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가 쿠웨이트의 돌풍을 잠재우며 2차예선 통과의 9부 능선을 넘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8일 쿠웨이트시티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쿠웨이트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G조 4차전에 고전 끝에 1대 0으로 이겼다. 경기전까지 쿠웨이트와 나란히 3승을 기록 중이던 대표팀은 무실점 4연승으로 G조 단독 선두자리를 사실상 굳혔다.

점수차에서 보듯이 쉽지 않은 경기였다. 한국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손흥민-이청용-이정협-김진현 등 다수의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으로 결장하며 전력에 차질을 빚었다. 전반 12분 구자철의 선제골이 터지며 이른 시점에 리드를 잡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후 경기 내용에서는 오히려 소극적인 모습으로 쿠웨이트에게 몇차례 위험한 반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4-2-3-1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지난 라오스-레바논전에서 역삼각형 미드필드진을 운용하는 공격적인 4-1-4-1를 선택했던 것과 비교하면 신중한 전술이었다. 그만큼 쿠웨이트의 역습을 경계하면서 원정에서 반드시 승점 3점을 따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부상으로 결장한 손흥민과 이청용의 측면 자리에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구자철과 남태희를 기용했다. 중앙에 포진한 권창훈까지 처진 스트라이커 성향의 2선 공격수 3명을 동시에 기용하며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스위칭 플레이를 기대한 부분이다. '플레이메이커' 기성용은 정우영과 함께 중원에서 더블 볼란치를 형성하며 직접 공격에 가담하기보다 볼배급과 완급 조절에 주력했다. 슈틸리케호에서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박주호를 다시 측면 풀백으로 복귀 시킨 것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슈틸리케 감독의 포지션 이동이 결국 결승골의 밑바탕이 됐다. 지난 시즌까지 마인츠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독일파' 박주호와 구자철이 합작골을 만들어냈다. 12분 왼쪽 측면에서 올려준 박주호의 크로스를 구자철이 문전으로 쇄도하며 헤딩골을 터뜨렸다. 박주호와 구자철 모두 최근 독일에서 나란히 이적 후 좋은 경기력을 이어가고 있는 흐름이 대표팀에서도 계속됐다.

선제골 넣고 끌려가는 경기

하지만 선제골 이후의 행보는 9개월 전이던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 조별리그 때와 비슷했다. 한국은 선제골을 넣고 나서 오히려 경기 흐름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쿠웨이트에 주도권을 더욱 내주고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초반부터 최전방에서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구자철과 권창훈, 남태희 등 측면 공격수들이 이날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며 경기 종료까지 쿠웨이트를 압박했고 기성용도 이날은 공격 가담을 최대한 자체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공격력 면에서는 손흥민과 이청용의 공백이 확실히 느껴졌다. 한국도 후반 몇 차례 추가골의 기회는 잡았지만 마무리 능력의 부재가 아쉬웠다. 일단 공격과정에서부터 수비에서 공격으로 다시 전환할 때 아군 진영의 첫 패스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고 끊기는 장면이 많았다. 이는 곧바로 쿠웨이트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공을 잡았을 때 스피드와 돌파력으로 헤집어줄 수 있는 측면 공격수의 부재도 두드러진 대목이다.

수비의 화룡점정은 김승규였다. 아시안컵 쿠웨이트전 당시 김진현이 있었다면 이번엔 김승규가 승리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김진현의 공백을 틈타 주전 자리를 꿰찬 김승규는 위기마다 동물적인 선방 능력으로 실점 위기를 벗어났다. 김승규가 아니었다면 1골 이상을 내줘도 이상하지 않았을 장면들이 이어졌다.

후반 17분 첫 번째 교체카드로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을 투입한 것은 다소 이른 시점이었다. 그만큼 슈틸리케 감독이 실리지향적인 축구를 추구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첫 골 이후 추가골이 좀처럼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 남태희를 빼고 한국영을 보강하며 끝까지 실점을 막는 데 더 치중했고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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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들어 체력 저하... 자주 바뀌는 수비 조합도 문제

물론 냉정하게 봤을때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다. 한국 선수들은 후반 20분이 넘어가며 확연한 체력 저하를 보였다. 쿠웨이트가 약하기는 했지만 실점하지 않은 것은 사실 행운에 가까웠다.

매 경기 자주 바뀌는 수비조합은 좋게 보면 선수층이 고르고 두터운 것이지만 나쁘게 보면 안정감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불안요소로 꼽히는 오른쪽 풀백에 본업이 센터백인 장현수로 대체하는 실험이 3경기째 계속되고 있다. 약팀을 상대로는 무난했지만 확실한 대안이라 되기에는 아직 불안해 보인다.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되고있는 석현준 역시 리그에서의 물오른 골감각에 비하여 연계플레이를 중시하는 슈틸리케호에서는 적응이 더 필요해 보인다. 후반 교체 투입된 지동원 카드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다. 최종예선에서 더 강한 팀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2차예선에서의 연승 행진과 무실점 행보에 섣불리 자만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슈틸리케호가 경기를 거듭하면서 갈수록 '이기는 축구'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슈틸리케호는 이날 쿠웨이트전까지 15승3무3패를 기록했고, 36골을 넣는 동안 실점은 8골밖에 내주지 않았다.

지난 1월31일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 패배(1-2) 이후로는 10경기 7승3무의 파죽지세다. 이 기간 대표팀은 단 2골만 내주고 있으며 동아시안컵부터 최근 A매치 6경기 연속 무실점의 완벽한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명분(세대교체)와 실리(승리)의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나가고있는 슈틸리케호의 현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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