 만든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 해석의 다양한 관점 대신 지배자 논리에 치우친 맞춤형 교과서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아래는 그가 보내온 답변 전문이다.

"국정화 <한국사> 교과서 서술 방향, 불 보듯 뻔하다"

- 대부분의 국내 언론에서 오는 12일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 발표를 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국정화 전환 추진이 기정 사실화되고 있는 것인데요. 2013년 교학사 교과서 파동 이후 줄곧 속도를 높이는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집,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속 빈 강정이 소리만 크다'는 말과 같죠. 이번 정부는 내놓을만한 그 어떤 성과도 없습니다. 복지망이 넓어지지도 않았고 남북 관계가 좋아지지도 않았으며, 보수가 그렇게 좋아하는 경제 성장마저도 둔화돼갑니다. 민생 문제는 자꾸 심각해지는데, 이걸 잊게 하고 보수 유권자층을 결집하기 위해 이념 공세를 취하는 모양입니다. 즉, 민생 위기 상황에서 이념적 보수화로 지지 기반을 공고화하려고 노력하는 셈입니다. 실패한 대통령에게 남는 것은, 결국 그 수구적 이념을 가지고 외쳐대는 일일 뿐입니다."

-지난달 11일 블로그에 쓰신 "'국정 교과서', 국가가 정한 역사..."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글에서 "역사 쓰기를 국가에 맡긴다는 것은, 고용책을 고용주에게 맡기고 군사 안보 정책을 장군들에게 맡기는 우거와 거의 같은 차원"이라고 지적하셨는데요. '국가가 관리하는 교과서'의 핵심 폐해는 무엇일까요?
"지배자들에게 유리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다수를 속여 그 세계관 형성에 피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그 서술 방향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근대화 세력'(예를 들면 친일적 개화파나 타협적 문화 민족주의자 등)이나 '산업화 세력'(예를 들면 독재 시절 관료 세력, 군벌, 재벌)의 '위업'을 찬양하고, 그 '조국 근대화'로 고통 받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애써 죽이는 쪽으로 갈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무슨 교훈을 얻겠습니까? '근대화·산업화 세력처럼 강자에게 빌붙어 아부하고 하수인을 자청해도 된다, 단 강자가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조건만 충족되면 좋겠다' 이 정도를 배울 것입니다. 이게 후세대를 위한 올바른 교육일까요?"

-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4년 국정 교과서를 추진했습니다. 그 딸인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30여 년 전 상황과 지금 상황, 비교하신다면?
"유신 정권 때 한국에선 '민주주의'의 이름마저도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화된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거든요. 지금은 민주주의의 형식은 비록 남아 있지만, 내용은 자꾸 없어지고 있습니다. 정보기관이 좌우하는 대선은 과연 진짜 민주적 선거인가요? 그런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국가가 과거를 장악하려는 것입니다. 역사를 정권 안보의 보루로 만들기 위해서죠."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와 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국사교과서 국정화 '박근혜 효도용?'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와 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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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지난 6일 긴급 토론회에서 "한국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면서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국정 교과서를 추진할 시, 역사 왜곡의 발생 가능성은 얼마나 크고, 또 어떤 왜곡이 생길 수 있을까요?
"피해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승자만의 역사는 그 성질상 본질적으로 왜곡입니다. 국정화 교과서에서는 예컨대 월남에서 한국군이 벌인 각종 학살과 전시성 폭력 행위 등에 관한 정확한, 그리고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한 묘사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한국 측에서 당시 월남민에게 끼친 해악을 <한국사> 교과서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과연 일본 우파 교과서의 전쟁 범죄 은폐 등을 무슨 명분으로 비판하겠습니까? 일본의 반성을 이끌자면 우리 쪽부터 솔선수범하는 게 도리입니다."

- 지난 7일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전국시민선언이 본격 재개되는 등 국민의 반대 여론이 뜨겁습니다(관련기사: "일베 교과서 안 돼"... 서울대부터 학부모까지). 한 여당 의원은 8일 국정감사에서 이 여론이 좌편향 인사들에 의해 왜곡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야가 판단하는 여론의 찬반 기준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당에게는 피해자, 빈민, 서민, 비주류는 이미 '국민'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국민이란 '조국 근대화'로 강남 등지에서 좋은 아파트의 소유자가 되고 아이들을 조기 유학 보낼 수 있는 상위 5% 범위 안입니다. 그들에게는 재벌의 하도급 기업에서 죽도록 일해 '수출 전선'을 뒷받침했음에도 나이가 들어 가난한 노인이 된 사람들은 국민으로도,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승자들의 역사, 부자들의 역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좌편향' 등으로 보려 하는 거죠."

- 한 인터뷰에서 '젊은 파시스트', 즉 젊은 극우주의자들의 늘어나는 패륜적 행위를 우려하신 말씀을 봤습니다. 국내에선 교과서 국정화 이후 일본과 같은 극우주의 확산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더러 있습니다. 국정화 교과서 추진과 젊은 극우주의자의 증가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불안해져 가는 사회에선 극우파의 극단적 행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승자들의 교과서, 주류를 위한 교과서는 국가의 '유일 사상'이 돼 젊은 극우파들에게 무오류의 행동 지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승자를 위한 교과서의 서술대로 재벌의 독재가 절대선이고 거기에 반기 드는 노동자나 빈민이 다 나라를 망치려는 악의 세력이라고 믿게 될 젊은이는, 정권·재벌공화국 반대자에 대한 테러 행위도 얼마든지 '애국'으로 착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일 해석으로 진리 펴는 교과서, 민주주의에선 있을 수 없는 일"

- 러시아에서도 2013년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사 국정 교과서 추진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한국 상황과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르다고 보시는지요?
"러시아의 집권 안보 관료들에게 주된 경쟁 대상은 매판성(기자주 : 외국 독점 자본과 결탁해 사익을 탐하며 자국 이익을 해치는 특성)이 짙은 대자본이나, 그들과 유착한 자유주의 지식인들입니다. 거기에서 신 권위주의 정권의 역사 교과의 '유일 사상'은 반서방적 스탈린 찬양 등으로 강조됩니다. 한국의 경우 '유일 사상'을 만드는 자들은 해외 자본과 유착한 재벌들의 하수인입니다. 그러니까 저들의 '유일 사상'은 대체로 친미 반공, 대외 의존적인 주변부적 근대화론 정도입니다. 내용이야 각자 다르지만 신 권위주의적 경향은 러시아나 한국에서 아주 비슷합니다."

- UN에서도 '폭넓은 교과서 채택'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OECD국가 대부분도 교과서 국정화를 독재 가능성 때문에 거부하고 있는데요. 대외 이미지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국정제를 추진하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 대통령에게는 해외 여론보다 국내 지지 세력, 즉 군이나 정보 기관의 관료, 무엇보다 재벌 등의 의견은 중요합니다. 박 대통령의 국내 지지자 대부분은 일단 반(反) 주류적 세계관의 박멸을 원합니다. 이 때문에 획일화된 역사 교과서를 통해 친재벌 '유일 역사 사상'을 대중화·절대화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많은 시민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손팻말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 역사정의실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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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이 국정제를 주장하는 근거의 핵심은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는 집필진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것입니다(관련 기사: 김무성 "기업가 폄하하는 역사교사는 반애국적"
). 집필진의 이념적 기준을 문제 삼는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검정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주진오 선생이나 이신철 선생은 개인적으로도 저와 안면이 있는데, '좌파'라기보다는 한국 사학계의 중진이며 대표자라 할 만합니다. 이분들이 개진하는 의견은 대체로 학계에서 정설 내지 통설로 거의 굳어져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재벌 정권이 원하는 것은, 학계에서 거론되는 역사의 진리보다는 지배자들의 입맛에 맞는 조작품입니다.
   
- 다양한 관점의 역사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에 한 여당 의원은 8일 국정감사에서 '다양성과 편향성의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역사 교과서의 '다양성'은 어떻게 해석돼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학계에서는 역사 사실에 대한 진위 여부 등을 고증을 통해 확정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학자 개개인의 이념적 지향 등에 따라 해석은 조금씩 달리하는 게 정상입니다. 여러 해석들을 균형적으로 제공하고, 수요자에게 선택의 가능성을 주는 것이 바로 검·인정제입니다. 국정제는 (권력자들에게 유리한) 한 가지 '유일' 해석만으로 진리로 만든다는 것인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역사학자로서, 역사 교과서는 어떻게 연구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채택돼야한다고 보시나요?
"교사들과 사학계 연구자들이 한 팀을 이뤄 성장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 알아야 하는 사실들, 또 과거를 제대로, 균형적으로, 볼 줄 아는 눈을 키우는 서술의 방향을 같이 논의해 채택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런 여러 팀들의 교과서들이 검·인정 과정 거쳐 자유 경쟁하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예컨대 유신 시절의 산업화 사실도 가르쳐야 하지만, 동시에 그 산업화에 민중이 어떤 대가를 치르며 다수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는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편입이 주는 장·단점이 무엇인지 공평하게, 균형적으로 말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가 그런 균형을 잡지 못할 것은 이미 거의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국정교과서, #박노자, #박근혜, #극우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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