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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대전시민아카데미'는 20~30년씩 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해 온 이 땅의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연속 인터뷰한다. 땀 흘려 일해서 직장과 가정, 나아가 우리나라 경제를 지켜온 그들이 진정한 숨은 영웅들이다. [편집자말]
"명절에 고향 가는 건 꿈도 못 꾸죠. 차 끌어야지 어딜 가겠어요. 나는 못 가도 양손 무겁게 고향 가는 사람들이 기차에 오르내리는 것만 봐도 뿌듯해요."

1998년, 서른다섯. 조금은 늦은 나이에 철도청 부기관사로 시작해서 열차를 이끈 시간이 모두 17년. 기관사 조종복(51)씨는 지난 추석, 5년 만에 고향 안동을 방문했다.

"남들 쉬는 토요일, 일요일이면 더 바빠요. 운 좋으면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쉬고요, 주로 평일에 쉬죠. 명절에 쉬는 것도 순전히 운이에요. 이번 명절에는 화물열차가 배정돼서 5년 만에 고향집에 다녀올 수 있었어요."

명절 고향 방문은 '꿈', 그래도 이 일이 좋다

98년 철도청에 입사해 부기관사로 3년, 기관사로 14년 근무한 조종복(51)씨.
 98년 철도청에 입사해 부기관사로 3년, 기관사로 14년 근무한 조종복(51)씨.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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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종합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던 조씨는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당하고 공무원 시험을 통해 철도청에 입사했다. 지금은 철도기관사가 되려면 교통안전공단에서 시행하는 필기·기능 시험을 치르고 철도차량운전면허를 받아야 하지만, 당시에는 보통 5~7년, 길게는 15년까지 부기관사 생활을 하다가 등용시험을 통해 기관사가 될 수 있었단다.

조씨는 부기관사 3년 만에 기관사가 됐으니 남들보다 빠른 편이었다. 등용시험에 합격하면 경기도 의왕에 있는 철도대학(현 한국교통대학교)에서 12주 동안 교육을 받고, 현장 수습기간을 거쳐 기관사로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고.

단순해 보이는 기관차 운전이지만 신호와 구간에 따라 규정 속도가 다 다르다. 평탄해 보이지만 선로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단다.

"삶이 항상 평탄한 길로만 가지 않는 것처럼 열차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죠. 워낙 열차 무게가 무겁다 보니 언덕에서는 출력 조정에 신경을 써야 하고, 커브 구간에서는 더 신경을 쓰게 되죠. 그러니 항상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해야 해요."

이 순간 눈을 부릅떠 보이는 조씨. 그는 직장을 새로 구하면서 결혼도 늦어졌다. 철도청에 입사한 뒤에 결혼해서 지금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인 딸 둘을 두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가, 아빠가 낮에 집에 있으니 오히려 좋아해요. 평일에 있는 애들 행사는 거의 다 참석하고요. 밤 근무가 많다 보니 낮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좋은 부분도 있죠. 애들이 더 크면 싫어하려나요(웃음)."

조씨의 근무표는 매달 바뀐다. 이런 변형 근로는 그에겐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한다. 출퇴근 시간이 계속 바뀌는 점이 부담스럽고, 남들과 다른 생활패턴 때문에 친구도, 친척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가 국민의 '발'이 되어 살아온 세월이 17년. 불규칙한 근무시간, 늘 같은 길을 오가는 일이 힘들 법도 한데 조씨는 천직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열차에 오를 때면 설렌다고.

"역마살이 낀 팔자인지 원래 여행을 좋아해요. 그래서 열차를 끄는 이 일이 재미있고 좋아요.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도 보고.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어요. 가장 힘든 부분은 사상사고에 대한 우려죠. 저뿐만 아니라 모든 기관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게 바로 그 부분이지 않을까요."

자동차는 조향장치가 있어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는 조향장치가 없다. 때문에 앞에 어떤 물체가 있어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기차 무게가 워낙 무겁다 보니 제동거리가 600~800m 정도는 된다.

"앞에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쪽에서 피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거예요. 거리가 500m 정도면 형체가 가물가물 보이기는 하지만 선로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분간이 안 되는데, 그냥 이상한 느낌이 와요. 그러면 속도를 줄이죠. 그래도 제동거리가 200~300m는 돼요."

아직 사상사고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비상상황 때문에 조씨는 언제나 두렵단다. 선로 주변에 울타리가 없던 시절에는 기관사 아버지를 마중 나온 아이가 아버지가 이끄는 기차에 변을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관사들은 자신이 탄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달려오는 기차에 일부러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기관사가 어서 피하라고 기적을 울려대지만 피하지 않고 돌아보는 이도 있다. 그런 마지막 모습을 보고 나면 그 얼굴이 오래도록 남아 힘들다고.

열차 속도 빨라졌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는...

"라이방 끼고 폼 한 번 잡아봤다"는 조종복 씨. 17년째 근무 중이지만 아직도 기차에 오를 때면 설렌단다.
 "라이방 끼고 폼 한 번 잡아봤다"는 조종복 씨. 17년째 근무 중이지만 아직도 기차에 오를 때면 설렌단다.
ⓒ 조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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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에 대한 특별한 추억은 없냐고 묻자 조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그 시절 통근열차를 운전하다 보면 간이역에서 항상 타는 학생들이 있어요. 매일 타니까 기억을 하죠. 그런데 어느 날 그 학생이 안 보이는 거예요. 전무는 빨리 발차하라고 채근하는데, 창밖으로 삐죽 고개 내밀고 보니까 저만치서 학생이 뛰어오더라고요. 늦잠을 잔 거죠. 빨리 좀 다니라고 잔소리도 하고 그랬어요(웃음). 그때만 해도 기관사 재량이 있어서 잠깐 늦추고 태워줄 수가 있었는데. 학교 가는 학생이나, 장사 나가는 할머니는 그 기차 놓치면 큰일 나는 거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정시가 되면 무조건 문을 닫고 열차를 출발시켜야 한다. 아무리 뒤를 쫓아와도 세워줄 수 없는 시스템이다. 조씨는 기차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람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쉰다.

"아쉬워요. 비둘기호 시절에는 간이역마다 서면서 사람끼리 부대끼는 정이 있었는데... 열차가 고속화되는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느낌이에요. 우리는 우리 일만 하면 된다, 굳이 저 사람 챙길 이유가 없다, 뭐 그런 거죠. 열차 시간이 늦어지면 욕먹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 많이 아쉬워요."

많은 이들이 비둘기호, 무궁화호, 새마을호의 속도가 각기 다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조씨에 따르면 속도 차이는 없고 멈춰서는 정거장 수만 다를 뿐이라고 한다. 더디게만 느껴졌던 비둘기호의 속도가 무궁화호나 새마을호의 속도와 똑같다니, 재미있는 발견이다.

"많이들 착각하시는데 속도 차이는 없어요. 비둘기호 끌고 대전에서 서울 가는데 20개 넘는 정거장을 거쳐요. 조차장에서 시작해 회덕-신탄진-매포-부광-내판-조치원-서창-전동-전이-서정리-천안-두정-직산-성환-평택-송탄-오산-병점-세류-수원-의왕. 역 하나 설 때마다 속도를 제어하고 이것저것 하면 3분 정도 걸리는데, 그 차이죠. 화물열차도 속도는 다 똑같아요. 다만 화물열차는 속도제한이 시속 90~120km이고, 여객은 대전 같은 2급 선로에서는 최고속도가 시속 135km, 전라선은 시속 150km, 그 차이예요."

대전의 기관사들이 운행하는 구간은 대전-서울, 대전-제천, 대전-익산, 대전-부산이다. 나머지는 해당 지역의 기관사가 열차를 받아서 교대한다.

"내가 가져간 열차를 끌고 오는 게 아니라 끌고 가서 최소 휴게시간을 쉬고 돌아오는, 'ㄷ'자 형태의 행로가 나오는 거죠. 오늘은 밤 10시에 출근해서 동대구로 갔다가 좀 쉬고, 다음날 화물열차 끌고 대전으로 돌아옵니다."

공무원 신분일 때에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따로 정해진 근무시간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휴일은 한 달에 하루뿐, 근무와 근무사이에 존재하는 최소 휴양시간만 쉬면서 버텨온 세월도 있었다. 철도공사로 바뀌면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고, 지금은 주 40시간(월 165시간 이하)의 근무시간을 지키고 있다. 한 번에 최대로 운행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30분 가량. 그렇다고 근무 자체가 편해진 건 아니다. 근무환경은 좋아졌지만 노동 강도는 오히려 세졌다는 게 조씨의 설명이다.

"기관차는 2인 승무가 보통이에요. 기관사 둘 또는 기관사와 부기관사 각 한 명씩. 신형 itx는 기관사 혼자 타는 기차고요. 회사 측은 1인 승무를 늘리려고 하죠. 기차도 좋아졌고 조작도 간편해지고 디지털화 되었으니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우리는 다르게 보죠. 두 사람이 타야 역할분담이 이뤄지고 서로 상의해서 조치도 할 수 있는 건데, 1인 승무는 혼자 판단하고, 조치하고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니까 부담이 커요."

이 땅의 노동자로 오랜 세월 묵묵히 자기 일을 해왔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그들이지만 '연봉 높은 직업'으로만 보는 시선이 다소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철도청 시절에는 박봉이었지만 공무원이라는 신분적 메리트가 있었죠. 철도공사가 되면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다보니 월급이 오르기는 했어요. 휴일근무와 야간근무가 많은 업무 특성상 수당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추가로 일하는 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많아지는 거잖아요. 신규채용이 없으니 있는 사람들이 휴일근무를 더 할 수밖에 없고요. 통계만으로 보면 허수가 많은데 그 수치만 가지고 보니까 오해가 생기는 거죠. 게다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워낙 힘들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열차에 누군가의 생업 달려, 철도 공공성 지켜야

기차 속도가 빨라지고 근무환경이 쾌적해졌지만 사람 사이가 자꾸 멀어지는 게 안타깝다는 철도노동자 조종복 씨.
 기차 속도가 빨라지고 근무환경이 쾌적해졌지만 사람 사이가 자꾸 멀어지는 게 안타깝다는 철도노동자 조종복 씨.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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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정부와 코레일이 수익성 향상을 위해 공공성을 포기하고 적자노선을 민간에 넘기고자 하는 움직임에 대해 조씨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현재 경부선을 제외하고는 모든 노선이 적자라고 해요. 경부선은 KTX도 많고 입석 손님도 많으니까 흑자일 수 있죠. 그래도 지금은 모든 노선을 코레일에서 운영하니까 흑자 부분에서 적자를 메우는 게 가능한데 민간에 넘기면 그마저도 힘들게 되지 않나요?

게다가 철도는 항시성·정시성·안전성·경제성이 생명이에요. 열차가 없으면 누구는 학교를 못 가고, 누구는 생업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노선 폐지라니요. 쉽게 말해, 지금은 공기업이 운영하기 때문에 모두가 저렴한 가격으로 열차를 이용하는 건데, 민간 기업에 넘어간다면 국민들은 비싼 값을 주고 열차 타겠죠. 또 적자 노선을 민간이 운영한다고 해서 흑자로 전환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국엔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는 민간 기업의 적자를 메워주지 않을까요. 이게 무슨 경영효율화인가요."

임금피크제 도입 논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조씨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임금피크제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반드시 정규직 일자리로 늘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부모가 내 봉급을 깎아서 자식 일자리 만드는 걸 싫어하겠어요. 우리 봉급 깎을 수 있어요. 다만 조건은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거죠. 비정규직으로 뽑아서 1~2년 있다가 자를 거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건 노동자들만 희생시키는 꼴이 되는 거니까요."

조씨는 기관사 일이 특별할 것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자부심과 사명감이 느껴졌다. 우리나라 열차가 걸어온 길을, 그 의미를, 조씨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수출품 가득 실은 화물 열차 몰고 부산에 갈 때는 내가 마치 산업역군이 된 느낌으로 신나게 달려가요. 얼마나 소중한 직업이에요. 이 일은 그냥 제 삶이에요. 기관사라는 직업이 특별하지도, 뛰어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 공기 같고 산소 같은 일, 그런 게 아닐까요."


태그:#기관차, #철도, #기관사,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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