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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절망라디오> DJ 김성일씨
 팟캐스트 <절망라디오> DJ 김성일씨
ⓒ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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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라는 말이 시대적 화두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지옥'에 빗댄 일종의 조롱이자 농담이다. 고작 세 글자에 불과한 이 단어가 특히 절망한 20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대중적 공감을 일으키며 현 시대를 규정하는 말이 되어 간다. 헬조선하면 으레 따라붙는 '금수저, 흙수저'나 '죽창'같은 소재도 청년에게는 이미 일상어에 가깝다.

이런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름부터 '헬조선'스러운 팟캐스트 하나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퍼지고 있다. 시작된 지 한 달 남짓, 고정 청취자 수는 고작 1천 명을 조금 넘을 뿐이지만 파급력은 그 수준을 훨씬 웃돈다.

매회 클로징 멘트나 청취자 사연들을 재구성해 만드는 '카드 에피소드'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로 공유되며 조회 수 20만~100만을 기록한다. '노력하면 뭐든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위악적 콘셉트로 개최한 '달걀로 바위 깨기' 경기의 현장 사진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노 멘토링, 노 힐링, 노 답'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 팟캐스트의 이름은 바로 <절망 라디오>. 메인 DJ인 김성일과 페이스북 그룹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관리자 여정훈, 그리고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이끌어 화제가 되었던 대학생 용혜인씨가 함께 진행한다. 이 방송은 제목에 걸맞게 청취자의 절망적인 사연들을 소개하지만 슬로건처럼 어떤 멘토링도 해주지 않는 괴팍한 방송이다(☞<절망라디오> 바로 듣기).

때로 청취자의 사연에 해답을 내주기도 하지만 그 답이란 것이 대부분 엉뚱하기 그지없다. 할머니가 삼촌들에게만 솜이불을 덮게 하고 자기에겐 여름 이불을 덮게 한다는 청취자에게 "목화씨 반입을 시도해 보라"며 붓두껍을 선물로 보냈다. 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다가 점장에게 1시간 반 동안 외모 품평만 당하고 돌아온 청취자에게 '죽창'을 배송하려다 우체국에서 거절 당하기도 했다.

도대체 '헬조선'에 '절망 라디오'가 등장한 사연은 무엇일까? 항상 남의 사연을 읽어주기만 했던 <절망 라디오>의 사연을 듣기 위해 지난 5일, 기획자이자 메인 DJ인 김성일씨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만났다.

'노 멘토링, 노 힐링, 노 답' 슬로건에 숨겨진 뜻

 팟캐스트 '절망 라디오'
 팟캐스트 '절망 라디오'
ⓒ 팟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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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의 이름이 특이한데. 왜 절망을 강조하는 라디오인가?
"처음 기획을 시작할 때는 망한 사연들을 모아서 망한 사람에게 들려주는 팟캐스트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망함'을 확실하게 드러내려고 여러 이름을 생각해 봤는데,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가벼운 것도 싫어서 중간쯤을 고른 것이 '절망 라디오'였다."

- <절망 라디오>가 말하는 '절망'은 무엇인가?
"절망은 미래가 없는 상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 사회에 진입한 세대들은 미래가 없음을 확신하면서 절망한다. 돈 문제로 시달리거나 취업을 못 하는 상황 이외에도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은 더 광범위하다."

- 슬로건을 '노 답, 노 힐링, 노 멘토'라고 한 이유가 있나?
"가끔 택시나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끔 사연을 읽어주는 형식의 라디오를 듣게 되는데, 들을 때마다 묘하게 딴 세상 이야기 같다는 기분을 느꼈다. 뭔가 예쁘고 정제되어 있달까. 대체로 DJ가 청취자의 고민을 소개하고 조언을 해주는데, 일상에서 있을 법한 사연을 읽어주고 '잘 될 거예요'하며 쉽게 답을 내준다. '잘 될 거라고 말하면 정말 잘 되는 걸까'라는 비뚤어진 생각이 시작이었다. '사실 DJ가 위로하는 상대는 DJ 자신과 사연과 관계없는 청취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의 고민은 해결될 거야. 그러니까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같은 위로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 팟캐스트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아무 해답도 주지 않지만 '이 사람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신경 써. 잊어버리지 말란 말이야'라는 뜻이 숨어있는 셈이다. 차라리 '누구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빠져 있다'는 걸 상기시키자. 그런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면 차라리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었다."

- 절망에 빠진 게 좋은 일은 아니지 않나? 절망을 이겨내자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절망을 극복하자고 이야기하려면, 절망을 직시하고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청년층 절망의 성격과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노력'만을 강조하는 조급한 요구와 별다르지 않다. <절망 라디오>가 배포하는 카드 에피소드에도 가끔 '그러게 너희 20대들이 투표를 잘했어야지' 따위의 책망하는 댓글이 달린다.

당장 철거민 신세가 된 사람에게, 생계비가 없어 사채의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심지어는 산업재해로 죽은 아버지의 이야기에도 그런 댓글이 달린다. 모두 '조언'과 '충고'뿐이다. '투표 잘하자'는 말, 좋다. 정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왜 '20대들이 투표를 잘했어야지'만 있고 '20대를 위해 투표 잘하자'는 없을까? 아 참, 나는 30대고 투표도 했으므로 이미 까방권('까임 방지권'의 줄임말, '욕 먹지 않을 권리'라는 뜻)을 획득한 상태다(웃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미래가 절망의 핵심"

- 어떤 사연이 주로 오나?
"대출, 아르바이트 노동 이야기 등 다양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채무 관련 이야기가 주된 것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정신적인 부분, 자신의 존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경제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힘든 것이 원인이기는 한데, 어쩌면 가장 극단적인 고통은 자신의 존엄을 확신할 수 없고 자존감을 박탈 당하는 상태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 자존감이 더 큰 고통의 원인이라고?
"흔히 '헬조선'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 자체보다는 거기에 따라오는 '흙수저'나 '죽창' 같은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공감을 얻는 것은 일종의 항변과도 같다. 대한민국이 '기회의 평등'이 있는 나라라고 교과서에서 가르치지만, 실제로는 조건이 다른 사람들끼리 경쟁한다는 얘기다.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이랑 내 미래는 아예 다른데, 저놈이 나보다 잘되는 게 노력의 문제거나 나와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이어서인가? 어차피 '죽창으로 찌르면 한 방인 똑같은 인간 아니냐'는 거다.

'봐! 헬이라고! 이런 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같은 항변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상적 혹은 이상적인 상태를 획득해내라고 닦달하는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안정된 직장, 결혼 같은 것이 의미하는 바가 '정상성'이고, 현대사회에서 '청년 문제'의 한 축은 바로 다수의 사람이 정상성에서 탈락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정상성에 대해 비교당해 왔다. '엄친아'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안정된 직장도 결혼도 꿈꾸기 힘든 '나'는 정말 가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밥버거'나 '컵밥' 등의 유행을 두고 단순히 '돈이 없어서 싼 걸 먹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왜 싼 음식을 먹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그들이 아주 낮은 수준의 존엄을 구매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 가장 절망적인, 기억에 남는 사연은 무엇인가?
"9월 24일 공개방송에서 소개된 한 세입자의 사연이다. 보증금 100만 원, 월세 17만 원 월세방에 들어갔는데 이웃집에서는 매일 돈 때문에 싸우고, 전에 살던 사람은 월세가 밀려 도망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집을 3채나 가진 집주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약속이 중요하다'며 월세 밀린 사람을 비난한다.

이 사연은 <절망 라디오>를 하면서 느꼈던 점과 맞닿아 있다.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의 과거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현재를 보면서 이제 그 집에 살기 시작하는 사람이 예감하는 미래가 담겨있다. 사연을 보낸 청취자는 마지막에 '100에 17짜리 방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다.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선명한 미래, 여기에 절망의 핵심이 담겨있다."

달걀로 바위 치기 경기의 새 이름 : 에그스칼리버

한가위 한마당 '계란으로 바위치기' 절망라디오는 추석연휴, 집에 갈 수 없는 청년들이 모여 추석을 보내는 시청광장 캠핑을 주최했다. 캠핑 중 노오력이 씌여진 계란을 바위에 던져서 정말 깨지는지 실험해보았다 . 정말 '노오력'하면 바위를 깰 수 있을까?
▲ 한가위 한마당 '계란으로 바위치기' 절망라디오는 추석연휴, 집에 갈 수 없는 청년들이 모여 추석을 보내는 시청광장 캠핑을 주최했다. 캠핑 중 노오력이 씌여진 계란을 바위에 던져서 정말 깨지는지 실험해보았다 . 정말 '노오력'하면 바위를 깰 수 있을까?
ⓒ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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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에 진행한 서울시청 캠핑에서 '달걀로 바위 치기' 프로그램을 했는데 어떤 의미였나?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자는 취지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처지가 위태위태하다 못해 (쉽게 깨지는) 달걀보다 못하다. 달걀과 바위는 서로 조건이 다른데, 노력하면 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노력을 해보자'는 거였다. 바위를 깨는 사람이 나타나면 동상을 세워주기로 약속했고, (퍼포먼스에) 30명 정도가 참가했다."

-그래서 바위 깨기엔 성공했나?
"깨지지 않았다. 달걀 냄새로 바위를 뒤덮긴 했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할 말 있느냐는 질문에 김성일씨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연을 많이 보내줬으면 좋겠다. 가볍게 망한 사연도 좋고, 정말 폭삭 망한 사연도 좋다. 난 아직 망하지 않았어라고 말한들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망했다고 말한다고 더 망하는 것도 아니다. 절벽 앞에서 눈을 감는 거야말로 위험한 일이다."

<절망 라디오>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달걀로 바위 깨기'를 비롯해 다양한 오프라인 실험도 계속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DJ들은 달걀로 바위 깨기 경기에 아예 새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바로 '에그스(Eggs)칼리버'다. 절망한 달걀들이 바위를 깨트릴 날이 올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절망라디오 그룹
https://www.facebook.com/zmcast

절망라디오 듣기
http://www.podbbang.com/ch/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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