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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회사에서 'QC'는 부서나 직무뿐만 아니라 품질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사원을 일컫는다
▲ QC 회사에서 'QC'는 부서나 직무뿐만 아니라 품질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사원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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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C(Quality Control)는 '품질 관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통상적으로 회사에서는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사원을 부르는 말이다. 각 회사마다 품질 관리 부서에 대한 역할이 약간씩 다르며 그에 따라 'QA'(Quality Assurance), 'QM'(Quality Management), 'QE'(Quality Engineer)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는 관련 업종에 몸을 담는 동안 QM으로 시작해 QC, QE를 거쳐 QA로 그 직무 경력을 마감했다.

수입 검사실로 발령이 나면서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내 담당 업무는 '회로물'의 품질을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매일같이 검사하고 확인해야 하는 주된 품목이 TV에 들어가는 메인보드였다. 메인보드는 외주 임가공업체에서 만들어 납품을 한다. 개별 부품을 구매해서 외주업체로 내어주면 외주업체에서는 시방서(공사에서 일정한 순서를 적은 문서-편집자 말)대로 만들어서 납품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공부가 재밌었다

메인보드에 대한 품질관리를 하려면 그 안에 들어가는 수 백여 가지의 부품에 대한 특성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회로분석에 대한 기초 지식도 있어야 하는데 그 두 가지 모두가 나에겐 없었다. 그때부터 학창시절에 뒷전으로 미뤄놨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내 인생 첫 번째 멘토였던 신 과장님은 나를 품질경영팀으로 데리고 와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을 시켰다. 보통 생산 라인이 퇴근하면 우리도 그 시간에 맞춰 퇴근을 했는데, 나에겐 남의 일이었다. 매주 과장님이 사내 메일로 보내오는 시험 문제에 답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퇴근을 할 수 없었다. 과장님은 나에게 매주 80점을 넘기지 못하면 다시 생산 라인으로 쫓아 버리겠노라며 내가 생산 라인 일을 싫어한다는걸 이용해서 동기부여를 해주셨다.

수입 검사실에는 수 만 가지 부품의 정보가 담긴 '승인원'들이 책장에 가득했다. 그리고 각종 전자부품을 테스트 할 수 있는 시험 장비도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한 권의 책이 쥐어졌다. 그 책은 바로 '탱크 주의'였다. 탱크 주의는 한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던 '대우전자'에서 자사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 같은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핵심 인력들은 모두 대우전자 출신이었다. 대우전자 'VCR사업부'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나와 설립한 회사다보니 핵심 인력도 대우전자 출신들로 하나둘씩 늘어난 것이다. 언젠가 신 과장님과의 술자리에서 과장님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과장님은 대우전자에서 대리 말호봉 때 지금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그래도 대기업이 좋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대기업에서는 버틸 수 있는 나이에 한계가 있어, '롱런'을 위해 자리를 옮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한 번쯤 대기업에서 일해보는 게 나쁘지 않다며 나중에 꼭 대기업에 가보라고 하셨다.

그때는 내가 어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새 30대 중반이 됐고,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그때 과장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15년간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신 과장님의 가르침에 따라 대기업에서 일도 해봤고, 과장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며 그곳을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됐다.

낮에는 일상업무를 보고 밤에 남아 신뢰성 시험을 계속 했다
▲ 신뢰성 테스트 낮에는 일상업무를 보고 밤에 남아 신뢰성 시험을 계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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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주의>라는 제목을 가진 그 책은 '대우전자 TV연구소'에서 만든 사내 한정판 책이었다. 그 책에는 'TV'라는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들의 신뢰성 테스트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그 책을 보고 따라 해보면서 조금씩 내 지식을 키워 갔다.

우리회사는 중소기업치고는 규모가 큰 편이었지만 대기업처럼 모든 신뢰성 테스트 장비를 다 구비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런 점을 과장님께 말씀드리면 그는 나를 부품 제조사로 데리고 가셨다. 우리 회사가 구비하고 있지 못한 장비들은 제조사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서서 그곳 사람들에게 나를 인사시켜 주셨다.

그렇게 몇 달동안을 낮에는 일상 업무를 하고 저녁에는 부품 신뢰성 테스트를 하는 데 매진 했다. 내가 옮긴 자리에 적응을 할 때쯤 신 과장님은 경영혁신 TFT(Task Force Team)로 잠시 자리를 옮겨 가셨다. 회사 창고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부품들과 수입산 저가 부품들로 제품 단가를 낮추기 위한 활동들을 하셨다. 그 부품들을 그냥 가져다 사용할 순 없으니 고스란히 나에게 신뢰성 테스트 업무가 주어졌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만지던 신뢰성 테스트 장비들이 모든 회사에 다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후 많은 중소기업에서 일을 해보기도 했고 다녀도 보았지만 그런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대기업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는 장비들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소중한 시간이라지만 그 당시엔 지옥같은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출퇴근 거리가 멀다보니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게다가 스물한 살 한창 나이에 놀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들었다.

하지만 과장님은 내가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노력을 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도록 도와주셨다. 그런 과장님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 때는 너무 밉기도 했다. 특히 모두가 퇴근하고 혼자 남은 검사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품 테스트를 할 때는 '내가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있었기에 '철이 든'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그 지옥같던 시간들이 나에겐 밑거름이 됐다는 걸 후에 깨달았다. 그 회사에서 이직하고 난 뒤 나는 좋은 대우를 받으며 빠르게 승진했다. 이렇듯 죽을만큼 힘들어도 지금의 경험은 훗날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는 '재산'이 된다.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깨우치고, 그 상황을 즐겼다면 조금 더 '성공'에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태그:#QC, #수입검사, #탱크주의, #신뢰성, #품질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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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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