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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마당을 비로 씁니다. 가을잎이 날마다 톡톡 떨어지니 날마다 아침이면 가을잎을 씁니다. 가을잎은 비질을 마친 자리에 새롭게 떨어집니다. 그렇다고 새로 떨어진 잎을 다시 쓸지는 않습니다. 하루 동안 떨어진 잎은 마당에 그대로 두고 바라봅니다. 바깥일이 바쁘다면 이틀이나 사흘, 때로는 이레쯤 가을잎을 마당에 그대로 두기도 합니다. 가을잎을 날마다 쓸면 마당은 깨끗해 보일 테고, 가을잎을 그대로 두면 가을내음을 더욱 짙게 느낄 만합니다.

비질을 마치면 모시잎을 뜯습니다. 가을에도 모시풀은 새롭게 돋습니다. 봄모시나 여름모시하고는 다른 가을모시는 봄하고 여름하고는 살짝 다른 냄새와 맛을 풍깁니다. 모시풀을 잘게 썰어 밥에 함께 넣고 끓이면 밥은 훨씬 반지르르하면서 고소합니다. 모시풀한테 둘러싸여서 살기 때문에 겨울이 찾아와서 모시풀이 모조리 떨어질 때까지 모시밥을 지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영월의 동강은 근래에 동강댐 반대운동 덕에 그 풍광이 수려하다는 사실이 새삼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오늘날 어라면의 래프팅을 비롯하여 자연관광지로 크게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름도 낯선 서강은 아직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17쪽)

4대강 사업으로 천연스런 강마을 정경을 많이 잃어버린 탓에 주청 강마을에 다다르면 누구나 이 안온한 풍광에 절로 가벼운 탄성을 발하며 잠시 머물다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23쪽)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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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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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님이 빚은 문화유산답사 이야기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 편>(창비,2015)을 읽습니다. 유홍준 님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문화유산답사'를 다닙니다. 한국에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한다면, 절집이나 산성이나 정자나 빗돌이나 기와집쯤 됩니다. 가까이는 일제강점기요, 조금 멀면 조선이고, 조금 더 멀면 고려이고, 한결 멀면 신라나 고구려나 백제쯤 됩니다.

문화유산답사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얼추 천 해까지 아우를 만하지만, 천 해를 아우르는 이야기보다는 오백 해나 삼백 해나 백 해 즈음을 아우르는 문화유산이 가장 많지 싶습니다. 남한강 둘레를 다닌 이야기책에 나오는 채석장이라든지 충주 곳곳에 있다는 역사문화공원은 모두 요즈음 '문화유산'입니다.

유홍준 님이 답사를 다닌다든지, 여느 사람들이 관광을 다닌다든지, 두 가지 자리가 있습니다. '사람 발길이 잦은 곳'하고 '사람 발길이 뜸한 곳'입니다. 사람 발길이 잦은 곳은 '관광지'이고, 사람 발길이 뜸한 곳은 '두메'나 '시골'입니다. 사람들은 관광지를 즐겨 찾아갑니다. 사람들은 두메나 시골은 거의 안 찾습니다. 관광지에서는 놀거리·먹을거리·즐길거리에다가 잠자리나 밥집이 골고루 있습니다. 두메나 시골에는 편의점은커녕 구멍가게나 마을가게조차 없고 잠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도시사람은 두메나 시골에 가서 '무엇을 하며 놀'거나 '무엇을 보며 즐기'거나 '무엇을 마주하며 생각을 살찌우'는가 같은 대목은 거의 알지 못합니다. 올레길은 걸어도 숲길은 못 걷고, 답사코스는 걸어도 여느 골목길은 못 걷습니다. 이런 흐름을 헤아린다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나들이 동무'로 삼을 만한 책입니다.

아, 전국을 포클레인으로 파헤쳐 버린 대한민국 천지에 이런 옛길의 잔편이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222쪽)

답사 다니면서 민폐나 관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창비 답사 때는 단양군청에 연락해 성신양회 채석장 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특청했다. (175쪽)

문화유산답사를 하려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른바 '사전 지식'이라고도 하는데, 역사책이나 인문책에 나온 지식을 먼저 알아두어야 비로소 문화유산답사를 할 만합니다. 지식을 먼저 갖추지 않으면 빗돌이나 절집을 보고도 아무것도 느끼기 어렵기 마련이에요. 지식이 있어야 알아보는데, 다시 말하자면 '아는 만큼 본다'고 하겠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찾아가거나 학자가 찾아가는 문화유산이란 무엇일까요? 오늘날 남은 문화유산은 무엇일까요? 지자체나 중앙정부가 다스리거나 가꾸려 하는 문화유산이란 무엇일까요?

문화유산을 살필 적에는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이 붙는 커다랗거나 뜻깊은 건물이나 유물을 살핍니다. 이러한 건물이나 유물을 짓거나 빚은 '여느 수수한 사람' 이야기는 살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옛책이든 오늘날 역사책이나 인문책이든, '큰 절집이나 건물을 짓도록 시킨 임금님이나 부자나 지식인' 이름은 알아서 이들 발자취는 적바림하지만, 정작 '집을 짓고 유물이나 장신구나 물건을 지은 장이'는 누구인지 이름조차 적바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달산성을 지은 시골사람 이름은 아무 데에도 없지요. 온달산성을 지킨 시골사람 이름도 어느 곳에도 없어요. 온달산성을 둘러싸고 땅을 부쳐서 곡식을 거두어 마을을 지킨 사람들 이름마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자체나 중앙정부는 '돈이 될 만한 것'을 찾아서 '돈을 들여서' 꾸미려 합니다.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이나 '마을에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즐길 만한 것'을 헤아리면서 '돈이나 품이나 마음을 들여서' 보듬는 손길은 아주 드뭅니다.

나는 부여에 작은 집을 짓고 주말이면 내려가서 지내는데 4월이면 봄꽃에 취하고 오뉴월이면 새소리 듣는 것이 큰 낙이다. 꾀꼬리와 휘파람새의 소리는 참으로 곱고 높고 아련하다. 낮에는 먼 산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가 짙은 향수를 일으키고, 밤새 우는 소쩍새는 애수의 감정을 절로 일으킨다. (83쪽)

우리가 무엇을 '본다'고 할 적에는 두 갈래가 있다고 느낍니다. 먼저, "아는 대로 본다"고 할 만합니다. 그리고, "사는 대로 본다"고 할 만합니다.

유홍준 님은 서울에서 살며 주말에는 부여 시골집에 깃드시는 듯합니다. 유홍준 님은 부여 시골집에 주말마다 찾아와서 지내는 동안 꾀꼬리와 휘파람새와 뻐꾸기와 소쩍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들 멧새가 지저귀는 노랫소리는 어떤 책에도 안 적힙니다. 아스라한 옛책에도 안 적히고, 오늘날 도감이나 사전이나 인문책에도 안 적힙니다. 멧새 노랫소리는 스스로 숲이나 시골에 깃들어 두 귀로 들어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숲이나 시골에서 살기에 비로소 '새소리'나 '새노래'를 알아차리지요.

마을 뒤쪽 골짜기와 멧길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커다랗고 긴 돌이 있습니다. '당간 지주'로 보이는 돌입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발길은 거의 없고, 나는 아이들하고 자전거마실을 하며 곧잘 이 앞을 다녀갑니다.
 마을 뒤쪽 골짜기와 멧길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커다랗고 긴 돌이 있습니다. '당간 지주'로 보이는 돌입니다. 이곳을 찾아오는 발길은 거의 없고, 나는 아이들하고 자전거마실을 하며 곧잘 이 앞을 다녀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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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리는 삼층석탑도 아름답지만 마을 자체가 정겹다. 여전히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농민들이 있다는 것이 여간 고맙지 않다 … 지금처럼 고향을 지키고 있는 농민들이 국토의 지킴이이고 무형의 문화유산 지킴이라는 생각을 나는 지금도 갖고 있다. (226, 228쪽)

문화유산답사는 '아는 지식'을 머리로만 가두는 정보로 삼지 않는다는 데에 뜻이 있다고 느낍니다. '아는 지식'을 두 눈으로 살피고, 두 귀로 들으며, 두 손으로 만지면서, 새롭게 맞아들이는 삶으로 삼기에 비로소 문화유산답사가 되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책만 읽어도 어느 고장에 어느 유물이나 유적이 있다는 지식이나 정보쯤 훤히 꿸 수 있습니다. 책상맡에서 인터넷만 살펴도 '문화역사 지식'은 박사님만큼 꿰찰 수 있어요.

문화유산답사를 다니는 까닭은 '책으로 얻는 지식'으로는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책으로만 얻지 말'고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배울' 때에 비로소 참다운 문화 지식이나 역사 지식이 된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문화유산답사를 다닌다고 느껴요.

가만히 보니 충주는 역사유적을 공원으로 많이 만들었다. 중앙탑공원과 관아공원이 그렇고, 탄금대공원이 그렇다. 역사유적을 보존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대작가의 조각품을 많이 설치한 조각공원이라는 인상이다. (332쪽)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 편>을 읽으면 앞선 문화유산답사기하고 비슷한 얼거리입니다. 여러 가지 책에 나오는 자료와 이야기를 많이 따옵니다. 아무래도 답사를 다니는 동안 '책에 나온 이야기'를 '코앞에서 눈으로 마주하'면서 다시 들여다보고 맞대면서 새롭게 헤아리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다른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굳이 이 답사기에 다시 옮겨서 싣거나 되풀이하기보다는, '온몸으로 마주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코앞에 있는 삶' 이야기를 더 넉넉히 답사기에 쓸 수 있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은행나무와 얽혀 마을 할배가 유홍준 님을 넌지시 나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하는데, 이런 생생한 목소리와 '마을 이야기'를 답사기에 담을 수 있으면 훨씬 돋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인지라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은 내가 답사객들에게 그것을 아쉬움으로 말하자 곁에서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던 동네 어른이 내 말을 가로채면서 나섰다. "이 은행나무가 수나무라는 건 맞는 말이여. 그래서 은행을 맺지 않는다는 것도 맞는 말이여. 그러나 이 은행나무가 있어서 사방 10리 안에 있는 은행나무 암컷 100여 그루가 실한 은행을 맺고 있으니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감. 서운키는 뭐가 서운하단 말이여!"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동네 신목에 와서 흠을 잡느냐는 호통이었다. (405쪽)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말하는데, 이 나라 정부와 지자체는 끝없는 개발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골 삶터를 마구 파헤칩니다. 4대강뿐 아니라 숲도 마구 헤집지요. 그러고는 이런 곳마다 시멘트를 들이붓거나 시멘트 구조물을 세웁니다. 앞으로 50년이나 100년 뒤에도 '시멘트 구조물'은 이 나라에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까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말하는데, 이 나라 정부와 지자체는 끝없는 개발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골 삶터를 마구 파헤칩니다. 4대강뿐 아니라 숲도 마구 헤집지요. 그러고는 이런 곳마다 시멘트를 들이붓거나 시멘트 구조물을 세웁니다. 앞으로 50년이나 100년 뒤에도 '시멘트 구조물'은 이 나라에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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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할배가 유홍준 님을 나무란 대목을 잘 살펴보면, 유홍준 님은 '몸으로 배우는 삶'을 느끼려고 문화유산답사를 다니지만, 막상 '책으로 얻은 지식'을 되풀이하는 몸짓에서 덜 깨어났구나 하고 느낄 만하리라 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해남은 해남이어서 사랑스럽고, 담양은 담양이어서 사랑스러우며, 영월은 영월이어서 사랑스럽습니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여서 사랑스럽고, 느티나무는 느티나무여서 사랑스럽지요. 암나무는 암나무여서 사랑스럽고, 수나무는 수나무여서 사랑스럽습니다.

오늘날까지 비바람에도 또렷하게 남은 빗돌은 이러한 빗돌대로 사랑스럽습니다. 비바람하고 햇볕에 바스러진 빗돌은 이러한 빗돌대로 사랑스럽습니다.

시골마을 할배는 '남의 동네 신목에 와서 흠을 잡느냐는 호통'을 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시골마을 할배는 '수나무인 은행나무는 수나무인 은행나무 결 그대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구나 싶습니다.

다만, 서운하다고 느끼는 마음은 나쁘거나 틀리지 않습니다. 서운한 마음은 그저 서운함이지요. 그런데, 예부터 짐승 앞에서조차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널리 알려진 옛이야기가 있어요. 소 두 마리를 본 어느 양반이 시골지기더러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느냐' 하고 물으니, 시골지기는 부랴부랴 논 밖으로 나와서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손사래치면서 귀엣말로 소근소근 속삭였다지요. 짐승도 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하면서요.

나무도 말을 다 알아듣습니다. 나무 앞에 서서 나무더러 "너는 수나무라서 서운해!" 하고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말한다면, 은행나무는 어찌해야 할까요? 수나무인 은행나무는 말라죽어야 할까요? 아닐 테지요. 은행나무도 사람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는 줄 알아야 합니다. 문화유산답사는 지식을 다시 살피는(재확인하는) 나들이가 아니라, 온몸으로 삶을 새롭게 마주하려는 '이웃걷기(이웃을 찾아서 걷는 나들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정산초등학교는 정말로 아담한 학교였는데 1995년에 마침내 폐교되고 지금은 어느 공장에 불하되었다. 학교 운동장 한쪽 화장실 건물 앞에는 거돈사를 알리던 덩치 큰 당간지주 한 짝이 심드렁히 누워 있다. 짝을 잃고 누워 있던 이 9.6미터의 긴 당간지주는 그동안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쉴 때면 20명 정도는 넉넉히 앉을 수 있는 의자 구실을 하여 윤이 반지르르하게 났다. (350쪽)

마을 어귀 빨래터에 물이끼가 끼면 막대솔을 어깨에 짊어지고 물이끼를 걷으러 나옵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에 물이끼가 끼면 막대솔을 어깨에 짊어지고 물이끼를 걷으러 나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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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낮에 두 아이를 데리고 마을 어귀 빨래터와 샘터를 치울 생각입니다. 어제 마을 앞을 지나가며 들여다보니 마을 빨래터에 물이끼가 꽤 많이 끼었습니다. 마을에 모두 일흔 여든 자신 할매와 할배뿐이니, 마을에서 가장 어릴 뿐 아니라 '이웃마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젊은이'로서 우리 식구가 늘 샘터·빨래터 치우기를 합니다.

우리 시골마을 빨래터는 얼마나 오래된 곳인지 잘 모릅니다. 시멘트로 틀을 잡은 지는 서른 해이든 마흔 해이든 될 수 있을 테지만, 한겨울에도 안 얼고 흐르는 골짝물 샘터요 빨래터는 아주 오랜 나날 고이 흐른 물줄기라고 느낍니다. 지역문화재로든 무슨무슨 문화재로든 이름이 오른 적이 없으나 언제나 곁에 두고 누리는 삶자리입니다.

빨래터를 치우면서 무척 오래되어 보드랍게 닳은 빨랫돌을 쓰다듬습니다. 아이들은 빨래터에서 물투성이가 되어 놉니다. 한겨울에도 옷을 잔뜩 적시면서 놉니다. 오늘날에는 시골에서 살려는 젊은이도 어린이도 거의 없으니, 빨래터에서 빨래를 할 사람도 없습니다만, 고작 스무 해쯤 앞서만 해도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집은 드물었기에 으레 빨래터를 썼습니다. 서른 해쯤 앞서라면 어느 집이든 이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곁에 있는 샘터에서 물을 길었어요. 마흔 해쯤 앞서라면 모든 집이 이 빨래터와 샘터에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이들도 여름 내내 이곳에서 놀았으리라 봅니다.

아마 수백 해도 아닌 수천 해를 이은 고즈넉한 시골살이요 시골노래요 시골놀이이자 시골일이고 시골사랑이라고 느낍니다. 유홍준 님은 "지금처럼 고향을 지키고 있는 농민들이 국토의 지킴이이고 무형의 문화유산 지킴이(228쪽)"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말마따나 이 나라와 이 땅과 이 삶터와 이 문화와 이 사랑을 지키고 가꾸고 돌보고 아끼는 투박하고 수수한 시골사람들 손길하고 발자취를 살가이 더듬는 문화유산답사로 이어갈 수 있기를 빕니다.

책에 나온 이야기는 책으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으니, 문화유산을 답사할 적에는 '책은 좀 덮고' 나서 '온몸과 온마음으로 껴안는 삶'을 마주하면서 사랑할 수 있기를 빌어요. 가을에 나락을 거두고 겨우내 새끼를 꼬던, 이러면서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두런두런 물려주던 시골 할매와 할배 숨결을 문화유산답사에서도 조촐히 나눈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 편>(유홍준 글 / 창비 펴냄 / 2015.9.15. / 1만8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유홍준 지음, 창비(2015)


태그:#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문화유산답사, #삶노래, #남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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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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