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막을 내렸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프로야구 순위 경쟁만큼이나 화제를 모았던 것이 선수들의 개인 타이틀 경쟁이었다. 특히 올 시즌에는 그야말로 '역대 최고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걸출한 개인 기록을 남긴 두 슈퍼스타의 MVP 경쟁이 초미의 관심을 낳고 있다.

박병호(넥센)와 에릭 테임즈(NC), 각각 토종과 외국인 거포를 대표하는 두 선수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괴물 같은 시즌을 보냈다. KBO 최고 타자로 자리 잡은 2012년부터 매 시즌 괴물 같은 성적을 남겼다. 그러면서도 정체되거나 자만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기량이 향상되고 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일단 박병호는 역대 최초 4년 연속 홈런-타점왕을 싹쓸이했다. 2년 연속 50홈런 이상을 기록했으며, 한 시즌 역대 최다 타점(146개) 기록을 경신했다. 이승엽 같은 역대 KBO의 전설적인 홈런왕들도 이루지 못한 꿈의 기록이다. 장타율 2위(0.714), 득점 2위(129점), 타율 5위(0.343), 출루율 5위(0.436)로 도루를 제외하고 타격 관련 주요 부문에서 두루 상위권에 올랐다.

테임즈는 타격(0.381)부문에서 수위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득점(130점), 출루율(0.497), 장타율(0.790)에서 4관왕에 올랐다. 4번 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로 꼽히는 홈런과 타점에서는 비록 박병호에게 타이틀을 내줬지만, 전체적인 다재다능함은 테임즈의 우위다. 올 시즌 테임즈가 세운 가장 기념비적인 기록은 역시 KBO리그 역대 최초 40홈런-40도루 클럽 가입이다. 여기에 올 시즌에만 사이클링 히트를 2회나 기록한 것 역시 역대 최초였다.

타격 부문 주요 8개 타이틀 가운데 테임즈와 박병호가 휩쓸어 간 것만 무려 6개나 된다. 도루왕 박해민(삼성, 60도루-성공률 0.882), 최다안타 유한준(넥센, 188개), 다승왕 에릭 해커(NC, 19승)는 아무래도 무게가 떨어진다. 사실상 테임즈와 박병호, 두 선수 중에서 MVP가 나올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기록 희소성은 테임즈의 근소 우위... 하지만 표심은?

NC 테임즈 프로야구 최초 '40홈런·40도루' 달성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3회초 NC 테임즈가 도루를 시도, 2루에 안착해 기뻐하고 있다. 테임즈는 이번 도루 성공으로 프로야구 최초 '40홈런·40도루'를 달성했다.

▲ NC 테임즈 프로야구 최초 '40홈런·40도루' 달성 2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3회초 NC 테임즈가 도루를 시도, 2루에 안착해 기뻐하고 있다. 테임즈는 이번 도루 성공으로 프로야구 최초 '40홈런·40도루'를 달성했다. ⓒ 연합뉴스


재미있는 것은 올해 MVP 경쟁이 누가 수상하느냐보다 오히려 '누가 탈락하느냐'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예년 같으면 두 선수 중 누가 MVP를 받아도 손색이 없다. 두 선수 모두 올 시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역대 MVP들과 모두 견줘도 눈에 띄는 시즌을 보냈다. 자연히 이런 기록을 올리고도 탈락하는 선수는 KBO MVP 경쟁 역사상 가장 불운한 2인자로 오랫동안 남을 수밖에 없다.

역대 MVP 경쟁의 불운한 2인자하면 역시 2003년의 심정수(은퇴)가 첫 손으로 꼽힌다. 심정수는 그해 53개의 홈런을 터뜨리고도 56홈런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한 이승엽(삼성)에 가렸다.

2006년의 롯데 이대호(현 소프트뱅크)는 타격 부문 트리플 크라운(타격, 타점, 홈런)을 차지하고도 그해 투수 트리플 크라운(다승, 방어율, 삼진)을 차지한 한화 류현진(현 LA 다저스)에 밀렸다. 이대호는 4년 뒤인 2010년 트리플 크라운을 뛰어넘는 타격 7관왕에 올라 류현진을 제치고 MVP를 차지하며 설욕에 성공했다. 반면 가장 대표적인 '무관의 제왕'으로 꼽히는 양준혁(은퇴)은 한국야구 타격부문 각종 통산 기록을 다수 보유했으나 현역 시절에는 단 한 번의 MVP도 차지하지 못한 불운의 사나이였다.

올해 MVP 경쟁의 불운아는 누가 될까. 굳이 꼽자면 테임즈의 아주 근소한 우위가 예상된다. 테임즈의 40-40과 사이클링 2회는 역대 최초라는 점에서 특별한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박병호도 2년 연속 50홈런과 역대 최다타점이라는 희소성이 있지만, 어느 쪽이 더 힘들고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냐고 묻는다면 조심스럽게 테임즈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40-40은 KBO리그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대기록이다. 한국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단 한 차례도 달성되지 않았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단 4차례만 나왔다. 호세 칸세코(1988년), 배리 본즈(1996년), 알렉스 로드리게스(1998년), 알폰소 소리아노(2006년) 등 4명만이 이 기록을 달성했다. 뜻밖에 40-40을 기록한 선수 중 그해 리그 MVP를 차지한 선수는 칸세코가 유일하다. 그나마 이들 중 상당수는 훗날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며 기록의 순수성에도 금이 간 상태다.

34년 역사의 KBO에서는 20-20만 해도 고작 38차례에 불과하다. 30-30은 총 7차례가 있었고 그나마 2000년 박재홍 이후로는 테임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30-30을 달성한 선수도 전혀 없었다. 비록 올해 경기 수가 144게임으로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결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었다. 테임즈의 기록이 어쩌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MVP 경쟁에서 무시할 수 없는 팀 성적 프리미엄도 테임즈의 우위다. NC는 올해 창단 4년, 1군 리그 참가 3시즌 만에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며 최고 성적을 또다시 경신했다. 박병호의 넥센도 포스트시즌에 올랐지만, 뒷심부족으로 지난해(2위)보다 떨어진 4위에 그쳤다.

박병호는 지난해 128경기에서 52홈런 124타점을 기록했다. 올해는 140경기에서 53홈런 146타점을 기록했다. 누적 홈런과 타점은 늘어난 출전 경기만큼 불어났지만, 경기당 평균 홈런 개수는 약간 감소한 셈이다. 물론 이것만 해도 엄청난 기록임은 틀림없다. 다만, 테임즈의 기록과 희소성을 비교하자면 살짝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마땅한 비교 대상이 없는 테임즈와 달리, 올 시즌 박병호의 기록은 2003년의 이승엽과 비교된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전이던 2003년 131경기에서 56홈런 144타점을 기록했다. 타점은 올 시즌 박병호가 경신했지만, 홈런 기록은 여전히 KBO 역사에 단일 시즌 최다 기록으로 남았다. 홈런-타점 경기당 평균도 여전히 이승엽의 우위다.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 높은 박병호, 아쉽다

 지난 2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롯데와 넥센의 경기에서 넥센의 박병호가 5회말 1사 2,3루에서 개인통산 최다인 53호 홈런을 치고 있다. 박병호는 이 홈런으로 146타점을 기록해 기존 이승엽이 가지고 있었던 KBO리그 최다타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 2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롯데와 넥센의 경기에서 넥센의 박병호가 5회 말 1사 2, 3루에서 개인통산 최다인 53호 홈런을 치고 있다. 박병호는 이 홈런으로 146타점을 기록해 기존 이승엽이 가지고 있었던 KBO리그 최다타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 연합뉴스


박병호가 올 시즌 이승엽의 홈런 기록마저 넘었다면 테임즈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임팩트를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올 시즌 MVP 경쟁에만 국한된 아쉬움은 아니다. 현재 국내 무대에서 이승엽의 기록을 깰만한 토종 선수는 박병호밖에 없다. 하지만 박병호 선수는 이번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박병호가 올해 이승엽의 홈런 기록 경신에 실패한 게 더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다.

변수는 박병호에 대한 동정론과 상대적으로 외국인한테 야박했던 국내 MVP 투표의 성향이다. 박병호는 지난해에도 홈런-타점왕을 석권했으나 200안타 신기록을 세운 팀 동료 서건창에 밀려 아쉽게 MVP 3연패를 놓친 바 있다. 2년 연속 엄청난 기록을 세우고도 경쟁자에게 밀려 MVP를 놓치게 되면 억울할 법하다. 메이저리그 진출이 유력한 박병호를 내년부터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아쉬움도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KBO에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된 이래 외인 MVP 수상자는 1998년의 타이론 우즈와 2007년 다니엘 리오스 단 2명뿐이다. 당시 우즈는 최대 경쟁자이던 이승엽과의 홈런왕 경쟁에서 대역전극으로 KBO 신기록까지 경신하며 타이틀을 거머쥔 게 결정적이었다. 리오스는 독보적인 성적(훗날 일본에서의 약물 파문으로 평가가 달라지지만)으로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었다.

MVP의 주인공은 조만간 가려지겠지만 사실상 이미 두 선수의 대기록은 우열을 논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위대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선수 모두 극심한 집중견제와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이겨놨고, 한국프로야구의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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