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한국시간) 쿠웨이트시티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한국 대 쿠웨이트 경기. 구자철이 첫골을 성공시킨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9일 오전(한국시간) 쿠웨이트시티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한국 대 쿠웨이트 경기. 구자철이 첫골을 성공시킨 뒤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습의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 전 레바논 원정 경기처럼 더 많은 골을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추가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승점 3점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었다. 감독은 끝까지 철저하게 실리 축구를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내년 3월말까지 이어지는 2차 예선 일정 중 이제 절반이 끝났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지난 8일 오후 11시 55분 쿠웨이트 쿠웨이트시티에 있는 S.C.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G조 쿠웨이트와의 원정 경기에서 구자철의 선취골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1-0으로 이겨 4전 전승(14득점 0실점)으로 1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흔히들 승점 6점짜리 경기라고 일컫는 바로 이 경기에서 가장 귀한 것을 얻어낸 셈이다.

한방에 끝내다

포르투갈 프로축구 비토리아 FC에서 물오른 득점 감각을 뽐내고 있는 석현준을 맨 앞에 두고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슈틸리케호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들의 자리에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과 남태희(레퀴야)를 각각 내세웠다.

그런데 상징적인 포메이션만 그렇게 둔 것이지 손흥민이나 이청용이 뛸 때처럼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부담을 주는 경기 운영을 피했다. 한 마디로 구자철과 남태희에게 빠른 템포의 측면 드리블을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 더 집중하며 공 점유율을 높이는 전술을 택했다. 홈팀 쿠웨이트에게 끌려가지 않으려는 경기 운영 의도가 돋보였다.

측면 공격으로 쿠웨이트 수비수들과 직접 부딪치는 임무는 주로 포백의 측면 풀백들(박주호, 장현수)에게 맡겼다. 이 흐름을 잡고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선취골을 얻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경기 시작 후 딱 12분 만의 일이었다.

가운데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온 권창훈의 롱 패스를 받은 왼쪽 풀백 박주호가 쿠웨이트 수비수 1명을 따돌리며 올린 왼발 크로스가 구자철의 이마에 제대로 걸렸다. 바로 앞에서 체격 조건 좋은 골잡이 석현준이 다른 수비수들의 시선을 충분히 유도했고 그 뒤를 구자철이 자리잡고 이마로 끝낸 것이다.

선취골이자 결승골의 주인공 구자철은 후반전에 더욱 노련한 경기 운영 능력을 뽐냈다.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였지만 속도를 내는 무리한 드리블을 시도하지 않고 부드러운 연계 플레이로 공간을 누빈 것이다. 구자철은 물론 반대쪽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은 남태희까지 드리블을 최대한 자제 시키고 연계 플레이에 치중하라고 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손흥민이 보면 서운하다고 느낄 정도로 색깔이 다른 부분 전술을 준비한 셈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렇게 드리블보다는 패스 플레이를 통한 공간 점유를 통해 상대 팀 쿠웨이트 선수들의 조급증을 유발하기로 한 것이다. 쿠웨이트가 후반전 측면 크로스를 통해 위협적인 공격 장면을 몇 차례 만들며 86분에는 한국 골문 오른쪽 기둥을 강하게 때리기까지 했지만 그 이상의 소득은 없었다. 축구장의 조급증은 섬세한 마무리를 못 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슈틸리케 감독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우리 선수들에게 충분히 주지시킨 것이다.

네 장의 경고 카드는 '옥의 티'

쿠웨이트의 나빌 말룰 감독은 0-1로 뒤진 상태에서 공격적 결단을 내렸다. 56분에 간판 골잡이 유세프 나세르를 들여보낸 것이다. 그에게 한국 수비수들의 뒷공간으로 빠져들어가는 임무를 부여했고 실제로 쿠웨이트의 후반전 공격이 위협적으로 전개되었다.

교체 선수 유세프 나세르는 85분에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한국 골문을 노렸다. 골키퍼 김승규가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쳐내며 이 위기를 모면했다. 곧바로 골대 불운을 겪은 쿠웨이트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유세프 나세르의 공간 침투에 기대를 걸었다.

후반전 추가 시간에 쿠웨이트는 마지막 안간힘을 썼다. 90+2분에 한국의 교체 선수 지동원이 미드필드 지역에서 무리한 드리블을 하다가 공 소유권을 넘겨주었고 이는 곧바로 우리 수비 뒷공간이 열리는 심각한 장면으로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골키퍼 김승규가 과감하게 달려나와 유세프 나세르와 몸싸움을 걸어주었기 때문에 승점 3점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슈틸리케 감독이 손흥민과 이청용의 대체 선수 '구자철, 남태희'에게 무리한 측면 드리블을 시키지 않은 이유가 입증된 것이다. 어설픈 드리블을 시도하다가 공 소유권을 넘겨줄 경우 상대에게 역습 공간 패스 한방을 얻어맞을 위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리블보다 연계 플레이를 통해 공 점유 시간을 늘리는 실리 축구를 철저하게 준비시킨 것이다.

슈틸리케호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하지만 핵심 선수 네 명이 알리레자 파가니(이란) 주심으로부터 경고 카드를 받는 '옥의 티'를 남겼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상대 공격을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저지하는 정우영이 23분에 가로채기 과정에서 받은 노란 딱지는 약간 억울했지만 이후 센터백 김영권(47분), 미드필더 구자철(53분), 공격수 석현준(70분)이 차례로 받은 딱지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가장 까다로운 원정 경기(9월 8일 vs 레바논 3-0 승리, 10월 8일 vs 쿠웨이트 1-0 승리) 일정을 끝냈기에 다행이지 앞으로 남은 네 경기를 치르며 경고 누적 징계로 핵심 선수들 누구라도 뛰지 못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제 슈틸리케호는 오는 13일(화)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자메이카와의 친선 경기(평가전)를 치르며 한숨을 돌린 뒤 다음 달 12일 오후 8시 수원 빅 버드로 미얀마를 불러들여 예선 다섯 번째 경기를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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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예선 G조 경기 결과(8일 오후 11시 55분, 쿠웨이트 시티 S.C. 스타디움)

★ 쿠웨이트 0-1 한국 [득점 : 구자철(12분,도움-박주호)]

◎ 한국 선수들
FW : 석현준(76분↔지동원)
AMF : 구자철, 권창훈(88분↔이재성), 남태희(63분↔한국영)
DMF : 기성용, 정우영
DF : 박주호, 김영권, 곽태휘, 장현수
GK : 김승규
- 경고 : 정우영(23분), 김영권(47분), 구자철(53분), 석현준(70분)

◇ G조 현재 순위
한국 12점 4승 14득점 0실점 +14
쿠웨이트 9점 3승 1패 12득점 1실점 +11
레바논 6점 2승 2패 4득점 4실점 0
라오스 1점 1무 3패 2득점 14실점 -12
미얀마 1점 1무 3패 2득점 15실점 -13

◇ 한국 대표팀 다음 예선 일정(11월 12일 오후 8시, 수원 빅 버드)
★ 한국 - 미얀마
축구 월드컵 울리 슈틸리케 구자철 쿠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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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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