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홀로 휴가>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첫 데뷔한 조재현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인근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재현 "과연 결혼 생활이 행복한지 물었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가정이 소중한 것도 알고, 지켜야 한다는 것 또한 알지만 근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의문 때문에 영화를 찍게 됐다"고 설명했다.

▲ 부산에서 만난 조재현 '감독' 배우 조재현이 첫 장편 연출작 <나홀로 휴가>를 들고 감독으로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인근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조재현을 두고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순간 난감했다. 본업인 배우로 불리는 게 당연하지만 자신의 첫 장편 연출작 <나홀로 휴가>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고, 동시에 지난달까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동분서주했던 그 아닌가.

바쁘고 정신없을 거라 예상했지만, 지난 5일 부산 해운대 모처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한층 여유로워 보였다. 인터뷰 중, 모교인 경성대학교에서의 강의 건으로 전화가 몇 차례 울려 양해를 구하며 받다가도 금세 영화 얘기에 심취했다. 흔히 말하는 '멀티가 가능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를 분석하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간 맡아온 역할을 통해 보고자 했다. 일단 영화 행정가 조재현. 올해로 7회째를 맞았던 DMZ영화제의 시작과 성장을 함께했고 '배우가 과연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을 수 있겠냐'라는 세간의 우려와 편견을 깼다. 이 분석에 그도 웃으며 스스로도 "나름 건강하게 영화제를 잘 키워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 강의를 비롯한 최근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감독 데뷔까지 한 조재현. 그와의 인터뷰 도중 전화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학교 강의를 비롯한 최근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감독 데뷔까지 한 조재현. 그와의 인터뷰 도중 전화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 유성호

멀티가 가능한 사람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부산국제영화제를 위시해 우리나라엔 여러 영화제가 존재한다. 이 중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가 모이는 장이 된 DMZ영화제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자리를 잡았다는 평이다. 말 그대로 건강한 영화제를 위해 내세운 원칙이 '그 어떤 외부의 간섭도 배제하면서, 나름의 자생력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영화제는 좋은 영화를 발굴해 상영하는 게 기본이다. 스무 돌을 맞은 부산영화제에 참가하면서 조재현은 이에 더해 영화제의 또 다른 역할을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이번 행사를 축하하면서 그는 한국영화 회고전이나 한국영화의 밤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재현은 "1960년대 감독님들을 재조명해서 '디렉터스 체어'를 유족에게 선물하는데 참 좋았다"며 "외형만 키워나가는 게 아닌, 이처럼 한국영화의 뿌리를 찾는 부산영화제의 시도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큰 영화제의 특별한 행사가 부러울 법도 하지만 DMZ영화제가 내세울 게 있으니, 바로 지자체와의 협력관계다. 지난해 부산영화제가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다이빙벨> 상영 이후 부산시의 지도 점검을 받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 삭감 등으로 외압을 받은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를 두고 조재현은 "외압 논란이 있을 땐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영화제가 겪었던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부산시장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가정 하에 내가 그 분(서병수 시장)의 측근에게 물었던 게 있다. 시장님이 혹시 재선, 삼선할 의지가 있는지 말이다. 있다고 하더라. 내막은 잘 모르지만 시장으로서 혹은 청와대 압력이든 뭐든 다른 이유로 그 분이 영화제를 건드릴 수는 있다. 근데 그 이상으로 뭔가를 바꾸려 한다면 이 시대를 역행하는 거니까 재선에 성공하시려면 (불거진 논란 등의)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 성향이 달라서 정치인이 어떤 행사에 살짝 관여는 할 수 있겠지만 의지로 밀어 붙여서 흔든다는 건 분명 역행이지. 올해 초였나, 시장님 좀 한 번 만나게 해 달라고도 했었다. 차 한 잔 하면서 얘기하고 싶었다. 이후 강수연 위원장이 뽑혔고, 지금은 어느 정도 마무리는 잘 된 거 같다."

다큐는 좌파?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열린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기자회견 현장. 왼쪽부터 전성권 프로그래머, 조재혀 집행위원장, 배우 유승호, 채수빈, 남경필 조직위원장

올해로 7회째를 맞은 DMZ국제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조재현은 "나름 건강하게 영화제를 잘 키워온 것 같다"고 자평했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열린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기자회견 현장. 왼쪽부터 전성권 프로그래머, 조재현 집행위원장, 배우 유승호, 채수빈, 남경필 조직위원장. ⓒ DMZ국제다큐영화제

문제가 됐던 부산영화제의 <다이빙벨>은 사실 DMZ영화제의 주력인 다큐멘터리 장르다. 조재현은 다큐에 대해 "정치-사회 분야의 모순을 소재로 비틀어보고 뒤통수 때리는 것"이라며 "어느 한쪽 편만 들어선 안 된다"고 정의했다.

"다큐라고 하면 흔히 말하는 정부나 사회를 비판하는 '좌파 성향'이 강하다고들 하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정부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요는 정치인들에게 영화제가 휘둘리면 안 된다는 거다. 예전부터 여당 성향의 도지사 때 오히려 다큐멘터리 지원을 잘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DMZ영화제 조직위원장은 경기도지사가 맡는다. 김문수에 이어 현재는 남경필 도지사가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기자 주)

진보 성향이 강한 도지사 때 다큐가 활발하면 오히려 색깔론에 휩싸이기 쉽다. 적어도 지금까지 영화제를 해올 수 있었던 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진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온 결과다. 나 역시 작품 지원이나 심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심사위원들에게 맡긴다."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현재 DMZ영화제는 아시아권에서 인정받으며 성장세다. 조재현은 "자비를 털어서 우리 영화제에 피칭(제작을 지원받기 위한 작품 설명회)하러 오는 영화인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소재나 분량에 상관없이 지원받을 수 있는 행사라는 소문이 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다큐영화제에선 15분 분량의 단편 다큐 <편지>가 다른 장편을 제치고 한국 경쟁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배우로서, 그리고 한 영화제의 행정 책임자로 역할을 다해 온 그는 무엇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있진 않았다. "창작이 등산은 아닌 만큼 얼마나 높이 올라가느냐보다는 주어진 바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치면 조재현의 행보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조재현이 내놓은 작품들과 DMZ영화제가 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나홀로 휴가>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첫 데뷔한 조재현이 지난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출연 배우들과 레드카펫을 걸으며 입장하고 있다.

영화 <나홀로 휴가>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첫 데뷔한 조재현이 지난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출연 배우들과 레드카펫을 걸으며 입장하고 있다. ⓒ 유성호

"영화계 승자 독식 구조 심각"

인터뷰를 끝낼 찰나, 이 말은 꼭 해야겠다며 그가 꺼낸 주제가 바로 한국영화의 배급 시스템 문제였다. 이른 바 승자 독식 구조, 혹은 독과점 구조가 영화 생태계엔 좋지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조재현은 경기영상위원회와 메가박스 등이 주체가 된 G시네마를 언급하며 말을 이어갔다. G시네마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다양성영화 상영을 위한 극장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이걸 위해 경기권 메가박스 몇 개의 1년 운영권을 사놨다. DMZ다큐영화제에서 심사한 작품을 상영할 수 있게 한 거지. 내심 이런 제도가 전국의 각 영상위원회로 확산되길 바랐는데 잘 퍼지진 않더라. 이번에 직접 독립영화를 찍어보니까 현실이 참담했다. 1년에 약 200편 정도의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데 개봉하는 건 그 중 10편 안팎이더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관객과 만날 수조차 없는 거다.

상업영화의 스태프 구조도 문제다. 미안한 얘기지만 일하는 사람만 일한다. 배우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 스태프나 감독은 하던 사람만 투자를 받고 일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독립영화계는 100개의 영화가 각각 저마다 팀이 있다. 누군가의 독식이 아니라는 거다. 자기 팀을 몇 개씩 운영하면서 작품을 독식하는 상업영화 스태프 문화는 결국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들게 한다. 힘이 빠져서 영화를 포기하는 일도 있다. 영화인 씨앗이 결국 마르는 셈이다."

*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②] 조재현 탐구생활: 김기덕에게 혼난 왕초보 감독

 영화 <나홀로 휴가>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첫 데뷔한 조재현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인근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재현은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 예산 삭감 문제와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요구 등 외압 문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다큐에 대해 "정치-사회 분야의 모순을 소재로 비틀어보고 뒤통수 때리는 것"이라며 "어느 한쪽 편만 들어선 안 된다"고 정의했다.

▲ "독립영화 현실 참담" 조재현은 한국영화의 배급 독과점 문제를 언급하며 "1년에 약 200편 정도의 독립영화가 만들어지는데 개봉하는 건 10편 안팎"이라고 지적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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