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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북천면 코스모스밭에서.
 하동 북천면 코스모스밭에서.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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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고단한 삶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인생길의 쉼표와 같은 것. 그 여백의 시간을 통해 우리들은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더더구나 선들선들한 바람과 예쁜 하늘을 한껏 내어 주는 가을 여행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으로 팍팍해진 마음을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이며 소소한 행복을 맛보게 해 준다.

지난 3일 오전 10시 10분께 창원에 사는 지인들과 함께 봉명산 다솔사(경남 사천시 곤명면)를 향해 길을 나섰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가을 들녘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열린 차창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연신 내 머리카락을 신나게 흔들어 댔다.

다솔사 절집서 꼭 들러야 하는 건물은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던 요사, 안심료.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던 요사, 안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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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찹쌀을 백련잎에 싸서 쪄낸 연잎밥이 맛났다.
 찹쌀을 백련잎에 싸서 쪄낸 연잎밥이 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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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가 되어 배도 출출하고 해서 우리는 다솔사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한 식당으로 들어가 채식연잎밥정식을 먹었다. 찹쌀을 백련잎에 싸서 쪄낸 연잎밥에 콩불고기, 당귀잎장아찌, 새송이버섯, 야채춘권 등 여러 가지 반찬이 나왔다. 구수한 검은콩 막걸리도 한잔 곁들여 마신 데다 맛난 점심을 하고 나니 기분이 더 좋았다.

신라 지증왕 4년(503)에 연기조사가 세웠다는 다솔사는 처음 영악사로 불렸다 한다. 그러다 선덕여왕 때 다솔사로 개칭되었다가 그 후 한동안 영봉사로 불렸고 신라 말에 이르러 도선국사에 의해 다솔사란 이름을 다시 얻게 되었다.

정겨운 돌계단을 오르면 대양루(경남유형문화재 제83호)가 나온다. 조선 영조 24년(1748)에 지은 건물로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거나 절의 행사에 사용하는 도구나 그릇을 보관할 때 이용하던 곳이다. 우리는 대양루 왼쪽으로 돌아 중심 불전인 적멸보궁 쪽으로 걸어갔다.

   다솔사 적멸보궁. 와불 뒤편으로 낸 창에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 비친다.
 다솔사 적멸보궁. 와불 뒤편으로 낸 창에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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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솔사 부처님 진신 사리탑. 1978년 2월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었다.
 다솔사 부처님 진신 사리탑. 1978년 2월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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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에는 와불이 모셔져 있는데, 와불 뒤편으로 낸 창에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 비치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아마 적멸보궁에서 기도드리면서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게 창을 낸 것으로 여겨진다. 1978년 2월 대웅전 삼존불상 개금불사 때 후불탱화에서 108과의 사리가 발견되어 법당 뒤에 사리탑을 만들어 봉안했다.

이 절집에서 빠뜨리지 말고 꼭 들러야 하는 건물은 안심료이다. 안심료는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던 요사이다. 승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1919년 3‧1독립선언서를 발표했던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언서에 추가된 공약 삼장을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심료 마당에서.
 안심료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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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는 일제 강점기 때 불교계 항일 비밀결사 만당(卍黨)의 근거지로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만당 주도자들은 일제의 식민불교정책에 대항하면서 불교 혁신과 항일운동을 전개했는데, 그들의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수로 추대된 한용운의 역할에 대해서도 상반된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용운이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안심료 마당에서 개를 만난 일도 기억에 남는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내가 절집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개를 키워 주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유기견과 유기묘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래서 4년 전부터 유기견과 유기묘들을 돌보는 사설보호소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병주문학관 거쳐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코스모스밭으로

   코스모스꽃이 가을을 이쁘게 색칠하고, 가을은 우리들 마음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코스모스꽃이 가을을 이쁘게 색칠하고, 가을은 우리들 마음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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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당 최범술 스님의 영향으로 우리 근대 차 문화의 산실이기도 한 다솔사를 뒤로하고 코스모스‧ 메밀꽃축제 폐막을 하루 앞둔 하동 북천면으로 떠났다. 꽃단지 쪽에는 주차 공간이 없을 정도로 너무 복잡해서 인근에 있는 이병주문학관(경남 하동군 북천면 이명골길)을 먼저 구경하기로 했다.

이병주문학관은 하동 출신인 나림 이병주 작가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마침 '2015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행사로 인해 여기도 사람들이 복작복작했다. 그래도 이내 행사가 진행되어 참여자 대부분이 강당으로 들어가 조용한 편이었다.

   '2015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행사가 개최되고 있던 이병주문학관에서.
 '2015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 행사가 개최되고 있던 이병주문학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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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주문학관 전시관
 이병주문학관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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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은 작품 소개 글과 함께 그가 걸어온 생애와 80여 권의 작품을 남긴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게다가 이 문학관은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적격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거닐기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코스모스 꽃단지에는 오후 3시가 훨씬 넘어 도착했다. 얼마 전 비가 내려서 그런지 코스모스가 꺾인 채 이리저리 누워 있어 몹시 아쉬웠지만 코스모스밭에서 연인끼리, 가족끼리 정답게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여기저기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환호가 터졌다. 얼굴도 웃고 있고 목소리도 즐거움이 배어나고, 몸짓도 사랑이 넘쳐흘렀다. 코스모스꽃이 가을을 이쁘게 색칠하고, 가을은 우리들 마음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북천역에서.
 북천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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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빈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 오규원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코스모스역인 북천역으로 이동했다. 철길 따라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기차역은 그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북천역에도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의 삶이 늘 이렇게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박한 꽃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세상만사가 마음 상태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리라. 오규원의 시처럼 우리에게는 마음의 빈자리가 필요한 것 같다. 


태그:#한용운,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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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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