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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학창시절 생각이 나오, 수업 종료종이 울릴 때 꼭 눈치 없는 짓을 하는 녀석이 있었소. "선생님, 질문이요!" 이 눈치 없는 녀석은 이후에 벌어지는 야유와 아우성이 그리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소. 여기저기서 "에이!", "야, 수업 끝났어.", "그만해라." 등의 비난이 쏟아져도 굽히지 않고 궁금한 것을 질문했소.

그럼 한편에서 또 이런 녀석도 있었소. "선생님, 다른 사람들은 나가도 되죠?" 인자하신 선생님은 그러라고 하고, 아닌 분은 "아직 수업 안 끝났어"라며 호통을 쳤소. 질문한 친구야 진지하게 선생님의 대답을 들었지만 대부분은 아니었소. 그렇게 어수선한 수업이 마무리되는 때가 꽤 있었소.

지금 그 질문 많던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참 궁금하오. 학교를 졸업한 후에 그 친구를 본 적이 없으니. 학창시절의 궁금함의 진정성으로 말하면 지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일을 할 테고, 그렇다면 TV에 한 번쯤은 얼굴을 비쳤을 텐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우리는 이렇게 질문이란 것에 익숙하지가 않소. 심지어는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면, "그만 질문하고 칠판에 있는 거 잘 적어, 시험에 나올 거야"라며 다그치는 선생님도 있었으니까. 우리네 수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죠. 질문이 뭔지도 모르고 적어 둔 노트 달달 외워 시험 잘 치르면 되는. 그렇게 우리는 오지선다, 사지선다형 인간으로 길러졌소.

여보! 한 사회과 선생님이 쓴 질문이 세상을 바꿨다고 말하는 책을 읽었소. 권재원 선생님인데 그는 <세상을 바꾼 질문>(권재원 지음, 다른 펴냄)에서 7가지 질문을 추려 그 질문이 풀려나가는 생각의 과정을 설명하며 그 진행과정에서 우리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가르쳐주고 있소.

민심은 천심 "왕께서는 어찌하여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세상을 바꾼 질문>(권재원 지음 / 다른 펴냄 / 2015. 9 / 200쪽 / 1만3000 원)
 <세상을 바꾼 질문>(권재원 지음 / 다른 펴냄 / 2015. 9 / 200쪽 / 1만3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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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 이야기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맹자가 자신을 등용해 줄 임금을 찾았소. 맹자가 위나라 혜왕을 찾아갔을 때 혜왕이 맹자에게 이렇게 질문했소. "현명하신 선생께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셨는데 이롭게 할 무슨 방도라도 있습니까?"

이 질문에 정색하며 맹자가 대답을 했소. "왕께서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맹자의 이 말의 뜻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자기 이익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백성의 이익을 구하는 자란 뜻이오. 우리는 맹자를 '왕도정치'를 가르친 현인으로 알고 있소.

'왕도정치'는 '패도정치'와 구별되는 단어로 '패도정치'가 힘에 의한 다스림을 말한다면, 왕도정치는 인과 덕에 의한 정치를 말하는 것이오. 조선시대에는 조광조가 중종에게 왕도정치를 주문하기도 했소. 이는 '민심이 천심'이란 걸 알고 통치해야 한다는 뜻이오.

여보! 맹자의 질문 하나가 오늘날 통치이념이 된 것이오. 맹자는 인의(仁義)의 다스림을 최고의 통치이론으로 말했소. 다스리는 자의 입장이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이의 입장이 고려되어야 좋은 통치라는 거지요. 왕의 이익이 아니라 백성의 이익이 선행되는 게 바로 인의의 정치란 말이오.

절대군주가 다스리는 시대에도 맹자는 '민심이 천심'임을 강조하며 왕의 이익을 위해 힘쓰지 말고 백성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를 힘쓰라고 일침한 거지요. 우리는 이런 말이 2500년 전에 나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소. 아직도 청와대의 한 마디에 따라 여당의 사무총장의 목이 달아나고, 여당의 대표까지도 청와대와 생각이 다르면 불편할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사니까요.

정치인은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백성이 청와대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소, 대통령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안 되는 줄 생각하면서. 맹자가 한 질문으로 수천 년 동안 일군 '민심은 천심'이란 말이 이렇게 왜곡되기도 쉽지 않을 듯하오.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여보!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는 입자물리학연구소가 있소. 이곳에서 하는 일은 원자핵, 중성자, 양성자 같은 입자들을 충돌시켜 작은 입자를 만드는 일이오. 가장 작은 원소인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뤄졌소. 인류는 계속 가장 작은 물질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오.

왜 그런지 아시오? 2500년 전에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고 물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질문 때문이오. 레우키포스는 이 질문에 "만물은 공간을 운동하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입자로 되어 있다"고 답했소. 그의 제자 데모크리토스는 그 입자가 '아토모스(atomos)', 즉 '원자'라고 말했소.

이런 물음과 과학적 시도가 보다 작은 원소가 무엇인지 추구하고, 만물의 근원을 밝히려는 노력들이 쌓이면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소. 탈레스를 비롯하여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등으로 이어지며 화학과 물리학으로 발전했소. 원소보다 더 작은 물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만물의 근원을 묻는 철학적 질문 때문이오.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에 의해 만물이 탄생했다는 창조론만이 진리였던 시대에,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과학적 접근을 낳을 것이란 생각은 그 누구도 못한 것이었소. 창조론을 믿는다 해도 그럼 신이 무엇을 가지고 세상을 만들었는지 따져보게 되었소. 결국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소.

여보! 흥미로운 건 원래 기술은 동양이 더 발전했소. 중국이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영국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기술이 묻히게 되었다는 사실이오. 기술만으로는 안 되고 과학기술로 가야 한다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오. 철학이 있는 기술과 그렇지 않은 기술의 차이요. 책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오.

"현실보다 현실 너머의 본질을 추구하던 비현실적 고대 그리스인들의 질문이 수천 년 뒤에 기술과 결합하여 엄청난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탈레스도 피타고라스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고결한 철학을 천한 기술 따위에 적용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 <세상을 바꾼 질문> 본문 37쪽에서

여보! 책은 이외에도 근대 유럽의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계몽주의의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훌륭해지는 것일까", 노동자들의 "왜 사회가 진보하는데도 빈곤은 점점 더 심해지는가", 아우슈비츠 이후 "인간은 얼마나 쉽게 악마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들이 가져 온 진보를 말해 주고 있소.

또 "지속 가능한 발전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통하여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의 한계를 발견하게 되었소. 아직도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이번 유엔총회도 그런 맥락에서 진행되었소)는 도그마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오.

이 책은 시대마다 튀어나왔던 질문이 인류사회에 얼마나 큰 발전과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짚어주고 있소. 지금도 무수한 질문들이 답을 기다리고 있소. 답이 어떻게 나오고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오. 답이 어떻든 뒷걸음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소.

덧붙이는 글 |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에서 말하는 ‘여보’는 제 아내만이 아닙니다. ‘너’요 ‘나’요 ‘우리’입니다.



세상을 바꾼 질문 - 사소한 물음이 세상을 흔들다

권재원 지음, 다른(2015)


태그:#세상을 바꾼 질문, #권재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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