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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국방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을 옆자리로 불러 함께 앉아 보고받고 있다.
▲ 김무성 옆자리 앉은 유승민 지난 8월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국방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을 옆자리로 불러 함께 앉아 보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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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당내 주류 세력인 '비박'을 등에 업고 최대 계파의 수장인 듯 보였지만 그는 승부사가 아니었다. <중앙일보>의 칼럼 제목처럼 그는 '부잣집 도련님'처럼 상대가 세게 나오면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상해 개헌발언 때도 그러했고, 지난 6월 말 유승민 파문 때에도 그러했고, 이번에도 그는 이미 그러했다.

이번 갈등은 차기 총선의 공천권, 즉 의원들의 '밥줄'이 달린 사안이기 때문에 과거와 다르게 결연함을 보여줄 것으로 많은 전문가가 예상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과거와 똑같았다. 물러서기에 바빴다. 사안이 중대했던 만큼 그의 물러섬이 많은 '우군'들에게는 허망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김 대표가 노출시킨 치명적 약점, '당 대표직'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지난 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강력한 어조로 '친박'을 비판하고 나섰다. <매일신문> 10월 8일자
▲ 유승민의 귀환 "저항하겠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지난 7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강력한 어조로 '친박'을 비판하고 나섰다. <매일신문>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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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많은 말을 했다. 서청원 의원이 지난 5일 최고위원회 자리에서 "김 대표가 너무 여론몰이 자주 한다"고 말하며 공격했을 정도다. 이번 공천제도 관련해서 그가 했던 말의 성찬 중에 지켜진 것이 과연 무엇이 있었던가.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기에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정치생명을 걸었다'던 결연함을 지켜낼 배포와 전략이 없었다. 더 이상 '안심 번호'는 논의 주제도 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우선공천제'가 도입됐다. 공천기준도 추가 협상이 남아 있긴 하나 '당원 50%+여론조사 50%'가 유력하다. 현역 의원 대상의 '컷오프'도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우회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달 말 야당대표와 전격적으로 합의한 '안심 번호 국민공천제'도 물 건너갔다. '비박'의 '물러서지 말라'는 열망도 수용하지 못했다. 당 내외 지지세력을 실망하게 한 그가 지킨 것은 단 하나, 그의 '당 대표직'이었다. 단지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는 조금씩 양보했던 것인가.

그가 국민공천제를 관철할 생각이 있었더라면 많은 방법이 있었다. 의원총회에서 '국민공천 vs. 전략공천' 안건으로 표 대결을 벌였을 수도 있다. '청와대는 공천에서 빠지라'고 주장하며 당무 거부에 나섰을 수도 있었다. 국민공천을 주제로 당 대표직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벌일 수도 있었다. '친박'이 장악한 최고위원회에서 서청원, 김태호 등이 사퇴해 지도부가 와해 된다면 전당대회를 개최하고 재출마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행동에 나서지 않았고 어느 순간 '친박'과 '비박' 모두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친박'으로서는 쉽지 않은 존재이긴 하나 결정적인 순간에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해 '친박'에 힘을 실어주는 존재다. 만일 당-청 갈등 속에서 지도부가 와해하고 새로운 전당대회를 통해 유승민 의원 같은 강성 '비박'이 대표라도 된다면? 최악보다는 '차악' 개념으로 친박 입장에서는 그가 필요한 상황이다.

'비박'의 입장이 더욱 궁색하다. 이번에 입증된 김 대표의 '전투력'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이 '결코 물러서지 마시라'는 문자를 김 대표에게 보냈지만, 그는 문자만 노출하고 결국 물러섰다. 그가 지금 '비박'을 다독일 유일한 무기는 '공천학살만큼은 막겠다'는 약속뿐인데, 노력과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약속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국민공천제'가 바로 그러했다.

'저항'하겠다고 목소리 높인 유승민, 독자행동에 나서나

<한겨레> 10월 9일자
▲ 김무성-유승민 손 잡을까? <한겨레> 10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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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가 맥없이 물러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지난 7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읊조리며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유승민 의원이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배신의 정치'를 하는 인물로 규정되며 '친박'으로부터 거센 사퇴압박을 받고 결국 물러난 이후 그는 언론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던 그가 3개월여 만에 기자간담회를 하고 첫 일성으로 '저항'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난 7일 대구에서 기자들을 만난 유 의원 발언의 핵심은 '가만히 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요약된다. 그는 "또다시 힘으로 밀어붙이고 공천 학살이 이뤄지면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하고 뜻을 같이했다고 해서 부당한 압력이나 차별을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초선 의원들이 원하면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며 심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대구 동구을 지역주민들은 유 의원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지율도 높고, 현역의원 '재신임지수'도 40.9%에 달했다. 다른 대구지역 의원들의 '재신임지수'는 20%대다. <영남일보> 10월 8일자
▲ 지역 민심은 "유승민 잘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라며 심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대구 동구을 지역주민들은 유 의원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지율도 높고, 현역의원 '재신임지수'도 40.9%에 달했다. 다른 대구지역 의원들의 '재신임지수'는 20%대다. <영남일보>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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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의원의 발언 중 '저항'이라는 단어와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유 의원의 표현에는 '당 지도부와 협의하여' 등의 수식어도 없다. 그는 이미 말로 저항한 셈이다. 자신을 도와준 대구지역 초선 국회의원 7명의 공천을 주제로 하면서 나온 얘기인데 이들이 공천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유 의원은 행동으로 저항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와 차별점이 보이는 대목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시점'이다. 유 의원이 날 선 표현으로 존재감을 나타낸 시점이 묘하다. 그는 이미 김 대표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다. 지난 9월 30일 청와대 관계자가 나서서 안심 번호 관련 '5 불가론'을 제기했을 때 침묵했던 그가, 같은 날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친박과 비박이 격렬하게 붙었던 현장에서도 존재감을 나타내지 않았던 그가 목소리를 높인 시점은 왜 전투가 끝나가는 시점이었을까.

'김 대표 버텨라'고 말한 유승민, 'KY라인'은 재건될 수 있을까

<JTBC> 10월 8일자
▲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유승민 의원 <JTBC>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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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유 의원은 김 대표에 대해 자주 입을 열었다. 그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공천 룰에 대한 입장은 청와대보다는 김 대표에 더 가깝다"며 "다만 지금은 김 대표 스스로 버텨야 한다. 지켜보고 있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9일 자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유 의원은 "김 대표가 버티면서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생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은 물러서면서 주변에 '도와달라'고 한다면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김 대표에게 일관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버티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미 김 대표는 버텨내면서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없다. 안심 번호, 국민공천제, 전략공천 불가, 공천룰, 공천룰 협의기구 인성 등 어느 하나도 자기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유 의원 단어로 바꾸면 김 대표는 버텨내지 못했다.

지금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면 유 의원은 김 대표를 도울 이유와 명분이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유 의원이 본격적으로 청와대와 비박을 상대로 행동에 나서고 '비박' 의원들이 유 의원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김무성 대표만 무력화시키면 공천경쟁에서 승리할 줄 알았던 '친박'으로서는 유 의원의 등장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까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 '유승민 변수'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비박'에게는 맥없이 밀리는 김 대표를 대신할 새로운 희망이 생겨났다.

친박의 긴장과 비박의 희망, 이는 유승민 의원이 한 몇 마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 의원이 가지는 말의 힘은 지난 6월 말 유 의원이 보여준 진정성에 기인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김 대표가 보여주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김무성, #유승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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