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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악법인 테러방지법으로 인해 7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안토니 찬드라(Anthony Chandra)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악법인 테러방지법으로 인해 7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안토니 찬드라(Anthony Chan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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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0일, 세 딸들과 집에 있던 안토니 찬드라(Anthony Chandra)는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테러조사국(TID, TerrorismInvestigation Division)에 의해 체포되었다. 테러조사국은 그녀를 테러방지법과 관련된 14개 사건의 용의자로 고소하였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15년 5월 11일, 7년 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그녀는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스리랑카에서 테러방지법(PTA, Terrorisom Investigation Division)이란 공권력에게 테러 용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거나 최대 18개월까지 재판 없이 구금하여 조사 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기나긴 내전을 통해 이 테러방지법을 1978년 공포하였다.

스리랑카의 소수민족인 타밀족(Tamil)의 완전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해온 반군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가 항복함으로써 내전이 종식되었지만 지금도 테러, 전쟁의 요소들이 있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국민들의 자유와 정상적인 법적 권한을 제한하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악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불어 정부가 이 테러방지법을 앞세워서 정부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데 사용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손상시키고 반대 의견을 가진 국민들을 사법부 보호 밖으로 내모는 등 정상적인 법의 지배를 파괴하고 있다.

2008년 8월 10일 저녁, 테러조사국은 테러 행위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찬드라의 남편, 칸나(Kanna)와 혐의를 뒷받침할 폭탄을 찾기 위해 찬드라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해외로 도주한 칸나와 폭탄 어느 쪽도 찾지 못하자 대신에 세 딸이 보는 앞에서 찬드라를 강압적으로 체포해 갔고 그녀 집에 있는 공문서도 모조리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 테러조사국은 찬드라의 집 일부를 부수기까지 했다. 찬드라의 아이들은 이날의 충격 때문에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감옥에서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감시 받는 삶

찬드라의 세 딸이 그림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찬드라의 세 딸이 그림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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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라가 석방되고 나서 세 딸과 가진 그림심리치료에서 둘째 딸이 그린 그림. 7년이 지난 후에도 엄마가 테러조사국에 납치되던 날 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찬드라가 석방되고 나서 세 딸과 가진 그림심리치료에서 둘째 딸이 그린 그림. 7년이 지난 후에도 엄마가 테러조사국에 납치되던 날 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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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아래 체포된 찬드라는 93일간 캔디(Kandy, 스리랑카) 경찰서에 구류되어 거의 매일 밤 취조를 받아야 했다. 테러조사국 직원들은 당시 두 살배기 딸을 들먹이면서 남편의 행방을 말하면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협박했으며 강압적으로 그녀에게서 군데군데 공백인 서류나 때로는 아예 백지에 서명을 받아냈다.

그 결과, 테러조사국은 치안판사재판소에 14개의 혐의로 그녀를 고소했고 후에 검찰 측은 그녀가 테러방지법 위반 사건 중 5개에 연루되어 있다 보고 캔디(Kandy, 스리랑카) 고등법원에 기소했다. 2015년 5월 11일에 열린 재판에서 마지막 혐의까지 모두 무죄판결을 받으며 7년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었다.

석방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찬드라를 만나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7년의 억울한 수감 생활 끝에 그녀는 다시 세 딸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그녀의 수감 생활은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정부는 그녀에게 많은 혐의들을 붙여 보석방 없이 7년의 감옥 생활을 하게 만들었고 그 많은 혐의들이 끝내 무죄로 밝혀졌음에도 이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잘못 인정, 또는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처음 테러조사국이 들이닥쳤을 때 빼앗긴 공문서들을 재발급받으려 할 경우 테러조사국에서 그녀의 석방을 알고 온갖 취조식의 질문들을 쏟아내거나 다시 테러조사국의 감시 아래 놓일 위험이 커 그마저도 어렵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 '테러조사국이 원한다면' 구류 기간 동안 그녀의 딸들을 앞세워 받은 협박들로 인해 마지못해 서명한 서류들과 테러방지법을 앞세워 언제든지 재구속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전과기록은 그 자체로 주홍 글씨가 되어 그녀의 새 출발을 어렵게 하고 있다. 남편의 행방은 여전히 알지 못하며 출소자인 찬드라는 직장을 잡기가 쉽지 않아 그녀의 수감 기간 동안 세 딸을 돌봐 준 시어머니가 지금도 일당 200루피(약 1700원)로 세 딸과 찬드라까지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실정이다. 2015년 스리랑카 평균 하루 생활비가 일인당 1250루피(약 만원)임을 감안 한다면 이는 다섯 식구에게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7년 전에 테러조사국에 의해 무너져 내린 집 일부는 여전히 고쳐지지 못한 채 남아있다.

찬드라씨의 7년,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찬드라(위에서 오른쪽)과 시어머니 그리고 당시 두살배기 였던 막내딸이 테러조사국에 의해 부서진 집 앞에 서있다.
 찬드라(위에서 오른쪽)과 시어머니 그리고 당시 두살배기 였던 막내딸이 테러조사국에 의해 부서진 집 앞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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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라(사진 맨 왼쪽)와 그녀의 막내딸 그리고 시어미가 집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7년 전 피해들을 보여주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찬드라(사진 맨 왼쪽)와 그녀의 막내딸 그리고 시어미가 집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7년 전 피해들을 보여주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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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공동체 생활 또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녀의 마을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테러방지법 아래 구속된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찬드라의 남편이 도망갔기 때문에 구속된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스리랑카 테러방지법에 의하면 테러용의자의 소재를 알 거나 도주를 도와주거나 은신처를 제공할 경우도 위법으로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그 비난 또한 역시 찬드라가 감수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수감된 주민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고 찬드라 혼자 석방이 되면서 수감자 가족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스리랑카에서 악법으로 자리 잡은 테러방지법은 찬드라에게만 잔인한 것이 아니다. 죄 없는 많은 스리랑카 국민들을 취조하고 감옥에 넣음으로써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있다. 행여 운이 좋게 무죄로 석방이 된다 하더라도 재구속의 두려움에 떨거나 감옥에 다녀왔다는 꼬리표를 달게 됨으로써 이전과 같은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더불어 공동체까지 와해시키고 있다.

악법도 법이라 했던가. 하지만 그 악법이 그저 정부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라면, 그래서 찬드라와 같은 국민들이 그 아래서 삶을 잃어버리고 있다면 그 악법은 법으로 인정하고 물러설 일이 아니라 없애고 나아가야 할 부분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볼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렸고 아이들은 아빠가 없는 상태에서 엄마도 잃어버려야 했어요. 하지만 그 7년을 그 어느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습니다. 과거의 7년을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내 현재와 미래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석방이 된 후에도 여전히 나는 재구속을 두려워하며 지내야 하죠. 내가 원하는 건 우리 가족이 완전히 그들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안전해졌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거예요"


태그:#스리랑카, #테러방지법,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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