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포스터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포스터 ⓒ (주)와우픽쳐스


지난 2009년 개봉해 '알 이즈 웰(Aal izz Well)' 열풍을 일으킨 <세 얼간이>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영화가 등장했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과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르 칸이 <세 얼간이>에 이어 다시금 호흡을 맞춘 기대작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가 개봉한 것이다. 일찌감치 인도에서만 1억 2천 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발리우드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이 영화가 전작 <세 얼간이>의 한국 흥행기록 45만을 넘어서는 건 자연스런 일처럼 보였다. 물론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배급시스템이 전제된다면야 말이다.

하지만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가 한국에 상륙한지 한 달, 대부분의 상영관에선 이 영화의 머리털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트하우스 모모와 감독판을 상영하는 시네마테크 등 일부 독립영화 상영관을 제외하면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제아무리 <세 얼간이>를 재밌게 봤고 인도영화를 사랑하는 팬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암살>, <베테랑>, <사도>, <탐정: 더 비기닝>으로 이어지는 한국영화의 흥행행진 뒤에는 이처럼 배급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그라든 작은 영화들이 존재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조차 쉽게 공략하지 못하는 발리우드 대작이지만, 한국에서만큼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종영한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는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지난 한 달 간 이 영화가 불러들인 관객은 4만5천여 명에 불과하다. 이는 전작 <세 얼간이>가 기록한 성적의 10분의 1 수준이다.

과연 이 영화가 그토록 부족한 작품이었을까?

<ET>와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에서 주인공 피케이를 연기한 아미르 칸, 누가 그를 50대라고 생각하겠는가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에서 주인공 피케이를 연기한 아미르 칸, 누가 그를 50대라고 생각하겠는가 ⓒ (주)와우픽쳐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세 얼간이>가 본말이 전도된 교육의 문제를 발리우드와 할리우드가 절묘하게 접합된 형식으로 풀어냈다면,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는 비틀린 종교의 문제를 보편적인 방식으로 경쾌하게 다룬 영화다. <세 얼간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전형적인 상업영화의 구도 속에서 아마도 인도출신이 아닌 관객들에겐 이색적으로 느껴질 지역적 특색도 한껏 살렸다.

영화의 주인공은 지구를 탐사하기 위해 다른 행성에서 날아온 외계인 피케이다. 낯선 환경에 떨어져 방심한 사이, 좀도둑으로부터 우주선을 부르는 리모컨을 도둑맞은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영화는 5분 남짓의 짤막한 오프닝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구에서 살게 된 피케이의 사연을 보여주고, 이내 그가 리모컨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 여주인공인 자구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방송국 취재기자로 일하는 자구는 우연한 계기로 괴상한 행색의 피케이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접근한다. 피케이는 자구에게 자신이 리모컨을 되찾기 위해 한 노력을 털어놓지만 자구는 좀처럼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거치며 그가 외계인이라는 걸 믿게 된 자구는 마침내 그에게 리모컨을 찾아주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듣고서도 영화 한 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외계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위대한 작품, 스티븐 스필버그의 < ET >가 그것이다. < ET >에서 주인공 이티가 어떻게 지구에 홀로 떨어지게 됐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놀라우리만큼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와 흡사한 구도를 갖고 있는 < ET >에서 주인공 이티는 식물종을 탐사하기 위해 지구에 왔다가 동료들과 떨어져 지구에 홀로 남게 되었더랬다.

이후 이티는 한 가정집에 숨어들어 그곳에 살던 소년 엘리어트와 만나 교감하고 엘리어트 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특별한 파문을 남기고는, 자전거를 타고, 무려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 ET >와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는 외계인이 나타나 지구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돌아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틀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해도 될 만큼 흡사한 외형의 두 영화지만, <ET>의 명장면들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아 오마주와 부분적 표절의 경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교문제를 경쾌하게 다루다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는 민감한 종교 문제는 경쾌하게 풀어냈다. 성직자와 끝장토론을 벌이는 피케이(아미르 칸 분)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는 민감한 종교 문제는 경쾌하게 풀어냈다. 성직자와 끝장토론을 벌이는 피케이(아미르 칸 분) ⓒ (주)와우픽쳐스


영화는 이처럼 누구나 좋아하는 할리우드의 성공한 전형을 빌려와 그 안에서 보편적 소재인 종교의 문제를 풀어가면서도 발리우드의 특색인 춤과 노래를 적당한 수준으로 덧입혀 나름의 색깔을 우려내는 영리한 선택을 하고 있다. 피케이가 리모컨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위선을 낱낱이 폭로하고, 신과 인간 사이에서 사적 이득을 취하는 성직자의 비리를 통쾌하게 까발리는 것이다.

부처와 예수가 있던 시절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 종교가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존재해왔던 온갖 종교의 부정적 면모가 영화가 다루는 힌두교를 위시한 인도의 여러 종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관객들에게 묘한 깨달음을 준다.

사실 영화의 완성도는 선명한 메시지에 비한다면 안타까운 수준이다. 비교적 높은 적중률을 보인 웃음포인트가 영화를 유쾌하게 이끌고는 있지만, 클라이막스 훨씬 이전부터 영화가 플롯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특히 성직자와 피케이의 끝장토론을 앞두고 반전의 카드가 될 수 있었던 좀도둑과 싱이 이전까지 암시조차 되지 않았던 폭탄테러로 사망한다는 점은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마치 <국제시장>의 억지스런 폭탄테러신을 보는 듯했던 이 장면 이후 영화가 기존의 종교 이야기에서 멜로드라마로 전향적인 선회를 하는 게 필연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문제만 제기하고 도망치듯 떠나다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에서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연기를 떠올리게 하는 아미르 칸의 연기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에서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연기를 떠올리게 하는 아미르 칸의 연기 ⓒ (주)와우픽쳐스


사실상 피케이는 모두가 아는 문제제기를 하고 떠나갔을 뿐이다. 그가 던진 파문은 오로지 지구에 남을 인간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영화가 이 모두를 외면하고 다분히 멜로스러운 엔딩으로 끝을 맺는 건 그래서 무책임한 선택이다. 남은 문제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는 무성의한 태도는 이 영화를 그저 종교라는 잘 팔리는 소재를 차용한 상업영화로만 여기게끔 한다. 선명하고 유효한 문제제기였지만, 영화가 의도한 건 그 뿐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가 지닌 결정적 한계다.

< ET > 외에도 여러모로 찰리 채플린과 <모던 타임즈>의 영향을 받은 듯한 장면이 엿보여 눈길을 끌었다. 피케이가 자구와 춤을 추고 모두 다 잘 될 거라며 "아 이즈 웰"을 외치는 장면은 <모던 타임즈>에서 떠돌이 찰리가 여주인공에게 건넨 "용기를 내요. 모두 다 잘 될 거야"라는 대사를 연상시킨다. 카푸치노를 마시고 입가에 우유 거품을 묻히고는 자구가 닦아주길 기다리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면에서 할리우드의 성공한 작품들을 본받으려는 성실함이 돋보였다. 선명한 주제를 조금 더 치열하게 파헤치는 집념이 아쉬웠지만, 색다르고 경쾌한 영화를 보고픈 사람이라면 썩 괜찮은 영화가 되리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보기가 쉽지만은 않겠지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주)와우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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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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